- 일상 속 인사이트
‘사스날은 과학이다.’ 한때 프리미어리그 팬들에게 유행어처럼 널리 회자되던 말이다. 이 말은 아스날이라는 축구팀이 시즌 중에 선두를 하든 꼴찌를 하든 결국에는 4위로 마무리한다는 것을 일컫는 말로 타팀팬들이 구너(아스날 팬을 지칭하는 용어)들을 은근히 비꼬는 투로 사용되었던 말이다.
그러나 많은 구너들은 이 말(사스날은 과학이다)에 오류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왜냐하면, 통상적으로 과학이란 절대적인 법칙이자 고정불변한 진리이며, 반론할 여지가 없는 완벽한 명제인데, 아스날이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에 리그 우승을 한 적도 있고, 3위나 5위를 했던 적도 있었던 만큼, 사스날을 과학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구너들은 ‘아스날이 매번 4위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라는 반증 가능성을 제시함에 따라 '사스날은 과학이 아니다'라고 논리적으로 설파한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유행했던 MBTI를 두고 'MBIT는 과학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MBTI의 특성이 내 성향과 반박불가능할 정도로 일치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구너들의 논리대로 사스날은 정말 과학이 아닌 걸까?
영국의 과학 철학자 '칼 포퍼'는 과학이란 반증 가능성을 지닌 가설의 집합체이며, 과학 이론은 반론의 가능성이 외부를 향해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어떤 명제에 반증 가능성이 있다면 그 명제를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소리다. (*306)
포퍼의 정의에 따르면, 사스날은 과학이다. 과학이 성립되는 필요조건은 반증 가능성인데, 구너들의 말마따나 아스날이 리그 우승도, 3위도, 5위도 했었다는 반증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반증 가능성이 있어서 과학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구너들의 논리는 오히려 포퍼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포퍼가 반증 가능성이 없는 명제는 전부 과학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어찌됐든 과학은 철저한 검증 과정을 기반으로 명제의 타당성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높은 신뢰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이다'라는 말도 이러한 검증 과정을 신뢰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지 않은가.
그러나 과학의 검증 과정을 지나치게 신뢰한다면, 그래서 과학을 절대적인 법칙이자 고정불변한 진리로 여긴다면, 중세시대 천동설을 진리라고 믿는 것 같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포퍼가 경계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과학이란 모름지기 반증가능성이 존재하고, 언제든지 수정·보완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을 대할 때는 항상 열린 마음과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구너들에게는 참 미안하지만, 아스날이 매번 4위만 했던 것은 아니라는 반증 가능성이 존재하는 만큼, ‘사스날은 과학이다’라는 말은 진짜 과학인 것 같다. 아스날이 영원히 4위만을 하지 않는 이상 이 명제의 굴레에서 탈출하기는 아마 어렵지 않을까..?
* 참고문헌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사스날은 과학일까?: 칼 포퍼의 반증 가능성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