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 속 인사이트
얼마 전 아는 지인과 함께 합정동에 있는 한 카페에 갔다. 괜찮은 핸드드립 커피 카페를 발견했다는 그의 말에 호기심이 발동해 흔쾌히 약속을 잡은 것이다. 카페 투어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 주에만 그 카페를 무려 두 번이나 다녀왔다는 그의 말을 들으니 왠지 모를 기대감이 솟아올랐다.
카페는 꽤나 골목진 거리에 있었다. 합정역부터 나의 눈과 귀를 자극하던 인파와 소음은 어느 순간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없었다. 고요하고 적막한 골목 어귀를 지나자 반지하 형태로 자리 잡은 카페가 눈에 띄었다. 보랏빛 간판과 바 형태의 구조가 은근한 매력을 풍기는 카페였다.
사실 나는 커피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특히, 핸드드립 커피는 더욱더 그렇다. 커피를 단순히 정신 각성의 목적으로만 마시기 때문이다. 출근할 때나 야근할 때, 또는 자기계발에 힘을 가할 때, 카페인 섭취를 통해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목적으로만 마신다. 그래서 커피의 다양한 맛이나 향을 음미하기보다는 커피에 있는 카페인의 기능에만 집중해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러한 기능론을 탈피했다. 커피를 기능에만 천착해 마시는 것을 넘어서,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향유하고, 그 맛과 향을 천천히 음미함으로써 내게 맞는 커피를 찾아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핸드드립 커피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핸드드립 커피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인간미가 있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커피는 천편일률적이다. 제품을 일괄적으로 찍어내는 공장처럼, 동일한 레시피와 재료를 통해 동일한 커피를 빠르게 반복 생산한다. 그래서 내 입맛에 맞는 맛과 향을 찾아 마시기보단 그냥 적당히 달고, 적당히 커피스러운 커피만 마시게 된다. 그것이 빠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핸드드립 커피는 동일하게 생산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유하다. 각양각색의 원두를 고를 수 있고, 바리스타의 제조법에 따라 맛과 향의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조과정이 느리다. 이 과정이 비효율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간미가 느껴졌다. 속도와 효율성을 지고의 가치로 숭배하는 자본주의에 반하여, 기다림의 미학을 누리고, 차이를 통해 고유성을 획득하는 것이 인간적인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특징을 역행하고, 동일성이 아닌 차이를 통해 고유성을 획득할 수 있는 핸드드립 커피는 내게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핸드드립 커피만 고수할 수는 없다. 도시의 삶은 늘 빠르고, 인생을 여유로움과 고유성만 추구하며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삶의 페이스가 너무 빨라서 휴식이 필요할 때, 인간성을 회복하고 싶을 때, 내게 맞는 맛과 향을 음미함으로써 고유성을 획득하고 싶을 때, 핸드드립 커피를 찾아 그 과정을 향유해보면 어떨까? 어쩌면,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