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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Nov 04. 2022

의미의 과잉과 의미의 공허 사이에서의 다정함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후기



   삶이 너무 분주하고 바쁘면,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이야기와 사건의 의미들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고, 소화할  없으며, 흘려보낼  없을 만큼, 의미들이 과다하게 밀집된다면, 의미는 의미에 짓눌리고 짓눌리어 의미를 잃게 된다.



   반면에, 삶의 모든 것을 부질없게 느낀다면,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이야기와 사건의 의미들을 비관적이고 염세적으로 바라볼 만큼, 의미 대신 공허함만이 가득 찬다면, 의미는 무의미로 변질되어 의미를 잃게 된다.



   전자는 의미의 과잉에 따른 문제이고, 후자는 의미의 공허에 따른 문제다. 전자는 영화 속 주인공인 에블린의 삶을 대표하고, 후자는 영화 속 주인공의 딸 조이의 삶을 대표한다. 두 가지 모두 방향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길로 수렴된다. 그것은 '의미 잃음'이다. 그리고 그 '의미 잃음'은 자신의 정신세계는 물론이고, 타자의 세계 그리고 우리 모두의 세계와 우주를 - 더 나아가 멀티버스를 - 파멸시킨다.





   그렇다면, 의미의 과잉과 공허로 인해 잃어버린 의미를 어떻게 복구할 수 있을까? 영화는 이 둘 사이의 대립으로 솔루션을 찾지 않는다. 오히려 이 둘 사이를 연결하는, 즉 의미의 과잉과 의미의 공허 사이에 균형을 잡아주는 무언가를 소환한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의 남편인 에드먼드의 삶이다. 에드먼드의 삶은 의미를 잃어버린 의미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들을 '연결'해준다. 바로 '다정함(kind)'이라는 감정을 통해서.



   의미가 연결된다는 것은 이야기가 연결되는 것이고, 이야기가 연결된다는 것은 삶이 연결된다는 것이다. 다정함을 매개로 연결된 삶은 '의미 잃음'에서 '의미 있음'으로 전환된다. 즉, 과잉과 공허 속에 파묻힌 의미가 감정적 연결을 통해 되살아나는 것이다.



   좀 더 풀어서 말하면, 삶이 분주하고 혼잡하여 일상이 조각나버리고 각각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할지라도, 타인과의 정서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순간 의미는 재해석되어 되살아난다. 마찬가지로, 삶이 공허함과 무의미로 가득 찼다 할지라도, 타인과의 감정적 교감이 이루어지는 순간 의미는 재생산되어 되살아난다.





   에드먼드는 의미의 과잉(에블린)과 의미의 공허(조이) 사이의 대립 속에서 다정함이라는 전략을 보여줌으로써 잃어버린 의미를 복구시켰다. 각각의 고유한 삶들이, 멀티버스 세계 속 모든 이들의 삶들이, '다정함'이라는 감정을 통해 연결됨으로써 새로운 관계가 구축되고,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게 된 것이다.



   우리 세계에 다정함이 존재할 때, 우리는 모든 것들과 모든 곳에서 한 번에 연결될 수 있고, 그로 인해 삶의 의미를, 의미 있음의 삶을 창출할 수 있다. 아마 그래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모든 것이 모든 곳에서 한 번에)'라는 제목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물론, 영화가 조금 난해해서 내가 감독의 의도와 메시지를 정확하게 파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미의 과잉과 의미의 공허 사이에서의 다정함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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