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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Sep 18. 2020

[서평] 오제은 교수의 자기사랑노트

- 나를 사랑한다는 것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나에 대해 야박하고 냉정하며 무심하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라는 어색한 말보다 ‘나를 싫어한다’, ‘나를 미워한다’, '나는 쓸모없다'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왜 그럴까? 나는 왜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나에게 어떠한 결점과 결핍이 있길래 나를 사랑하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나는 무엇이든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스스로에 대해 높은 기준치를 세우고 이것을 달성해야만 나 자신이 가치 있게 느껴졌다. 만약 기준치에 미달할 경우, 나는 좌절하고 절망했으며, 수치심의 늪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부족한 점수, 기준 미달, 성취의 부재, 평균 이하라는 단어들은 내 존재 가치를 하락시키고, 나의 모습을 저 낮은 곳으로 강등시켰다. 나에게 관대하지 못한 나의 잣대와 기준들은 매 순간마다 나를 옭아맸고,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오제은 교수의 ‘자기사랑노트’를 읽고 나서 이와 같은 나의 강박적인 자기 비하적 모습은 내 안에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부터 내 욕구나 내가 원하는 마음보다는 부모님의 기대와 욕구에 맞추어 살아온 것이 나의 내면 아이에게 상처와 아픔을 준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한글과 알파벳을 완벽하게 습득해야 혼나지 않았으며, 초등학교 때는 반장을 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하셨다. 중학교 때는 평균 90 이상을 넘겨야 인정받았고, 고등학교 때는 1,2등급이 아니면 나의 성적은 무심히 외면당했다. 이러한 삶의 여정은 내가 무언가를 잘해야만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낳았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놀라운 아이’가 ‘상처 입은 아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린 시절 상처 입은 내면 아이는 인생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문제들을 양산해낸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누군가에게 전달되기 마련이며, 자기 자신을 대하는 생각이나 태도에도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내면 아이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서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내면 아이의 상처를 함께 슬퍼하며 다정하게 돌보아 줄 때, 부모의 역할, 거절당한 욕구들, 역기능적 가족관계 같은 장애물들에서 벗어나 치료가 이루어진다.



   헨리 나우웬은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말을 썼다. ‘상처 입은 치유자‘는 고통의 역설성과 치유의 신비를 보여준다. 고통의 자리가 곧 치유와 성장의 자리이며, 고통을 치유함으로써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나의 내면 아이가 받은 상처들이 언젠가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치유를 도울 수 있는 귀한 거름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삶의 큰 축복이자 의미로 다가왔다. 나의 아픔과 상처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가치 있는 메시지였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사랑을 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을 받는 것이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먼저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이었다. 나는 이 구절의 객체, 즉 사랑을 주고 표현하는 대상의 초점을 ‘타인’으로만 맞추다가 ‘나’에 대한 초점으로 전환시켰을 때, 내 안에 존재하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발견했다. 스스로에게서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을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된 사람만이 내 몸과 같이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것이 상처 받은 내면 아이 치료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자기사랑노트는 나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사랑하게끔 한 걸음씩 부축해주는 가이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 노트의 빈칸을 하나씩 적어갈 때마다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게 된다. 나를 사랑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오로지 나 자신의 몫이다. 나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성숙한 힘을 사용하여 자신의 내면 아이를 돌보고 치유하며 나아갈 때,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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