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축구 에세이
2020.09.21
*스탬포드 브릿지에서의 승리는 언제나 짜릿하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무리뉴 시절의 스탬포드 브릿지는 무적의 요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무려 86경기 동안 홈에서 지지 않았던 첼시의 홈 무패 신화를 기억한다면,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승점 3점을 쟁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 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법. 86경기 동안 이어오던 첼시의 홈 무패는 87경기 째에서 종결되었다. 무패를 종결시킨 팀은 바로, 리버풀이었다. 리버풀은 당시 사비 알론소의 결승골로 첼시의 홈 무패를 무너뜨리며 스탬포드 브릿지의 아성에 흠집을 냈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 경기를 본 이후로부터 첼시 원정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마치 오래된 트라우마를 끊어낸 것처럼.
2020/2021 시즌 2라운드의 빅매치는 단연코 첼시 vs 리버풀이었다. 여름 이적시장 때 폭풍 영입으로 전력을 강화한 첼시와 디펜딩 챔피언 리버풀의 매치는 화제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여전히 경기장은 무관중이라 생생한 현장감과 열정 가득한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지만, 두 팀의 비장한 모습은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 스탬포드 브릿지 : 첼시의 홈구장명
전반전은 다소 루즈하게 진행되었다. 두 팀은 서로의 발톱을 숨긴 채 으르렁 거리기만 하면서 탐색전을 펼쳤다. 첼시는 무게중심을 수비 쪽에 두면서 간헐적인 역습으로 리버풀의 뒷 공간을 노렸지만 리버풀의 수비를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리버풀 역시 경기의 주도권을 놓지 않고 찬스를 만들어 나갔지만 유효슈팅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경기의 양상에 균열을 낸 것은 '레드카드' 한 장이었다. 전반 막판, 조던 헨더슨의 전진 패스를 받으러 가던 사디오 마네를 첼시의 수비수 크리스텐센이 넘어뜨렸다. 처음 판정은 옐로카드였으나, VAR 판독 후 레드카드로 바뀌었다. 1대1 찬스를 뒤에서 두 손으로 방해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합당할 만한 판정이었다.
후반전이 시작되자 조던 헨더슨이 아웃되고 티아고 알칸타라가 투입됐다. 리버풀로 이적한 지 3일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전에 파비뉴와 로버트슨이 이적하고 몇 개월이 지나고서야 중용되었던 점을 고려하면,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티아고가 컨디션이 좋고 뛸 준비가 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기대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첼시의 수비수 크리스텐센의 퇴장으로 경기는 리버풀이 반코트 게임을 하는 일방적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축구는 흐름을 타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당연히 선제골은 리버풀의 몫이었다. 선제골은 명불허전 *마누라 라인에서 터졌다. 살라와 피르미누의 원투 패스 후 -> 피르미누의 간결한 크로스 -> 마네의 헤딩골로 마무리!
곧이어 추가골이 터졌다. 두 번째 골은 케파의 실수로부터 비롯됐다. 지난 시즌부터 잦은 실수로 많은 비판을 받아 왔는데 오늘도 볼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마네에게 골을 헌납하고 말았다. 상대 선수이지만 어린 나이에 짊어져야 할 책임과 부담감이 클 것 같아 내심 우려가 되기도 했다.
* 마누라 라인 : 마네, 피르미누, 살라의 쓰리톱을 일컫는 말
경기는 2-0 리버풀의 완승으로 끝났다. 첼시로서는 뭔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패배의 원흉을 크리스텐센의 퇴장으로만 보기에는 첼시 선수들의 역량과 조직력 구축 정도가 전체적으로 미흡했다.
반면 리버풀은 개개인의 역량이 뛰어났다. 특히, 파비뉴의 활약이 돋보였다. 조 고메스를 대신해 센터백으로 나온 파비뉴는 첼시의 공격수 베르너를 무력화시켰다. 알리송의 세이브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칫하면 흐름을 내줄 수 있는 상황에서 페널티킥 세이브로 팀 분위기를 더 견고히 만들어주었다.
티아고 알칸타라의 가세로 리버풀은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게 되었다. 45분 밖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공격의 질이 분명하게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떤 플레이를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경기종료 후 시계를 보니,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3시 30분이다. 피곤함과 더불어 찾아오는 월요병을 축구로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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