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EPL 4R] 아스톤 빌라 vs 리버풀

- 해외축구 에세이

by Sun


2020.10.05

출처 - Liverpool FC instagram



몇 년 전에 우리는 역사를 쓰고 싶다고 했는데, 오늘 역사를 썼다.
다만 잘못된 방식의 역사를 썼다.
- 위르겐 클롭 -



리버풀이 패배했다. 그런데 단순한 패배가 아니다. 무려 2-7 대패다. 최근 몇 년 동안 패배라는 단어가 낯설었던 그들이 7골이나 허용하고 패배를 하였다. 리버풀이 7실점을 허용한 것은 57년 만이자 디펜딩 챔피언이 7실점을 허용한 것은 67년 만의 기록이다. 그만큼 역사적인 패배인 것이다.


아스톤 빌라 vs 리버풀 경기는 한국시간으로 새벽 3시 15분에 경기가 열렸다. 때문에 라이브로 시청하기 쉽지 않은 경기였다. 나 역시도 긴 연휴 끝에 맞이하는 월요일 출근의 부담을 이기지 못해 본방사수를 하지 못한 채 그냥 잠들고 말았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말이다.


'작년에도 빌라 파크 원정은 어려웠지. 게다가 마네와 티아고가 현재 코로나에 걸려 출전이 어렵고, 알리송마저 부상당했다는데.. 쉽지 않은 경기겠어. 그래도 리버풀이니까 무승부 이상의 결과는 얻어오겠지?'


아침에 눈을 비비며 경기 스코어를 확인했다.

[아스톤 빌라 7:2 리버풀]

순간 잘못 본 줄 알았다. 뭐지? 어안이 벙벙했다. 패배로 인한 실망감과 좌절보다는 결과에 대한 어이없음과 현실에 대한 의구심만 들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경기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하루빨리 패배의 원인을 알고 싶었다. 그렇게 하이라이트와 각종 분석 영상 및 글들을 찾아보며 패배의 원인을 나름 분석해보았다.


출처 - Liverpool FC instagram



ㅣ전반전


패배에는 다양한 원인들이 있다. 그리고 그 원인들은 유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따라서, 어떤 원인을 해결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게 축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경기에서는 '이거다!' 하고 명확하게 짚을 수 있을 정도로 뚜렷했던 패배의 원인들이 있었다.


첫 번째 실점에서부터 패배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알리송 골키퍼의 부재이다. 골키퍼는 골을 막는 것이 중요하지만 후방에서 팀에 안정감을 형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안정적인 볼 처리, 건설적인 빌드업, 정확한 패스, 명확한 수비 라인 컨트롤은 팀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 점에서 아드리안은 알리송에 한참을 못 미쳤다. 리버풀의 후방은 너무나도 부실했고, 불안했다.


후방이 흔들리면 자연스레 수비 라인도 흔들리게 된다. 흔들흔들거리는 수비 라인은 결국 수비 라인의 붕괴로 이어져 실점을 자초하게 된다. 알렉산더 아놀드와 조 고메즈의 흔들림이 그랬다. 그들의 수비력이 논란의 대상에 오른 것은 놀라울 만한 일이 아니다. 그들의 수비력은 결코 챔피언답지 못했다. 상대의 배후 공간 침투를 너무 쉽게 허용했으며, 1대1 대인 수비에서도 지속적으로 불안함을 노출했다.


수비가 흔들리면 미드필더의 활동량으로 이를 커버해주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중원의 기동력이 너무 떨어졌다. 포백 수비를 보호하기는커녕 빌라 선수들이 자유롭게 빌드업할 수 있는 틈까지 만들어주었다. 저번 경기 때 아스날이 그랬듯이, 아스톤 빌라도 리버풀을 전방부터 강하게 압박했다. 리버풀은 보통 상대팀이 압박을 하면 침착하게 압박을 풀어 나와 역공을 하곤 했는데, 오늘은 당황하는 모습만 역력했다. 중원 싸움에서도 밀린 것이다.


팀은 연결되어 있다. 한 포지션이 흔들리면 다른 포지션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리버풀은 이번 경기에서 하나 이상의 포지션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중심을 잃고 전체적으로 흔들렸다. 특히, 상대적으로 부실했던 리버풀의 오른쪽 측면을 아스톤 빌라 선수들이 기가 막히게 공략하면서 다수의 골을 뽑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전반전은 살라의 만회골이 무색할 정도인 1-4의 스코어로 종료되었다.


출처 - Liverpool FC instagram



ㅣ후반전


골 장면을 일일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골들이 들어갔다. 특히, 골 장면 중 압권은 굴절로 인한 골이었다. 아스톤 빌라 선수들의 슈팅은 반 다이크, 아놀드, 파비뉴를 맞고 모두 골문으로 향했다. 한 마디로 빌라 선수들에게는 '뭘 해도 되는 날'이었다. 흔히 축구에서 이런 걸 운이 따랐다고 표현을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운도 실력이다. 굴절이든, 굴절이 아니든 골은 슈팅을 해야만 들어간다. 슈팅 공간을 허용하고, 상대 선수를 적극적으로 압박하지 못한 리버풀 선수들의 느슨한 수비가 결국 상대에게 '운'을 가져다주었다.

오늘 경기에서 보이지 않았던 선수가 2명 있었다. 피르미누와 조던 헨더슨이다. 응? 헨더슨은 줄곧 서브에 있었다만 피르미누는 선발로 출전했는데? 그렇다. 출전했으나 보이지 않았다. 마치 다크템플러처럼 말이다. 가짜 9번으로서 절정의 폼을 보여주었던 지난날이 환상이었나 싶을 정도로 피르미누의 오늘 경기력은 무색무취였다. 결국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채 제임스 밀너와 교체되었다.


'내가 뛰었더라면.' 경기를 씁쓸하게 바라보는 조던 헨더슨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았다. 캡틴 조던 헨더슨의 부재가 꽤 컸다.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실제로 지난 시즌 리버풀이 리그에서 기록한 3패 중 2패가 헨더슨이 부재할 때 나왔다. 한 팀의 볼 배급과 전환 플레이, 경기 조율 등을 담당하는 선수의 부재는 팀이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요인이 된다. 그가 주장이라는 것에 영향력은 배가 될 것이고.


이렇게 팀의 구심점과 중심점을 모두 잃어버린 리버풀은 경기 내내 허둥지둥거리다 최종 스코어 2-7로 치욕스러운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클롭 감독의 허탈한 웃음이 공감 가는 이유였다.


출처 - Liverpool FC instagram


아스톤 빌라가 리버풀을 만나기 전까지 무실점 전승으로 상승세에 있고, 핵심 플레이어 그릴리쉬가 건재하다는 점이 위협적으로 다가오긴 했다. 그렇다 할 지라도, 최근 리버풀의 경기력이 나쁘지 않았다는 점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경기였다. 그러나, 경기력의 레벨이 이전과는 달라도 너무나도 달랐다.


반 다이크의 말처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모두에게 많은 문제점들이 보였던 경기였다. 문제가 드러났으니 개선할 필요만 남았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번 주가 A매치 주간이라는 점이다. 가라앉은 팀 분위기와 경기력을 재정비해서 에버튼전을 잘 준비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에버튼 지금 장난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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