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시간들이 아까워서

by 오호홍

반복되는 일상을 지내면서 언뜻 보기엔 똑같아 보여도 하루하루 다른 색깔의 소중한 경험들을 많이 한다. 그런데 추억들을 담아두려는 노력 하나 없이 저절로 남는 기억 말고는 다 흘려보내며 살고 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특히나 나에게 변화와 발전이 많던 격동의 시기였는데, 매달이 다르고 하루가 달랐던 소중한 기억들이 시간 속에 흩어져버리는 게 아쉬웠다. 붙잡아 담아두고 두고두고 펼쳐보고 싶은 장면이 많아질수록 기록하고 싶다는 욕심이 커지던 차에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만났다.


책과의 만남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는 일상의 소중한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대한 에세이다. 작가가 직접 실천해온 다양한 기록 방법들과 그로 인해 달라진 삶의 태도를 따뜻하게 들려준다.


"3년 전의 날씨를, 2년 전의 대화를 기억하지 못하듯 지금이 '지금'이어서 붙잡아 둘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어째서 매번 시간을 흘려버리고 마는 건지. 기록해두었다면 기억할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


작가는 카메라로 예쁜 풍경을 발견해 사진을 찍듯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발굴해낸다. 이를 통해 익숙한 하루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고,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이것이 기록이 만든 첫 번째 변화다. 나는 그동안 일상의 소중함을 익숙함에 속아 흘려보냈고, 매일 느낀 감정들마저 뜰채로 거르는 과정 하나 없이 다 버려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잘 산다는 건, 보통의 일상 안에서 소중한 걸 발굴하고 남기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시간을 곰곰이 되짚어보며 적어두고 싶은 것들을 골라냈습니다. 점심 때 뭘 먹었지? 누구의 무슨 말에 웃었더라? 재생이 끝난 하루를 가만히 '다시 보기'하는 마음으로요. 그건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였어'에서 '오늘은 이런 기억할 만한 일이 있었네'로 넘어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평범한 하루를 구겨서 버려버리면 그날을 살아간 기억은 바로 사라져버린다. 그 하루 안에서도 의미를 찾아 이름표를 붙여주는 과정을 통해 내 삶이 별볼일 없는 하루에서 매일 기억할 만한 특별한 하루가 된다니, 정말 근사한 일이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


작가는 자신이 했던 생각, 느낀 감정을 기록하면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감정을 그냥 넘겨버리는 게 아니라, 곱씹으며 이유를 찾으면서 나를 더 이해하려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 시간을 통해 스스로에게 속마음을 잘 들어주는 단짝친구가 되어준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불편해하는 게 뭔지, 뭘 할 때 행복한지, 의식하지 못하고 흘려보낼 뻔한 걸 기록하며 점차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럼 점점 나를 위한 맞춤 선물을 하루하루 줄 수 있게 되는 거 아닐까.


"저에게 있어 마음을 돌본다는 건 대단한 게 아니라 가끔 충분히 혼자인 시간을 보내는 것, 흙탕물이 가라앉듯 하루의 번잡함이 사라지고 난 뒤 마음에 남아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일이었어요."


"1일1줍. 좋은순간모음집. 인스타그램. 피드를 훑어보면 내가 어느 계절에 어떤 순간을 좋아했는지, 언제 조그만 기쁨을 느끼며 웃었는지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걸 알고 있다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자기를 챙기며 산다는 건, 스스로를 조금 더 자주 웃게 해주는 일일 테니까요."


실천해보고 싶은 기록 방법들


연말정산


기록하는 다양한 방법 중에서 가장 따라해보고 싶었던 건 '연말정산'이다. 2025년을 떠올려 봤을 때 몇 개 파편(그 와중에 상반기는 거의 기억이 없겠지)만으로 남는 게 아니라, 달마다 개성이 강한 다채로운 장면들이 파노라마로 남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매달 마지막 날 저녁엔 노트 앞에서 혼자만의 조용한 시상식을 열어보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페이지마다 1월부터 12월까지 '이달의 '에 해당하는 목록을 쭉 적어둔다면? 12월이 되었을 때, 각 페이지를 들여다보며 한 해의 베스트를 가릴 수 있겠죠."


힘이 되었던 말들의 어록


나에게 힘이 되었던 말도 기록해보라고 작가는 추천한다. 다른 사람에게 들었던 칭찬이나 사랑의 말, 힘이 되었던 말을 며칠간 되새이며 기분 좋아했던 기억이 많은데, 시간이 지나면 무슨 말을 들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난다. 기록으로 '어록'을 남겨두면, 언제든 꺼내서 내가 필요할 때 나한테 힘을 줄 수 있을 테니까. 내 자존감 창고가 두둑해지는 것이다.


"제가 들은 좋은 말들을 기록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은 생각보다 쉽게 잊히니까요. 나중에 들춰보면 내가 그때 이런 말을 들었구나, 누군가 건넨 이 말을 징검다리처럼 딛고서 한 시절을 건넜구나, 알 수 있는 기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이 힘든 날 열어보는 것만으로 차츰차츰 기운이 차오르게 하는 비밀 노트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매일이 하루치의 인생이라고. 오늘을 잘못 쓴 메모처럼 아무렇게나 구겨 휴지통에 버리지 말고, 잠들기 전 5분 만이라도 시간의 틈새를 펼쳐 들여다보라고. 평범한 일상이 평범하게 유지되기까지 내가 어떻게 애쓰고 있는지."


나도 이제 기록하기로 했다. 내게 소중한 것들을 소중히 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내가 보낸, 앞으로 보낼 시간을 비로소 아끼게 되도록.


"그러니까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좋은 말들을 들려주기로 해요. 책상 위의 화초에게 햇볕과 물을 주듯이, 내 마음이 시들지 않게 가꿀 수 있는 양분들 역시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여력이 된다면, 내가 누군가의 말에 힘을 얻었듯이 그런 말을 돌려줄 수 있다면 더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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