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합니다, 기분좋을 때 그냥 서 있기

파자마시스터즈와 1박2일 즐기기

by 한선예

우리 가족이 힘들었을 때 손 내밀어주던 이모와 삼촌들. 나는 감사함을 잊지 않고 살아왔다.


평일에는 학교 다니고 주말에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며 교통비와 식비를 해결했다. 대학등록금까지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한 학기 휴학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할머니 말씀대로 ‘우리 집 형편에 대학은 욕심인 건가!’ 걱정과 고민으로 괴로웠다. 엄마는 동아줄 붙잡는 심정으로 이모부께 처음으로 부탁드렸다. “그랴. 지금 보낼게.” 통화 끝나자마자 들어온 등록금. 우리 모녀는 통장을 들고 울었다. 그렇게 고비를 넘겼다. 간절해서였을까? 적성이 맞아서였을까? 다음 학기부터는 장학금으로 휴학없이 무사히 졸업했다.


윷놀이로 쌀 한 가마니를 타서 집 앞에 두고 간 큰삼촌, 갈 곳 없던 우리를 선뜻 받아준 큰이모, 옷이며 신발이며 생활용품 사기도 버거울 때 “네가 입으면 좋겠더라.” 하며 넌지시 건네주던 막내 이모, 월급을 탈 때마다 잊지 않고 치킨 한 마리를 꼭 손에 들고 온 막냇삼촌. 우리 이모와 삼촌들이 계셨기에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나는 결심했다. 성인이 되어 첫 월급을 타면 부모에게 한다는 ‘그것’을 하고 싶었다. 이모와 삼촌들. 그리고 고모에게도 해드리고 싶었다. “덕분에 저 이만큼 잘 컸어요.” 감사함을 담아.


“고맙다. 선예야. 다 컸네. 다 컸어.”

“내복 잘 입을게. 기특하다.”

“첫 월급을 이렇게 다 쓰면 어떡하려고 그러니?”

빨간 내복을 받은 이모, 삼촌, 고모는 ‘기쁨 반! 걱정 반!’이었다. 난 그래도 좋았다. 뭐라도 드릴 수 있어서. ‘언제 해보겠나!’ 싶었다.


이십 대였던 나는 마흔이 되었다. 모녀 여행을 다니면서 또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엄마, 내가 좋은 데 알아봤으니까 날 좀 잡아봐. 빨리 예약하게”

“뭐라고? 가시내가 또 뭔 일을 저지르려고.”


말은 그렇게 해도 너무 좋았는지 엄마는 웃고 있었다. 여행준비부터 들뜨는 마음은 모녀 여행 때보다 더 강렬했다. 시작은 커플 옷 사기, 천을 끊어서 파자마도 만들었다. ‘드르륵 드르륵’ 미싱 작동소리로 즐거움이 가득했다.

여행 당일, 예약해 놓은 팬션에 이모와 삼촌들이 모였다. 숙소 여러 곳에 흩어져서 파자마와 커플 티셔츠로 갈아입기 바빴다.


“왜 나만 남색이냐고? 왜? 왜?”

“네가 여자냐? 남자지?”

“나도 이쁜 빨강 입고 싶다고. 담부턴 나도 똑같은 걸로 해줘. 응?”

막냇삼촌의 투정 덕분에 모두 한바탕 크게 웃었다. 밖으로 나가 파자마 기념사진 찍을 차례.


“아니, 이모 가만히 좀 서 있어봐요. (사진이) 흔들려요.”

“엄마, 좀! 가만히 서보라고.”

“너무 좋은데 어떻게 가만히 서 있냐?”


연세 지긋한 분들이 포즈를 취하다 말고 신나게 춤추고 있었다. 개구쟁이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 심정이었다. ‘우리 이모들과 삼촌이 이렇게 귀여웠나?’ 혼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역시 우리 엄마와 이모, 삼촌은 한 핏줄이었다. 끼와 흥으로 똘똘 뭉친 남매.


뭐니 뭐니해도 풀빌라의 하이라이트는 바비큐 파티와 물놀이. 바비큐 파티는 이모들과 삼촌이 아주 적극적이었으나 물놀이는 소극적이었다. 막내 이모와 우리 모녀만 즐거웠다. 튜브도 타고 물싸움도 하고. 까르르 까르르 웃느라 시간이 절로 갔다. 막내 이모의 신난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사촌에게 보냈다.


“우리 엄마, 진짜 신났네. 꽃만 좋아하는 줄 알고 꽃구경만 시켜드렸는데 이젠 물놀이로 가야겠구만. 우리 엄마 이렇게 웃는 거 처음 본다. 고마워.”


날이 저물자 이불을 깔고 화투를 치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는 공주님처럼 주무셨고 나는 여기저기 다니며 청소하고 정리했다.


“아니, 저 가시내는 어쩜 손하나 까딱안하다니. 무슨 복으로 저런 딸을 낳았대?”

“쟤는 술도 안 마시고 뭔 정리를 하고 다닌댜?”

“선예야, 쉬어라, 쉬어!”

“이모, 저 좋아서 하는 거예요. (화투) 재밌게 치셔요.”


잠자리를 준비하는 이모들과 삼촌에게 마스크팩을 붙여드렸다. 발뒤꿈치가 유난히 갈라진 이모 발을 보았다. 혹시나싶어 챙겨간 팩을 꺼냈다.


“아이고. 이모, 가만있어봐요. 이거 붙이고 자면 한결 부드러워져요.”

“아니. 내 발을 왜 만진댜? 우리 딸도 안 만지는 발을!”

“언제 이모 발을 만져보겠어요? 제가. 지금이니까 만져보죠!”

“참! 별나다. 별나.”


말이라도 시키면 얼굴 붉히고 엄마 뒤로 숨었던 나였다. 그런 내가 너무나 달라진 모습으로 어른이 되었다. 이제 이모들과 삼촌 곁에서 든든한 조카가 되고 싶었다. 처음으로 모시고 간 여행에서 가장 행복했던 이는 ‘우리 엄마’였다.


“너무 좋았어. 잘했다. 언제 우리가 같이 가보겠냐? 놀 수 있을 때 잘 갔다 왔어.”


이 여행을 시작으로 계속되길 바랐으나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조만간 같이 비행기도 타고 싶다는 이모 말씀에 내 버킷리스트도 추가되었다. 덧붙이는 말씀이 더 특별하다.


“선예는 무조건 같이 가는 거야. 알았지?”


어느새 나는 이모들에게 어린 조카가 아닌 파자마 시스터즈 막냇동생이 되었다. 우리 엄마와 이모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오래 내 곁에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같이 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게 많으니까.



10.파자마시스터즈와1박2일.jpg 파자마시스터즈와 1박2일

#파자마 #파자마시스터즈 #모녀여행 #이모조카여행 #선재도 #인천 #풀빌라팬션

작가의 이전글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영탁'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