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모녀, 추억여행- 창원 동부마을, 돝섬, 영탁 콘서트, 직지사
나는 꿈을 잘 꾼다. 행복할 때와 힘들 때마다 꾸는 꿈이 있다. 타임머신을 탄 듯 꿈속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간다.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았던 해맑은 네다섯 살로 돌아간다. 골목 여기저기를 누비며 친구, 오빠들과 뛰놀았다. 골목 끝까지 마음껏 뛰고, 공차고, ‘두두두두두’ 전쟁놀이를 하고, 소꿉놀이를 하고. 유원지 잔디밭에 엄마와 남동생이랑 같이 엎드려 깔깔깔 웃었던 곳.
마산. 마산에서 3년간의 기억은 내 머릿속에 깊게 한 부분을 자리하고 있다. 언젠가 꼭 가고 싶은 여행지로 정해놓고도 못 갔다. 워낙에 먼 거리라서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마침 가수 영탁이 서울, 대전에 이어 창원에서 단독콘서트를 하게 되었다.
“엄마, 우리 창원콘을 꼭 가야겠어. 마산 동네도 가보고”
여유있게 창원 ‘동부마을’로 향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모녀가 바람을 만끽했던 팽나무가 있는 곳. 언제나 그랬듯 우리 모녀는 영탁 이름이 새겨진 점퍼에 모자를 쓰고 갔다. 팽나무에 다다르자 우리 모녀에게 관광객들이 한 마디씩 건넸다.
“영탁팬이 왜 지금 여기 있어요?”
“영탁 콘서트 시작했을 텐데요. 여기 있으면 어떡해요?”
“아! 네. 감사해요. 저희는 콘서트 내일 가요.”
500년 이상 살아온 팽나무에서 좋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소원도 빌고 좋은 기운을 가득 담고 왔다. ‘오길 정말 잘했다.’ 마산에서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저녁은 아구찜골목에서 해결하고 숙소에 들어가 나란히 누워 팩을 하고 쉬었다.
35년이 지나서야 본격적인 추억여행을 시작했다. 돝섬 유원지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 모녀 눈에 들어온 ‘황금돼지 조각상’. ‘돝’은 황금 돼지로 ‘돝섬’은 황금 돼지섬이었다. ‘우리 영탁님도 돼지띠, 내가 행복했던 장소도 돼지섬!’ 너무 좋았다. 얼른 가방에서 영탁 솜인형을 꺼내어 황금돼지조각상에 올려놓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꿈속에서도 그리웠던 잔디밭은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유원지의 모습도 예전과 달라졌다.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잔디밭이 남아 있어서 감사했다. 거침없이 잔디밭에 뛰어들어가 엎드려 누웠다. 꼭 다시 해보고 싶었다. 어릴 적 잔디밭에서 뒹굴었던 것처럼. 어느새 엄마도 내 옆에 엎드려 누웠다.
“엄마, 내가 위로 올라갈까? 옛날처럼.”
“됐거든. 큰일난다. 나 허리 부러진다고.”
엄마 등위로 올라탔던 어린 내가 이제는 나란히 엎드렸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돝섬을 나와 계획에도 없던 거제.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57km 거리로 1시간도 안 걸린다고 나왔다.
“엄마가 가고 싶었던 ‘매미성’이 한 시간도 안 걸린대. 갈까?”
“나 진짜 가고 싶었어. 네가 선영이랑 갔던 데 맞지?”
맞다. 작년에 내 절친 선영이랑 먼저 다녀왔다. 너무 좋아서 엄마에게 자랑만 했던 곳이다. 왕복으로 2시간이니까 콘서트 입장 전에 시간은 충분했다. 호기롭게 출발. 창원을 벗어나 진해를 지났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갑자기 부산이 왜 여기서 나와? 하는 순간 높은 대교를 건너가고 있었다. 대교를 건널 때부터 차가 ‘부르릉 부릉’ 소리를 내더니 진동이 느껴졌다. 차가 더 못가겠다는 듯 차 전체가 흔들렸다.
“엄마, 차가 이상해. 멈출 것 같아.”
대교를 간신히 통과했더니 도로공사 건물이 보였다. 떨리는 양손으로 핸들을 부여잡고 주차를 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다리까지 떨렸다. 이렇게 무서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사무실 직원들에게 상황을 알리며 양해를 구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는 거죠? 많이 놀랐겠네요. 괜찮으니 어서 보험에 연락해요.”
“잘 들어왔어요. 터널로 더 갔으면 큰일 날뻔했어요.”
1시간이 다 되도록 견인차는 오지 않았다. 직원이 우리 차 쪽으로 왔다.
“아니, 왜 안 온대요? 오고도 남을 시간인데.”
같이 걱정해주고 기다려주었다. 든든하고 감사했다. 견인차는 1시간 반이 지나서야 왔다. 견인차 기사는 늦어서 미안하다며 신속하게 내 차와 연결했다. 같이 기다려준 직원에게 인사를 드리고 견인차에 올라탔다. 일요일이라 서비스센터가 쉬지만, 센터 안에 차를 가져다 놓을 수 있단다. ‘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것도 잠시 또 걱정이 생겼다.
“엄마, 내일 병원가는 날인데. 어쩌지? 큰일났다.”
“너는 왜 거기는 가자고 해서. 부산까지 오고. 차는? 병원은?”
“저. 저기요. 병원처방 때문에 그러신 거라면 진료과에 전화로 처방만 받아도 될 거에요.”
우리 모녀의 신경전에 묵묵히 운전하던 기사가 입을 뗐다. 괜찮을 거라고 다 방법이 있다고. 기사는 창원서비스센터 직원에게 우리 모녀 사연을 전해주고는 긴급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 메모까지 남겨주고 갔다. 정말 친절하고 세심한 배려를 느꼈다.
“쏘울, 진짜 많이 미안해. 잘자. 내일 아침에 올게.”
우리 모녀는 정신차리고 서둘러 콘서트장으로 출발했다. 그 와중에도 체력이 중요했기에 낙지덮밥을 든든하게 먹고 입장했다. 관람석에 앉아도 콘서트장에 온 것이 꿈만 같았다. 가수 영탁이 무대 위에 등장하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신나게 응원봉을 흔들고 뛰고 떼창도 했다.
콘서트가 끝나고 다시 우리의 현실을 직면했다. 근심을 떨칠 수 없었다. 가장 먼저 청심원을 사고 어제 묵었던 숙소로 향했다.
“엄마, 괜찮아! 잘 될 거야! 우리가 안 다쳤으니까.”
서로 마음을 진정하고 잠을 청했다. 청심원을 먹어도 놀라고 걱정된 마음에 잠을 설쳤다. 날이 밝자마자 센터로 달려갔다. 우리 모녀는 차를 발견하고 매달려 울기 시작했다.
“쏘울, 어떡해. 미안해. 흑흑흑”
“우리 집에 가야지. 집에 가자. 흑흑흑. 고치고 가자.”
영탁 이름이 새겨진 점퍼에 모자를 쓴 우리 모녀가 흐느껴 울었다. 서비스센터 직원들이 하나, 둘, 셋 여기저기서 수리하다 말고 나왔다. 웅성웅성 소리도 들렸다. 한 직원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기요. 진정하시고요. 어디서 오셨어요?”
“저희는 충남 당진에서 왔고요. 콘서트 왔다가 차가 고장이 나서요.”
“영탁팬인가 봐요? 저희가 잘 봐 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시고 대기실에서 편히 계셔요.”
“우리 차 집에 갈 수 있겠지요?”
우리 모녀는 두려웠다. 우리 차가 마산에서 집도 못 가고 폐차될 것 같았다. 차가 ‘덜덜덜’떠는 것을 처음 느껴봤으니까. 주행한 지 10년이 넘었고 장거리로 많이 다녔기에 수리로도 안 될 것 같았다.
2시간이 지났다. 다행히도 다 닳은 소모품이 문제였고 교체해서 잘 해결되었다.
“얼마 전에 땅끝을 다녀왔는데요. 이제 땅끝은 못 가겠지요?”
“충분히 갈 수 있어요. 관리만 잘해주면 5-6년은 괜찮습니다.”
특별히 다른 데도 꼼꼼히 살펴봤는데 이상이 없어서 괜찮다고 했다. 괜찮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마음이 진정되었다. 기나긴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밖으로 나온 기분이었다.
“쏘울, 장하다. 다행이야. 우리 집에 가자.”
차를 도닥도닥 쓰다듬어주고 출발했다. 긴장했다가 풀려서인지 갑자기 배고팠다. 보양식 맛집으로 검색해서 간 삼계탕 전문점.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고의 맛집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기가 막힌 우연이 있을 수가. 내가 태어난 1982년에 문을 연 식당이었다. 든든하고 맛도 좋고 후식도 시원하고. 세심하게 챙겨주는 직원도 감동이었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마산 추억여행. 우리 모녀가 사랑하는 가수 영탁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가는 곳마다 마음 써주는 분들이 계셨기에 위로가 되고 감사했다.
우리 모녀의 여행은 언제나 예측불허. 집으로 가는 길에 감사한 마음으로 김천 ‘직지사’로 향했다. 직지사는 천년의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이었다. 물론 어느 절이든 자연을 끼고 있다면 그렇겠지만. 2박 3일 안전하게 보낸 것에 대한 감사, 집까지 무사히 갈 수 있길 바라는 기도를 담아 절을 했다. 대웅전에서 나오는 길에 목각판에 새겨진 글이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변함없는 심(마음)입니다.”
영탁을 향한 우리 모녀의 마음을 딱! 표현한 글이었다. 우리 모녀가 영탁에게 언제나 변함없이 줄 수 있는 선물은 응원하고 사랑하는 마음이기에. 마산에서도 모든 순간 ‘영탁’이었다. 차가 견인되어 센터에 맡겨지는 순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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