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차림으로 '미인도'를 봤을 뿐인데

미술관에서 찾은 어릴 적 꿈

by 한선예

나는 그림을 좋아했다. 보는 것도 좋고. 그리는 것도 좋아했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꼭 해주고 싶었다. 내 첫 교육기관은 미술학원이었다. 엄마는 다섯 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가 그리고 만든 것을 집에 전시하는 게 뿌듯했단다.


“나는 네가, 그 쪼그만한 게, 미술학원 가방 들고서 ‘엄마, 다녀오겠습니다.’ 할 때가 제일 행복했다.”


나는 솔직히 내가 첫 딸인 게 싫었다. 내 마음을 다독여 줄 언니가 있기를 얼마나 바라왔는지 모른다. 엄마도 내가 딸인 게 싫었다고 한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움직임도 아들 같았고. 사람들도 아들 같다 했고. 태몽도 듬직한 아들 같은 아주 큰 대추였다고 한다. 병원에서 “딸이에요.”라는 말에 믿겨지지 않고 서글퍼서 엉엉 울었단다. “왜 딸이에요? 아들 아니고.” 외치며 말이다. 태어날 때 반기지는 않았어도 첫아이가 딸이라서 행복했던 엄마. 솔직히 미안하지만 둘째는 어떻게 키웠는지 기억도 잘 안난다고.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다. 엄마도 꿈이 있었다는 것을. 마음껏 그림 그리고 싶었던 꿈. 엄마는 어릴 적부터 그리기를 좋아했다. 가난한 집 육남매 셋째딸은 좋아하는 것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다. 교실에 떨어진 쓰다 남은 크레파스 조각들을 주워다 공책에 그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루고 자식 키우느라 어릴 적 꿈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았다.

“엄마, 그려봐.”

도화지를 건네는 나에게 엄마는 못 배워서 안된다며 늘 거부했다.


어느 금요일 저녁. 퇴근하는 나를 반기며 엄마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티비에서 그림을 내일까지만 볼 수 있대. 내일까지. 우리도 볼 수 있을까?”

한껏 들떠 있던 엄마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다음 날 우리 모녀는 가장 멋진 옷에 구두를 신고 출발했다. 버스와 전철을 번갈아 타고 마침내 간송미술관이 보였다. 미술관 입구에는 여기부터 “5시간 대기 소요시간”이라는 안내표지판이 세워 있었다. 길을 헤맨 탓인지 뾰족구두가 아파서인지 너무 늦었다. 맥이 탁 풀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두워지고 날도 춥고 배도 고팠다.

“엄마, 배고프고 춥다. 어떡하지?”

“그냥 가려고. 여기까지 와서.”

어디서 들어본 말. 매화마을에서 내가 했던 말을 엄마가 그대로 했다. 물론 나도 절대로 되돌아가기 싫었다. 그렇게 우린 대기 줄에 섰다.


세 시간이 지났다.

“죄송합니다. 관람시간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대기하는 분들은 관람이 어렵습니다.”라는 안내 멘트가 들렸다. 대기 줄에 서 있던 사람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우리 모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늘 못 보면 죽을 것처럼. 그렇게 또 한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미술관에서 방법을 찾았단다. 안전하게 최대한 들어갈 수 있는 인원수를 정하였다. 그룹이 되어 같이 정해진 시간동안 관람하고 나오는 것이다. 감사했다. 우리 모녀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에 빠져 미친 듯이 감상했다. 특히 한 작품에 서서 움직일 수 없었다. 신윤복의 ‘미인도’. 미인의 슬픈 눈빛이 살아 있는 듯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 모녀만 느낀 신기한 감정이었다. 후회하지 말고 꿈을 펼치라고. 이 좋은 세상에서 못할 게 뭐가 있냐고 말이다.


우리 모녀의 첫 미술관 관람을 기념하고 싶었다. 간송미술관 도록. 지금도 힘들 때면 펼쳐본다. 이때부터였을까! 우리 모녀가 여행지에서 도록을 모으게 된 것이.


여수하면 여수 밤바다, 벚꽃, 향일암, 오동도, 동백꽃이 떠오를 것이다. 우리 모녀도 여수 밤바다를 즐겼고, 벚꽃피는 날 향일암에 올랐다. 오동도에 들어가 동백꽃이 툭 떨어진 슬픈 아름다움에 빠지기도 했다. 여수는 우리 모녀가 좋아하는 주여행지였다. 기차여행, 단체버스여행, 가족여행으로 자주 왔던 곳이다.


그곳에 아르떼뮤지엄이 생겼다. 너무 좋았다. 들어가자마자 ‘아름다움과 놀라움’에 감동 그 자체였다.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고 대형화면을 가득 채운 명작품들이 입체적으로 나왔다. 순간, 관람하는 엄마가 궁금해졌다.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에서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엄마, 좋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좋지. 눈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 모르겠구먼.”

숙소로 이동하는 중에도 엄마는 엄청 시끄러웠다.

“이야. 세상 진짜 좋다. 그림이 움직이고. 꿈같더라. 내가 이런 데를 어떻게 오겠냐? 딸이 있으니까 오지. 딸 덕분에 별구경을 다한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여행이 효도여행이 되었다. 사실 나는 ‘효도’라는 말이 싫다. 뭔가 자식으로서 대단한 것을 해야 하는 부담으로 느껴진다. 그냥 엄마랑 노는 게 좋아서 하는 여행인데. 가끔 엄마 입맛에 안 맞는 식당에 갈 때만 빼고 즐겁다.


우리 모녀는 많이 비슷하다. 친구처럼. 좋아하는 가수도 드라마도 꿈도. 어린 순옥이와 선예는 그림을 좋아했고 상황이 안되어 둘 다 못 그렸지만 늘 그림은 꿈이었다.


용기내어 우리 모녀는 밤마다 그림을 그린다. 엄마는 자식을 향한 간절한 소원을 담아. 나는 그림책 그림을 따라 그리며 그림작가를 꿈꾼다. 부자되라고 해바라기 그림, 건강하라고 소나무 그림, 좋은 인연 만나라고 새 그림, 다 잘되라고 부엉이 그림. 엄마 그림은 민화에 가깝다. 소원을 담은 민화. 그러고 보니 엄마는 간송미술관과 최근에 다녀온 한국민화뮤지엄 작품을 가장 좋아했다. 엄마 꿈이 이제야 펼쳐진 것처럼 소원도 끝이 없나보다.

우리 모녀는 서로가 미술 선생님이 되어 응원해준다. 이 좋은 세상 못할 게 뭐가 있냐며. 하고 싶은 거 다 해.

“우리 엄마도 못해준 걸 네가 다 해준다. 두고 봐라. 넌 나중에 나처럼 후회 안 할 거다.”


덧붙이는 이야기. 엄마는 65세부터 틈틈이 그린 작품으로 올해 칠순 작품전시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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