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발견한 ‘이것’, 덕분에 떠나요

유쾌한 모녀여행에 깃든 사연

by 한선예

우리 모녀여행은 기차로 시작했다.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전철로 출퇴근했던 나는 기차여행사 홍보물이 계속 눈에 밟혔다. 물론 엄마와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했기에 더욱 보였을지도 모른다.


왜 모녀여행을 하는 걸까.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97년이었다. IMF 외환위기는 아버지가 하였던 무역업도 무너뜨렸다. 우리 가족에게 닥친 큰 위기였다. 이층 단독주택에서 행복하게 살다가 갑자기 모든 것을 잃었다. 집, 차, 피아노, 아끼던 물건들.


잃지 않은 것은 우리 가족의 긍정에너지였다.

“원래 우리한테 없었던 거야. 괜찮아.”

“또 일어나면 되지.”

부모님 말씀이 맞다. 이층 단독주택에 살게 된 것 자체가 선물이었다. 그 전에는 반지하에서 비가 오면 물을 퍼내며 살았으니까. 나는 그 힘든 시기를 잘 버티어 대학까지 무사히 졸업하였다.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하고 마침내 사회인이 되었다. 이제 우리 집 생활비는 내가 책임질 수 있다는 것에 K-장녀답게 마냥 자랑스러웠다. 매달 급여로 집 월세도 내고 식재료도 사고 필요한 물품, 군대 간 남동생 간식도 하나 둘씩 살 수 있었다. 뿌듯함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다가 터진 것처럼. 목욕탕에서 발견되었다. 나는 평소대로 등을 밀어주고 샤워하다가 엄마 가슴이 이상함을 느꼈다. 엄마는 유방암이었다.

‘아! 진짜 끝이 없구나. 롤러코스터 같은 삶!’


어느 날이었다. 퇴근하고 집으로 오니 엄마가 누워 계셨다. 깜짝 놀란 나는 엄마를 흔들어 깨웠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인삼 다섯 봉지를 먹었어.”

엄마의 고향은 금산. 우리 이모는 고향에서 평생 인삼농사를 지었다. 여동생이 아프다고 하자 이모는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며 인삼(수삼)을 두 자루 보냈다. 엄마는 인삼을 달여서 한 번에 다섯 봉지를 벌컥 마셨단다. 얼마나 세던지 엄마는 바로 쓰러졌다가 다행히도 깨어났다.

어떤 날은 친할머니가 민들레를 캐서 보냈다. 민들레가 항암효과 있다는 말에 며느리를 살리고 싶어 당진 곳곳을 다니며 캐서 한 자루 보내신 거다. 민들레와 청국장환을 만들어 엄마는 정성으로 매일매일 먹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출퇴근과 기도뿐이었다. 퇴근하고 식사를 마치면 내 방에 들어가 조용히 불경을 외며 염주를 돌렸다. 딸의 간절한 기도는 눈물과 콧물이 섞일 때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었던가! 항암치료를 하기 전, 재검진을 하는 날이었다.

“환자분 같은 경우는 제가 두 번 보았습니다. 폐경기 전후로 여성들이 암으로 진단받았다가 깨끗하게 없어졌습니다. 환자분도 그런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적적인 일인가?’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엄마의 암이 흔적만 남기고 몇 달 만에 깨끗이 없어졌다니. 엄마에게 다시 살아보라고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금껏 우리 가족에게 롤러코스터 같은 삶이 연속이었다. 그만큼 지금이 귀한 시간으로 느껴졌다. 반복되는 일상으로만 보내기가 너무나 아까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없어질까 봐 두려웠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노래 가사가 문득 떠올랐다. 나는 결심했다. 엄마에게 새 삶이 왔으니 이제부터라도 엄마와 마음껏 즐기며 여행하고 싶다고. 이 결심이 여행을 갈 때마다 내 마음을 다독이는 다짐이 되었다. ‘엄마랑 즐겁게 여행하자. 싸우지 말고 참자. 만일 싸우더라도 빨리 웃으며 화해하자. 엄마랑 건강하게 여행 갈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 나름 거창하게 혼자 다짐하고 여행을 가니 엄마는 나에게 자주 말한다.

“너는 밖에 나오면 잘하더라. 이상하게. 내가 애기가 되잖아.”

우리 모녀를 만나는 사람들은 묻는다.

“이런 모녀 처음 봐요. 아니, 어떻게 엄마랑 여행을 재밌게 다녀요?”

우리 엄마는 쑥스러운 마음에 딸이 시집을 못가서 그런 거라며 웃는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하며 나도 같이 웃는다.


사연 없는 인생이 있을까! 우리 모녀여행, 사연 있는 여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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