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 행복했다낭, 또 가고 싶다낭

아픔을 딛고 떠난 베트남 여행

by 한선예

당진에 이사 온 이후로 부모님은 두 할머니를 모셨다. 건강히 지내오다가 거동도 불편해지고 치매증상이 생겼다. 한동안 부모님은 위아래층으로 다니며 직접 모셨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두 할머니를 모시기에 부모님도 건강하지 못했다. 결국은 가까운 요양병원으로 친할머니 먼저, 2년 뒤에는 외할머니까지 모셨다. 같은 요양병원에 같은 병실, 두 할머니는 마주 바라보는 자리에서 지냈다. 친할머니는 외할머니를 살뜰히도 챙겼다. 내향적인 사돈이 기관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까 봐 걱정이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요양병원이기에 부모님은 하루에 적어도 1-2번은 방문하여 드시고 싶은 것, 챙겨드릴 것을 확인하였다.


1년이 지났다. 벚꽃잎이 휘날리던 봄과 뜨거웠던 여름, 친할머니를 보내드린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외할머니도 돌아가셨다.

“뭐 하려고 왔어? 바쁘게 뛰댕기는 것이.”

“울 할머니 보고 싶어 왔지. 내가 왜 왔겠어?”

“시집을 가야지. 시집을.”

“할머니가 좋은 사람 찾아주면 가지.”

“그랴. 할머니가 찾아줄게.”

외할머니와 했던 마지막 대화였다.


가을. 갑자기 동네 개들이 진드기에 물려 죽어가고 있었다. 우리 집 ‘똘똘이’도 피하지 못했다. ‘똘똘이’는 우리 집 앞에 버려져 있던 작은 강아지였다. 이름대로 똘똘하고 사랑스러웠다. 어찌나 똘똘한지 홍삼가게 안으로는 절대 들어오지 않았고, 아버지가 일하는 아파트 경비실까지 같이 출근하고 퇴근했다. 새끼들을 낳을 때마다 장에 내다 팔자 몰래 숨어서 낳기도 했다. 6년을 함께했던 똘똘이가 예고도 없이 그렇게 갑자기 떠났다.

그 해는 떠나보내는 아픔으로 가득했다. 코 수술을 하는 고통과 아픔을 한꺼번에 치른 엄마를 달래주고 싶었다. 그래서 큰마음을 먹었다. 다행히도 마침 글을 쓴 그림책이 출간되어 계약금을 받았다.

‘그래, 이번이 기회다. 가까운 동남아라도 다녀오자.’

국내도 좋지만 다른 나라로 가서 여기 일은 잠시 잊기를 바랐다.

시작부터 성공 예감. 엄마는 여행이야기를 꺼낼 때부터 기다렸다는 듯 신이 났다. 그러고 보니 순천만여행을 끝으로 이래저래 못 갔다. 다리 수술하고 회복이 안 되어 못가고, 두 할머니 편찮으셔서 못가고, 요양병원에 모셔놓고 죄송해서 못가고. 못 가는 이유는 계속 이어져 왔다.


여행가기 하루 전이었다.

“엄마, 내가 용돈 줄게. 다닐 때마다 엄마가 팁도 주고, 사고 싶은 것도 사.”

미리 준비한 달러를 봉투에 담아주자 엄마의 얼굴이 꽃처럼 활짝 피었다. 옆에서 아버지는 부러운 듯 바라보더니 오랜만에 달러를 본다며 웃는다. 아버지한테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3박 4일 여정. 대부분 동남아 여행이 그렇듯 첫날은 비행기타고 베트남 도착 일정으로 끝. 본격적인 여행은 둘째 날부터였다. 우리 엄마가 가장 행복했다는 다낭 호텔 조식으로 시작했다.

“있잖아. 저기 저 멋진 사람이 나한테 빵 이렇게 먹으라고 알려줬다.”

“울 엄마 좋았겠네!”

“저렇게 멋진 사람이 나한테 말했어.”

우리 엄마가 그렇게 소녀처럼 수줍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때 처음 알았다. 엄마도 소녀였고, 여자였다는 것을. 엄마는 지금도 가끔 그 멋진 신사를 얘기한다.

“진짜 멋진 신사였어. 내가 언제 그런 신사를 만나겠니?”

엄마는 호텔 조식이 행복한 게 아니었다. 멋진 신사가 빵을 건넸고 못 알아듣는 영어지만 기분좋은 말이었고. 베트남 커피도 향긋했고 달콤했다. 세 잔을 들이마실 정도로.

KakaoTalk_20250503_210201196_07.jpg 멋진 신사 이야기로 세 잔째 마시는 엄마
KakaoTalk_20250503_210201196_05.jpg 베트남 전통모자 쓰고 찰칵!

셋째 날, 관광지에서 사진사에게 1달러를 주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저 아저씨가 뭐라고 했는데. 니가 뭐라고 하는지 들어봐.”

“아저씨가 엄마 예쁘다고 해서 내가 고맙다고 인사했어.”

“난 욕하는 줄 알고 나도 욕할 뻔했다. 안 하길 잘했네.”

엄마는 너무 웃겼는지 깔깔대고 웃었다. 전날 호텔에서는 멋진 신사가 말을 건넸다고 행복해하더니 오늘 관광지에서는 베트남 사진사를 오해하고 화낼 뻔했단다. 우리 엄마는 외모지상주의자였다.


KakaoTalk_20250503_210201196.jpg 베트남 사진사가 찍어 준 기념 사진

아름다운 풍경에 맛좋은 식사로 행복한 여행이 이어졌다. 하루 세끼를 남이 정해놓은 식당에서 남이 해주는 음식이니 얼마나 행복한가! 엄마는 여행 내내 식사를 마치면 장난끼 가득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인사했다.


“딸래미 잘 먹었습니다.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호텔에 들어오면 서운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꼭 시집가려고 준비하는 것 같다. 시집가기 전에 엄마랑 마지막 여행 온 것 같다. 이러면 안되는 데 서운하다. 너 시집가면 나 어떡하지?”

“별걱정을 다한다. 엄마, 내가 시집가면 어디 멀리 가냐!”

엄마는 그때 전혀 몰랐다. 내가 10년째 엄마 옆에서 준비만 하고 있을 줄이야.


마지막 날, 베트남 시장을 다니며 아기자기한 소품이며 가방들을 구경했다. 한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간이 테이블에는 베트남 관광상품인 팝업카드가 20-30개 정도 펼쳐져 있었다.

“엄마, 내가 베트남에서 사려고 했던 게 이거야. 예쁘지?”

팝업카드를 보며 신나게 떠들던 나는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베트남 모녀가 보였다. 우리가 말할 때마다 엄마는 딸에게 손짓을 했고, 딸은 우리의 입 모양과 말을 들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모녀 모습이 꼭 우리 같았다. 엄마도 나와 마음이 같았는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난생처음 허세를 부려보았다. 테이블 위에 있는 카드 전부 사겠다고. 놀란 딸은 재차 확인했다. 모두 사겠다며 남아있던 달러를 보여 주었다. 노점상 모녀는 우리가 간 뒤 웃으며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다.

“잘했다. 잘했어. 꼭 우리 같더라.”

“다행히 비싼 게 아니어서 살 수 있었어. 휴.”

KakaoTalk_20250503_210201196_09.jpg 베트남에서 사온 팝업카드

베트남 모녀여행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행복을 집에 가서도 잊지 말자며 엄마는 다낭공항에서 모녀커플가방을 샀다. 꼭 다낭에서 우리 모녀 커플 가방을 사고 싶었단다. 행복한 기운이 늘 같이 있어 줄 것 같아서. 우리 엄마의 이 믿음은 지금도 변함없다. 행복했던 여행지에서 커플가방구입은 다음에도 이어진다.


“지금껏 다닌 여행 중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

“알면서 뭘 물어? 다낭이지.”

“또 가고 싶어?”

“응. 너랑 둘이 또 가고 싶어. 또 가도 좋을 것 같애.”

어제 물어도, 오늘 물어도, 내일 물어도, 엄마는 똑같은 대답이다. ‘다낭’이 제일 좋았다고. 사실 우리 모녀에게 외국여행으로 ‘다낭’이 처음도 아니다. 내가 아주 어릴 적 가족여행으로 아시아, 동남아시아 위주로 몇 곳을 다녔다. 그래서 덧붙여 뭐가 좋았냐고 물어보면 변함없이 대답한다. 멋진 사람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구경하고, 마음껏 사고, 신나게 다니고, 다 좋았다고 말한다. 더 물어보면 마지못해 진짜 대답을 한다.


“내가 이제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니까 좋아.”


아픔을 달래주려고 간 여행지 베트남 ‘다낭’이었다. 엄마는 지금도 힘들 때면 ‘다낭’을 떠올린다. 가장 힘들 때 간 ‘다낭’에서 딸과 함께 다시 힘을 얻어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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