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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결국 살아

지구감상일지: 이터널 선샤인

by 선연



로맨스 영화라면 치를 떨었다. 남들의 사랑 이야기 왜 보냐는 주의였다. 그렇게 넘긴 로맨스 영화가 수두룩 빽빽이다. 그렇게 넘긴 로맨스 관찰 리얼리티가 차고 넘친다. 관심이 없어서. 재미가 없어서. 얻을 교훈이 없어서란 이유로.


그러다 작년 겨울. 이터널 선샤인을 추천받았다. 평소와 같이 로맨스 싫다며 반항하는 나에게 이건 달라. 그냥 사랑 이야기가 아니야, 란 말로 당부한 친구의 말에 속아 넘어가는 척했다. 시간 때우기 용이었다. 집중할 생각은 없었다.


침대에 대강 기댄 자세에 흐린 눈으로 영화를 보던 나는, 영화 엔딩 크레딧 직전 'Okay'란 말이 짐 캐리 입에서 나올 때쯤 팅팅 불은 만두가 되어 있었다. 사랑 이야기라곤 치가 떨리게 싫어하던 내가 사랑 이야기 때문에 운 최초의 순간이었다.


영화는 내내 묻는다.

사랑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사랑은 사라질 수 있는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득일까 벌일까.





망각이란 재생 능력은
어쩌면 사랑의 무기다


인간은 본디 망각의 동물이다. 영원할 수 없는 기억을 자양분 삼아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에 충실하다. 기억은 사진일 수 없기에 그렇다. 완벽하게 현상될 수 없으므로. 우리는 기억을 구성하는 감정에 기대어 더듬더듬 살아간다. 망각이란 재생 능력 덕분이다.


그래서 종종 그 재생 능력을 남용하고 싶어질 때가 온다. 기억에서 지워버리고픈 경험이 생기는 경우가 그렇다. 쪽팔린 이야기. 부끄러운 이야기. 수치스러운 이야기. 짜증 나는 이야기. 역겨운 이야기. 지독한 이야기. 나의 어떠한 잊고 싶은 이야기가 생성될 때, 상상하곤 한다. 아. 이거 그냥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다. 없애버리고 싶다. 침대에 누워 중얼거리기 바쁘다.


그리고 그러한 기억의 일부엔 '사랑 이야기'도 존재한다.


사랑을 하면 으레 유치해지기 마련이다. 치사해지고 옹졸해지기도 한다. 그런 내가 미워지곤 한다. 사랑하는 상대를 바라보되 그런 너를 미워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망을 택할 때도 있다. 다신 보지 말자며 번호를 지우고, 사진을 버리고, 선물을 판다. 사랑이 지워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위. 사랑이 닳아 휘발되리란 믿음에서 비롯된 액션.


그러니까, 네가 지긋지긋해져 사랑 따위 내다 버리겠다는 묵언 시위인 셈.


그러나 그걸로도 불충할 때가 있다. 며칠 밤 울고 불며 "기억을 도려내고 싶다"란 생각을 떠올린 누군가가 많으리라. 이터널 선샤인은 그 설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 속에선 사랑하는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도려낼 수 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어서, 혹은 잃고 싶어서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그 대상은 헤어진 연인부터 나의 가족까지 다양하게 있으리라. 영화 속, 찰나지만 강아지를 떠나보내고 병원을 찾은 사람도 등장한다. 병원 로비에 앉아 있다. 박스에 담긴 강아지 용품을 보고 마음이 슬퍼졌다.





사랑을 이루는 것은 기억이라
기억을 내다 버리겠다


영화 속 클렘도 그랬다. 조엘이 지긋지긋해져 그를 지웠다. 기억을 도려냈다. 이에 열받은 조엘 역시 병원을 찾고,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중얼거리다 이내 본인도 기억을 지우겠노라 선언한다. 오기고 치기였으리라. 사랑했던 기억을 없앤 그녀에 대한 복수. 그리고 나 또한 망각이란 것을 통해 너로부터 해방되겠다는 시위. 그래서 영화는 사라지는 조엘의 기억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영화는, 그 기억이 순차적으로 아름답게 사라지는 식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죄다 조엘의 후회와 미련으로 뒤덮여 있다. 난잡하고 복잡하다. 조엘은 그녀를 떠올리고, 떠올리고, 떠올리다 이내 후회한다. 이 기억만은 남겨 줘요. 그녀를 잊고 싶지 않아요. 사랑했던 기억 - 조엘의 품 안에서 웃고, 울고, 사랑한다 중얼거린 모든 것 - 을 잃고 싶지 않아요.


기억은 대신해 줄 수 없어. 조엘은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 기억을 가진 사람은 오로지 둘 뿐이란 사실을. 그들이 기억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들이 나눴던 무수히 많은 나날을 대신 기억해 줄 수 없단 사실을. 본인이 잊으면 이 지구에서 영영 없던 일이 되어버린단 점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클렘을 끌고 이리저리 도망치지만 역부족이었다. 어린 시절로도 도망갔으나 무용했다. 흰 눈밭으로, 도로로, 어딘가로... 영영 도망치고자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조엘의 기억은 결국 엔딩에 도달했다.




그리고 후회의 연속이다. 클렘의 목소리를 빌어 조엘은 후회한다. 가지 말 걸 그랬어...
그때 하지 못했던 행동들에 대하여.

그때 해주지 못한 말들에 대하여.

사랑이란 늘 그렇듯이.



사랑은 결국 살아


아침이 되자 조엘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몬탁으로 향한다.


사랑이 지워졌으나 몬탁으로 향한 것이다. 차마 지워지지 못한 연필 자국 같은 셈일까. 그 자국을 붙들고 기차에 올라탔다, 이내 클렘을 만난다. 이윽고 사랑에 빠진다. 지독한 굴레다. 사랑에 빠진 둘은 진실을 마주한다. 역시 살아남은 사랑을 가진 메리 덕분이다.


사실을 알게 된 클렘은 다시금 사랑에 빠졌듯 두려움에 빠진다. 우린 결국 사랑하게 되어도 예전과 다를 바 없이 싸우며 헤어질 것이라고. 당신은 곧 내가 미워질 것이라고. 우린 서로를 사랑하나 지겨워하고 숨 막혀할 것이라 말한다. 그에 대한 조엘의 대답.


"Okay."




우리네 세상엔 라쿠나가 없다. 그러니 더더욱 사랑을 망각할 수 없다. 21세기 진보한 과학 기술로는 사랑을 없애고 없앨 수 없단 의미다. 그러니 사랑은 살아남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가 나눈 모든 사랑은 기억이 남아있어도, 기억이 사라져도, 결국 다시금 사랑에 빠지고 만 조엘과 클렘처럼 살아남으리라.


이상하게 봄 내음이 나면, 겨울바람이 쏟아지면 이터널 선샤인 생각이 난다. 사계절 속 불특정 구간마다 불현듯이 떠오르곤 한다. 아마도 클렘의 머리색에 사계절이 있어 그런가. 사랑은 사계절 내내 살아 숨쉬고 있기에 그런 것인가.


아무튼 사계절 속에서 불현듯 피어나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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