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이면 불어오던 보랏빛 그 바람
무사태평한 한 주를 마치고 맞이하는 감사한 금요일 저녁시간이었다.
식구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내가 차려낸 집밥을 들고 있었고, 나는 밥 대신 바나나를 까먹으며 ‘식탁에서 휴대폰 사용 금지’라는 우리 집 디지털기기 사용 규칙을 어기는 중이었다. 쪼꼬, 캔디 사료가 똑 떨어져 당장 쿠팡 로켓배송으로 배송시켜야 하니까, 라며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엄지 손가락을 놀리고 있었다. 입으로는 ‘연어를 잘 먹었었나? 참치는 전에 토했었던 같기도 하고...’ 혼잣말도 같이 중얼거려 준다.
하필 꼭 그럴 때 울리는 카톡 알림창은
(사진)
이라고만 떠서 궁금증에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카톡창을 열었다. 얼굴은 여전히 고양이 사료를 결제하는 중.
친한 언니가 오늘 산책 중에 찍은 사진이라며 보랏빛 꽃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린 사진을 올렸다.
“나이 먹었나 봐, 꽃이 이뻐. “
”그래 꽃 사진 찍지마아아아~~“
하고 답을 보내주었다.
우리 아직 꽃 사진 찍을 나이 아니잖아, 그리고 아직도 언닌 꽃 보다 너무 예쁘다구, 라는 애교가 포함되어 있는 말이었다.
일본작가 마스다 미리처럼 나도 어릴 적에 엄마를 보며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는 걸까?’ 궁금해서 물어보곤 했었다. “애들은 몰라도 돼. “ 하고 저지당한 기억도 있다. 어른이 되고 보니 허무하게도 어른들의 대화 속에 특별한 심오함은 없었다! 다만 꽃이 예뻐서 사진을 찍어 보내고 함께 감탄하는 일을 어릴 때는 전혀 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였나 갑자기 광안리 밀락더마켓에 가게 되었던 날, 우연히 마주친 벚꽃길에서도 선루프를 열어젖히며 흥분해서 동영상을 찍던 언니도 이 언니다.
그냥 언니는 여리고 아름다운 것은 다 예뻐하는 여자인가 보다.
나는 단번에 언니가 보내준 사진 속 보랏빛 꽃나무, 등나무를 알아보았다. 아직 4월 초인데 너무 빨리 피었네. 우리나라도 이제 정말 아열대기후인가.
나는 등나무 하면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초여름 막 뜨거워진 태양볕이 내리쬐던 학교운동장,
운동화 속까지 침범해 하얀 양말을 황톳빛으로 만들던 동글동글한 모래알갱이의 불편한 촉감,
불타는 고구마처럼 달궈진 우리 얼굴을 식혀주던 펭귄 수돗가(밤 12시가 되면 물탱크 위 펭귄동상들의 방향이 바뀐다는 학교 괴담이 있었음),
그리고 한 걸음씩 오르기에는 높고도 넓었던 계단 겸 의자였던 스탠드.
학교운동장 한 면에 길게 일직선으로 뻗어있던 5층 정도의 그 스탠드의 중간쯤에 등나무 그늘이 있었다.
우리 학교의 역사는 잘 모르겠지만 어렸을 적 내 기억에 등나무는 꽤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듯했다. 뒷화단에서 시작된 튼튼하고 구불구불한 줄기는 철제기둥을 감고 뻗어올라 꽤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그 면적은 스탠드에 아이들을 주욱 앉혀 놓았을 때 두 학급 정도를 덮을 수 있는 너비였다.
학교 행사가 있어 전교생이 스탠드에 앉아야 할 때면 우연히 등나무 그늘 아래를 차지한 학급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초여름이 되면 작고 예쁜 보라색 꽃들이 오종종 달린 꽃가지들이 마치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등나무 그늘에서 아래로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다 가끔 바람이 불면 바람을 따라 보라색 꽃비도 떨어지곤 했었다. 그렇게 예쁜 꽃나무 이름을 세상에 ‘등나무’라고 밖에 지을 수 없었을까? 야속해라.
운동장에서 실컷 뛰어놀다 등나무 그늘 아래에서 선선한 초여름 바람을 맞던 그 기분. 그 바람에는 꽃향기도 실려있었겠지.
30여 년 전 그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면 거짓말일까?
“학교 마치고 등나무에서 보자! “
등나무는 늘 설레는 우리의 만남의 장소였다.
가끔 있는 야외수업의 교실이기도 했고, 신나는 체육시간 반별 대항 경기가 있는 날이면 열띤 응원이 펼쳐지는 응원석이기도 했다. 그러니 등나무를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어리는 게 당연할 수밖에.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버린 지금 그때를 떠올리면 아득한 시간이지만, 사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시간 내어 찾아가 볼 수도 있는 거리에 나의 모교가 있다.
그 등나무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시원한 선물을 주고 있을까.
등나무의 꽃말처럼 마흔이 넘은 내가 찾아가도 보랏빛 손을 흔들며 ‘환영’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