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고양이의 몸뚱이도 번쩍, 두 발로 서게 만드는 건
새다.
딸아이방 베란다 실외기 뒤,
비둘기가 둥지를 틀었다.
미리 알았다면 어떻게든 조치를 취했을 텐데
둥지를 발견했을 땐 이미 깨진 알껍질도 함께였다.
비둘기도 아차 싶었겠지.
실컷 고르고 골라 둥지를 틀기로 선택한 집에
호기심 왕성한 아이가 셋,
천적이나 다름없는 고양이가 두 마리나 있으니.
새의 둥지는 정말로 그림책 속의 삽화처럼 동그랗고 예뻤지만
뾰족하고 메마른 나뭇가지들이 여린 생명을 보듬기엔 거칠어 보였다.
아이들이 궁금함에 몇 번씩 내다보아도 다른 새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건 본 적이 없다.
품고 있는 것이 또 다른 알인지,
이미 태어난 새끼인지,
절대 보여줄 수 없다는 듯 꼼짝 않고 품었다.
우리가 자꾸 창을 열어보는 관심과 호기심이 불편하고 두려울 텐데, 모성인지 부성인지 부모는 참으로 대단하다.
일주일이 지나고 또 일주일이 지났을까.
무심코 창을 열어 내다봤더니, 으익!!
어미는 오간데 없이 새끼만 덩그러니 남았다.
미안하지만 예쁘거나 귀여운 아기새는 결코 아니었다. 이젠 솜털이 빠지고 빳빳한 깃털이 발간 살에 콕콕 박힌 게 동심파괴하기에 아주 적절한 모습이었다.
어미새는 새끼 먹일 벌레라도 잡으러 갔나?
혹시 우리가 계속 내다봐서 불안함에 둥지와 새끼를 버리고 간 걸까?
밤새 추울 텐데, 어미가 오긴 오는 건가?
사실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은 객식구가 생겨
걱정과 근심이 배로 늘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특별히 없지만
아가야, 걱정 마.
늙고 힘이 없는 착한 고양이란다.
절대 널 해치지 못하게 할 테니 그것만은 믿어도 괜찮아.
어서 자라서 에어컨을 돌려야 하는 여름이 오기 전에는 둥지 밖으로 날아가주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