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사랑했다. 분명 사랑하는 것 같았다. 디가 내게서 한 걸음 떨어져 친절하게 웃어줄 때, 나는 그 거리감을 없애고 싶어서 애가 탔다. 디가 한 걸음 물러서면 내가 다가가서 물어봤다. 키스해도 돼? 디는 좋다고 했다. 그러나 절대 내게 먼저 키스하지는 않았다. 디는 바빴다. 조금만 기다리면, 조금만 우리가 더 가까워지면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충만하고 만족스러운 친밀감을 한껏 만끽할 테니 더 친해지도록 노력해야 했다. 디가 바쁘다며 날 만나지 않을 때마다 계속해서 더 멀어질 것이 겁났다. 붙잡아 두기 위해 대단한 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뭘 해야 할까 내가 더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 줄까. 질투심을 유발해야 할까. 전형적인 공포 회피형의 애착 활성화 상태였다.
계속해서 관심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거절만 당한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고 싶어 지면 디는 반 발자국 다가왔다. 보고 싶다고 말했고, 하루 종일 같이 있고 싶어 했다. 나는 디가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냉랭해 보여도 날 떠나지는 않는구나. 그렇다면 이제 디에게 정직하게 내 마음을 털어놓고 설명을 요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어째서 자꾸 바쁜 거야? 그렇게 안 하기는 어려워? 나는 널 신경 써. 너를 좋아해. 네가 그렇게 하면 마음이 아파. 거절당하는 느낌이야. 멀어질 것 같아 불안하고, 슬퍼.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려 줘. 디가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다. 소통을 저따위로 하다니. 어차피 날 좋아하지도 않는 것 같다. 디 따위는 필요 없다. 더 이상의 노력은 하고 싶지 않다. 디가 날 좋아한다면 분명 내가 표출하는 이 거리감을 눈치채고 내게 다가올 거야. 나는 시큰둥하게 앉아서 디가 나를 향한 마음을 증명해 보이기를 기다린다. 디는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 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 디 따위 진짜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정이 떨어진다고. 전형적인 공포 회피형의 애착 비활성화 전략이다.
디에게 온갖 작업의 기술을 써야겠다고 생각할 때는 의욕이 넘친다. 앵커링, 뭐 그런 것들. 디가 좋아할 만한 오붓한 데이트 코스를 짜고, 어떤 선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디가 날 자발적으로 사랑하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굳은 다짐을 한다. 그런데, 디와 솔직하게 소통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에는 의욕이 식어버리고 디 따위 두 번 다시 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내 마음을 표현하고 존중받기를 기대하는 것, 그것 만큼은 하고 싶지가 않다. 그렇게 해 봤자 내가 원하는 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디는 나를 우습게 볼 것이고, 내가 자길 좋아한다는 걸 너무 확신해서 내게 함부로 할 것이다. 질려서 떠나버릴 것이다. 디는 그런 인간일 것이다. 디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에 관해 책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디를 좋아했으면서, 문득 그렇게 단정 짓는다. 솔직히 소통을 하느니 내가 먼저 놓아버려야지, 이 관계를. 나는 디에게 두 번 다시 연락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만약 디가 만나자고 하면 무시하거나 바쁘다고 둘러대기로 한다.
사랑을 더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식의 관계 습관을 끊어야 한다. 내가 도망가고 싶어 질 때는 디를 만나야 하고, 쫓아다니고 싶을 때는 디가 필요로 하는 공간을 주며 기다려야 한다. 디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을 그냥 밀쳐내고 내 마음을 담담하게 털어놓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디에게 하나하나 알려 주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디가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애정표현을 해 줄지 모른다. 디가 조금도 내게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건 나와 디 사이에 내가 만족할 만한 친밀감이 생길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그때는 끝내자고 말해야 한다. 유혹 전략을 써서 디의 마음을 조종하거나, 밀고 당기는 식으로 디의 불안감을 고조하는 건 답이 될 수 없다. 나는 디에게서 돌이킬 수 없는 거절을 당할까 봐 대화를 피하는 것이다. 내가 알아듣게 말했는데도 싫다고 할까 봐. 그런 식으로 거절을 미뤄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괴롭기만 하다.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