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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율 Nov 23. 2020

내 곁의 ADHD 성인이 날 불편하게 할 때는 이렇게

스트레스와 상처 없이 ADHD 성인과 잘 지내는 6가지 소소한 팁

ADHD가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내 주변의 ADHD 성인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나는 ADHD 성인 당사자이자 각자 다른 어려움을 갖고 사는 여러 ADHD 성인들을 곁에 뒀다. 같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ADHD인에게 도움이 될만한 팁을 모았다. 반드시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사실 없다. 주변에 주의 집중과 시간관리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과 잘 지내보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써먹어 볼 만한 팁이다. 친구, 가족, 애인, 직장 동료 등 주변의 ADHD 성인과 지내면서 서로 상처 받지 않으면 좋으니까!


ADHD를 좀 더 심장 가까이에서 이해해 보고 싶다면 이 글: ADHD를 오해한 밤 가족에게 생긴 일




가장 먼저 꼭 기억할 것 두 가지:


ADHD가 없는 입장에서는 아무리 상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받아들이고, 상처 받지 않기.


ADHD는 스펙트럼 질환이다. 단순히 선형적으로 중증도를 판단할 수도 없고, 개인의 환경과 성격이 다른 만큼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 다를 수 있다. 특히 자신의 증상 관리를 잘하는 ADHD 성인은 그저 좀 잘 깜빡하고, 가끔 좀 덜렁대며, 가끔 좀 충동적인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뇌를 가진 사람의 사고방식과 동기를 추측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나도 깜빡하는 일이 많지만, 정말 중요한 일은 잊지 않는데 저 사람은 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구나!" 같은 생각은 도움이 안 된다. 저런 사람과 더 이상 어울릴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자유지만, 불필요하게 상처 받지는 않으시길!


ADHD 성인도 개성이 있는 인간이고, 한 사람의 어른임을 인정하고 대화하되 선을 넘지는 않기.


차이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물어보자. 참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말해 주고, 해결책을 함께 찾아보자. 만약 그렇게 접근했는데 "난 ADHD니까 네가 그냥 다 이해해!"라고 반응한다면, 아직 소중한 사람을 곁에 둘 준비가 안 된 사람이다. 우리는 완벽하지 못해도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상대의 모든 행동을 "또 ADHD처럼 군다!"고 해석하거나, 본인이 원하는 것 이상의 치료를 강권하거나,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내가 나서서 채워 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지는 말자. 결국은 본인이 노력해야 한다.




본격적인 팁:


1. 실수를 이해해 주되, 면책권을 주지는 말기.


시간 약속이 됐든 뭔가를 기억하는 일이 됐든 ADHD 성인이 어려워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해 주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면책권을 줘서는 절대 안 된다. 마감을 못 지킨 ADHD 성인에게 "그래, 네 시간이 될 때 천천히 보내 줘."라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이 약속을 지키기 더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 ADHD인의 뇌는 급박한 상황에서 마침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ADHD 성인에게는 급박하지만, 나에게는 스트레스가 없을 상황을 만들면 좋다. 꼭 지켜야 하는 시간보다 일찍 시간 약속을 잡거나, 작은 마감을 여러 개 만들어서 급박하게 몰아쳐서 일을 해도 제시간에 끝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면 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2. 만남 약속은 내가 만나고 싶은 시간보다 일찍, 내가 기다리기 좋은 곳에서 잡기.


만약 내 곁의 ADHD 성인이 항상 약속 시간에 20분, 30분씩 늦는다면 쓸 수 있는 방법이다. 1시에 만나서 점심을 먹으면 딱 좋겠고, 친구가 1시 반에 오면 너무 배고플 것 같다. 그렇다면 12시 반에 보자고 한 뒤, 나도 약간 늦는다는 마음으로 나간다. 그 사람이 웬일로 일찍 나와서 나를 기다리면, 평소에 내가 늘 기다려 줬으니 그냥 가볍게 사과 한 마디 하고 넘어가자. 여기서 "네가 항상 늦으니까 나도 일부러 늦게 나왔어!"라고 비밀을 밝히면 이 전략의 효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이 사람이 제시간에 나올 확률이 그래도 꽤 높아서 그렇게까지 하기 미안하다면, 서점이나 구경할 게 많은 상점, 날이 좋을 때는 공원 주변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도 제시간에 나가면 된다.


3. 내가 아직 화나지 않았을 때 가벼운 리마인더를 보내기.


내 주변의 ADHD 성인이 특유의 건망증으로 나를 화나게 할 수 있다. 아직 내가 화나지 않았을 때, 내가 기억을 잘하고 있다면(나도 기억을 잘 못한다면 굳이 책임감 느끼지 않아도 된다), 가벼운 리마인더를 보내 주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내일 저녁 7시에 합정역에서 보자! 올 때 연락 줘!"라는 문자를 보내면, ADHD 성인이 약속을 까먹고 있었어도 수습할 시간이 있다. 술자리 비용을 계좌 이체해 주기를 기다릴 때도, 10일이나 지나서 내 감정이 상하기 전에 "어제 술집 1/n 한 건 2만 원이야!"라고 먼저 가볍게 리마인드 해 주면 도움이 된다.


4. 오래 걸리는 큰 일을 부탁할 때는 작게 쪼개고, 계속 상황을 공유해 달라고 하기.


ADHD 동료가 항상 마감을 못 지켜서 내가 그 사람을 신뢰할 수가 없다면, 소통이 답이다. 그 사람이 얼마나 하고 있는지 진행과정을 공유해 달라고 하면 ADHD 성인 본인에게도 동기 부여가 되고, 내 마음도 안정될 수 있다. 동료가 10페이지 분량의 글을 5일 안에 써야 한다면, 하루에 2.5페이지씩 쓰고 매일 상황을 공유해 주기를 부탁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2.5페이지를 쓰지 못하는 날이 있어도 하루를 여유롭게 남겨 두었으니 괜찮다.


상황 공유를 부탁하는 건 약속시간에 잘 늦는 친구에게도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친구가 사는 곳에서 몇 시에 버스/지하철/자동차에 올라타야 도착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1시에 합정에서 만나려면 몇 분 차 타야 돼?"), 탄 뒤에 문자 하나 남겨 달라고 부탁하면 된다. 혹은 그 시간에 맞춰 "탔어?"라고 내가 연락을 취해도 된다. 나도 친구가 언제쯤 도착할지 미리 알 수 있고, 친구는 좀 더 가까이 있는 목표(타는 시간)를 향해 움직일 수 있다.

참고하기 >
ADHD 뇌는 어떤 일에 걸리는 시간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1시간 뒤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장소가 집에서 지하철로 30분 걸리는 거리라면, 지금부터 준비해서 나갈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런데 ADHD 뇌는 지하철이 30분 걸리니까 30분 전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가방을 챙기고, 옷매무새를 만지고, 신발을 신고, 나가는 길에 핸드폰과 지갑을 찾고, 지하철 역까지 걸어간 뒤, 개찰구를 넘어서 또 계단을 내려가고, 거기서 다시 지하철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고려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하지 못한다. 열심히 생각하고, 계획하고, 연습해서 해내는 일이다.


5. 움직이면서 대화하기.


만약 내가 소중히 여기는 ADHD 성인이 내 말에 집중을 하지 않고 자꾸 멍하게 다른 생각을 하는 일이 많다면, 일단 첫째로 상처입지 말자. 내 얘기가 지루하거나, 상대가 나를 가볍게 여겨서 그런다고 생각해봤자 내 마음만 아프다. ADHD 성인이 움직이면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대화에 더 잘 집중할 수 있다. (ADHD 어린이도 마찬가지다.) 산책이나 등산을 하면서 대화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손만 움직여도 충분하다.


함께 컬러링 북을 색칠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공작을 하면서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만약 내가 그런 걸 할 기분이 아니라면, 카페에서 얘기할 때 종이와 펜을 쥐여 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카페에서 테이블 밑에 손을 숨기고 염주를 굴리거나, 영수증으로 종이접기를 하면서 대화를 나눈다. 집에서는 크로셰를 뜨면서 대화하는 편이다. 지적 자극이 있는 대화를 하거나 열렬히 싸울 때는 아이컨택을 하기도 하지만, 웬만한 일상 대화는 손을 움직이면서 하는 것이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


6.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내가 벽에 등을 대고 .


다른 데 쉽게 정신이 팔리는 ADHD 성인과 함께 식당이나 카페에 갈 때는 ADHD 성인이 벽을 보는 방향으로 앉는 게 좋다. 회의나 교실 환경에도 응용할 수 있다. 교실이라면 다른 사람이 덜 보이는 앞자리가 좋다. 움직이며 주의를 빼앗을 만한 것이 안 보이는 자리에 배치하면 된다. 나랑 대화를 하는데, 내 뒤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나 텔레비전에 자꾸 시선을 주면 내 기분이 나빠질 수 있으니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ADHD는 스펙트럼 질환이고, ADHD 성인도 각자 개성이 있는 어른이다. 이런 팁을 타인이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자신의 증상을 관리할 줄 아는 ADHD 성인도 많이 있다. 그러므로 ADHD 성인에게 이 모든 팁을 적용할 할 필요는 없다. 반복적인 문제에 내가 불편함을 느낄 때, 한 번 시도해 볼만한 해결책 정도로 생각해 주면 좋겠다. 또, 우울증이나 불안증으로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과의 관계에도 응용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차이 때문에 아프지 않길, 더 많은 긍정과 사랑을 나누며 지내길.


ADHD는 정신과적 질환 중에서도 예후가 좋은 편입니다. 적당한 환경적 도움과 약물, 운동, 전략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습니다. ADHD가 있는 사람에게 어떤 일은 더 어렵기도 하지만, 어떤 일은 훨씬 쉽게 잘할 수 있기도 합니다. 낙인과 차별, 비난보다는 이해와 포용, 존중을 원합니다. ADHD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세요.

생각이 많아서 인생 살 시간이 모자랍니다. 그렇다면 글이라도 많이 쓰려고요. 누구나 생각에 시간을 쏟아붓지는 않기 때문에, 저의 결과물들이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깨달음이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저의 생각을 흥미롭게 보셨다면 구독하고 종종 읽어 주세요.

Photo by Sarah Kili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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