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백두대간, 그 후 10년

by 파란동화


2021년 8월 20일 오늘.

백두대간 종주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무척이나 조용하고 평범하게 살았다. 여행을 하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이라 등산은 꿈도 못 꾸고, 말괄량이 두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여느 아줌마들처럼 그렇게 살고 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아줌마다.





그토록 원했던
'평범하고 무난한 삶' 의 꿈을
이뤄 낸 것이다.





가끔은 홀로 전국을 떠돌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다시 자유롭게 어디든 떠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때는 무척이나 자유로웠지만 행복하지 않았고, 지금은 아무데도 갈 수 없지만 그럼에도 행복하다. 남편과 아이들이 나에게 '행복' 을 선물해 준 덕분이다.




대간 종주를 하며 만났던 부부들이 그렇게나 부러웠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등산을 하며 같은 길을 걷고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부부들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나도 결혼하면 남편과 함께 손을 잡고 등산을 하리라 마음 먹었지만, 생각과 다르게 결혼 이후로 등산은 점점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특히나 첫 아이를 임신하고 난 이후로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제대로 된 등산을 하지 못했다. 남편은 등산을 선호하지 않았고, 일하랴 어린 아이들 키우랴, 먹고 사는 일이 바빠 그렇게 내 인생은 등산과 멀어져 버렸다.




하지만 어느 주말의 이른 아침, 남편과 함께 손을 잡고 동네 뒷산을 오를때면 '나의 소원이 이루어 졌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 등산을 가지는 못해도 가끔씩 남편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며, 앞으로 우리가 함께 꾸려가고 싶은 미래를 얘기한다. 그 안에는 우리의 직업적 성과나 성공도 담겨있고, 함께 손을 잡고 걸어보고 싶은 곳, 다시 산을 다니고 비박을 하고 싶다는 소망도 담겨있다.




남편은 등산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어디든 함께 할 사람이다.




백두대간 종주를 하며 조금씩 치유되어 가던 불면증은 남편을 만난 이후로 싹 사라졌다. 신기하게도 남편과 연애를 시작한 첫 날부터 잠을 잘 잤다. 남편의 존재가 나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았다. 언제나 불안하고 흔들리던 예전의 연애와 달랐다. 남편은 내게 처음부터 편안한 사람이었다.




과거에 내가 불면증으로 힘들어 했다는 말을 하면 남편은 믿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불면증?

혹시 '기면증'을 잘 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당신처럼 머리만 닿으면 자는 사람이

무슨 불면증이래~~?"




남편은 항상 이런 말로 나를 놀린다. 확실히 아이를 낳고 난 이후로는 기면증에 가깝다. 자도 자도 피곤하고 아이를 재우려다 내가 먼저 잠이 든다. 그래서 삶의 질이 높아지고 행복지수도 높아졌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잠만 잘 자도 인생은 살만해 진다.




불면증 개선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신체의 변화였다. 열 네살 겨울 이후 매년 매달 찢어지는 고통을 안겨줬던 생리통이 백두대간을 완주한 이후로 씻은 듯이 사라졌다. 심지어 결혼 이후로는 등산을 간 적이 없는데도 여태 재발하지 않고 있다.




월경을 할 때마다 매번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고,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내 배를 내가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견딜 수 없었다. 하루에 세 번씩 타이레놀을 삼켜도 약효가 2시간을 이어지지 못했고, 나는 통증이 너무 심해 영원히 이 증상을 고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백두대간을 완주한 이후로 녀석은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한번에 확 바뀐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조금씩 더욱 옳은 방향으로 변해갔다. 세상의 호의를 받아본 적 없다고 생각했는데, 산에서 만난 분들은 모두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었고, 그래서 나도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백두대간 종주를 마무리 하던 날,

끝끝내 나타나지 않은 엄마를 원망하며

그토록 울음을 울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해보니





산에서 만난 모든 인연이
나에겐 엄마였다.





모든 분들이

엄마처럼 먹을 것을 주었고

엄마처럼 응원해 주었으며

엄마처럼 내 편이 되어 주었다.




그 분들은 몰랐겠지만, 때때로 아주 사소한 도움이 나의 생명을 구해주었고 앞으로 나아갈 힘과 용기를 주었다. 산에서 만난 많은 인연이 있었기에 백두대간 종주를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고 지금껏 살아올 수 있었다.




백두대간을 타기 전에는 몰랐다.





세상의 도움과 관심 없이는
그 누구도 단 하루도

인생을 살아낼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여태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세상의 도움과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라는 것을.




나의 세상에서는 엄마도 없었고 신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백두대간을 탔고

그 길 위에서




매 순간 엄마를 만났으며
매 순간 신의 도움을 받았다.





신의 도움을 받아 본 사람은 열심히 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신의 도움을 받으려면 신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세상의 모든 신들은 세상의 모든 엄마들처럼 할 일이 많고 너무나 바빠서, 우리가 있는 곳까지 직접 와주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가 직접 신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사는 것이 힘들수록 몸을 움직여

어디든 가야 하는 이유는




그 곳에 당신만의 신이




당신이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숙여 감사를 전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연재를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 The End -







파란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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