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번째 기부는 스물 다섯에 시작되었다. 전문대를 졸업 후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전전하다 아무렇게나 들어간 사무직에서는 한달에 80만원을 받았다. 그럼에도 안정된 직장이 생긴 것이 즐거웠던 나는 그 중 10%인 8만원을 정기적으로 기부했다.
경제적으로도 궁핍하고 정서적으로 메마른 성장시기를 거쳤던 나는 사회와 내 팔자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타인을 위한 배려는 거의 없었고 눈빛에는 공격성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큰(?) 돈을 정기적으로 기부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아이러니다.
힘들고 고통스럽게 성장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내 부모때문이었지 다른 요인은 전혀 없었다. 그 고난의 시기에도 내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부모님 등, 주변 사람들의 작은 도움과 관심들이 있었기 때문임을 어린 나이에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받은 것들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었다.
하지만 부모의 도움 없이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만 살아가는 자취생에게 월급의 10%는 너무도 큰 돈이었다. 처음 6개월은 즐거움과 뿌듯함으로 이어지던 기부가 점점 발목을 잡는 기분이었다. 기부도 하고 적금도 넣고 월세도 부담하려니 한 달 살이가 너무도 팍팍했다. 열심히 돈을 벌고도 나를 위해 쓸 돈이 없어서 주말이면 집에만 박혀 있었다.
매달 감사메시지와 함께 기부영수증이 날아오는 날이면 마음이 따뜻했지만 그것은 딱 하루 뿐, 나머지 29일은 돈이 없어서 매일 한숨을 쉬어야 했다.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게 시작했던 나의 기부는 1년 이상 이어지다가 결국 종료해야 했고, 힘들게 살아가는 아이의 생활비를 끊었다는 죄책감으로 나는 꽤 오랫동안 마음의 짐을 안아야 했다.
이후로 나는, 기부라는 것은 일단 내 자신이 제대로 자립하고 난 이후 해야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안정이 될 때를 기다렸다가 시작하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기부'라는 것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언제나 삶에 전전긍긍했던 나는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결코 안정권에 들어서지 못했다.
그러다 서른세 살 즈음 이던가, 한 달 1만원으로 다시 기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뭔가 기반을 닦아놓고 기부를 하겠다던 나는 오히려 직장과 일상을 모두 집어던지고 백수 신세로 등산만 다니던 시절에 다시 기부를 시작했다. 이러니 인생은 암만 생각해도 아이러니다. 도무지 알 수도 없고 종잡을 수도 없다.
일생에서 가장 돈이 없던 시기에 기부를 시작했지만 한 달에 고작 1만원이라 그 돈은 내게 아무런 부담을 주지 못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등산만 다니던 시절이라 돈은 없어도 마음은 무진장 넓어져서 그런 결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결혼을 하고 다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나는 기부금을 야금야금 늘려갔다. 1만원이던 것이 3만원으로, 그리고 다시 5만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나의 용돈으로 하는 것이지 생활비를 헐어 내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한달 용돈 15만원 중에 5만원을 기부하며 남편에게 자랑했다. 하지만 삶의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나보다 더 메마른 사고방식이 있던 남편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기특하다고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남편은 한숨을 쉬었다.
"어려운 사람에게 직접 돈을 주는게 아닌 이상, 기관을 통하면 그게 다 그 사람들 월급이나 수수료지 정작 제대로 쓰여지는 돈은 몇 푼이나 되겠어?"
하지만 나도 지지 않았다.
"몇 푼이라도 그런 푼돈들이 모여서 결국 큰 힘이 되는 거고 누군가를 제대로 살게 하는 도움이 되는 거야. 내가 직접 하지 못하는 봉사를 기관 사람들이 대신 해주는 건데, 그 사람들도 제대로 된 월급 받고 일하는게 당연하지. 안 그래?"
이렇게 이어 온 기부였는데, 나는 작년에 그 기부금을 모두 끊어야만 했다. 우리집의 경제상황이 곤두박질 친 것이다. 남편의 투자가 잘 못 되어 갑자기 1억원이 넘는 빚이 생겨버렸고, 갑자기 생활비에 맞먹는 이자가 생겨버렸고, 갑자기 남편이 실직을 해버렸다. 이 세가지 일이 한꺼번에 터지니 손 쓸 방도가 없었다. 당장 아이 학원비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을 돕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기부금을 끊던 날, 나는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가게에서 장사를 하다 말고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어버렸다. 한 달에 5만원도 내 마음대로 유용할 수 없다는 것이 속상했고, 유흥비나 향락비도 아닌 기부금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 비참했다. 나는 실컷 울고나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나는 정말 성공할 거야. 돈 많이 벌어서 내 용돈으로 50만원 넘는 기부를 할 거고, 우리가족 다 합쳐서 몇 백만원씩 기부하는 문화를 만들 거야. 나중에 내가 기부를 얼마를 하든 뭐라고 하지 마. 다 내가 벌어서 할 거니까!"
나에게 있어 기부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던 남편은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기부를 끊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안그래도 기가 죽어 지내는 남편이었는데 그의 힘없는 목소리를 들으니 더욱 속이 상했다. 나는 남편과의 전화를 끊고 다시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어제, '산불 피해 긴급 모금'에 동참해 달라는 단톡을 받았다. 3월 4일 경북 울진에서 시작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강원도 삼척까지 번진 것에 도움을 주는 모금이었다. 카카오에서 주최하는 모금으로 공감 하트만 날려도 100원이 모금되고, 응원 댓글을 달면 1000원이 자동으로 모금되는 것이었다. 나는 단숨에 공감과 댓글을 달고 추가로 1만원을 더 기부했다.
그리고 뉴스를 볼 때마다
"아이고 우짜노. 아이고 우짜노..." 하시던 시엄마에게도 공유해서 공감과 댓글을 달게 하고, 친정식구들과 함께 하는 단톡방에도 공유했다.
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94706?kakao_link=noti
문득, 정기적인 기부는 끊었지만 이렇듯 비정기적인 기부마저 끊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에 앉아 있으면 3개월에 한번씩 결식아동을 도와달라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예전에는 2천원 정도를 기부했었는데 정기기부를 끊은 이후로는 1만원씩 낸다. 내가 운영하는 가게가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보니 차비가 없는 학생들이 돈을 꾸어달라고 쭈뼛거리며 찾아오기도 하고, 가끔은 노숙자들이 컵라면 사먹을 돈을 달라고 찾아오기도 한다. 예전에는 이런 사람들이 찾아올 때마다 마지못해 최소한의 돈을 주었다. 이제는 그들이 원한 것 두배의 돈을 준다. 그래봐야 5천원도 안되는 돈이다.
내가 스스로 기부하지 못하니 그런 기회들이 나에게 찾아와주는 것이 오히려 감사하다. 경제적으로 아무리 가난하고 궁핍해져도 마음까지 말라버린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삶에 고난은 많이 찾아오겠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만은 메마르지 않기를. 그럴 수 있기를. 죽는 순간 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