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렬히 환대받는다는 느낌

by 파란동화



지금은 물론, 아이들의 어린이집 등하원을 함께 살고 계신 시엄마가 도맡아 하고 계시지만, 우리가 합가하기 전에는 모두 내가 직접 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등원하기도 하고, 아이와 손을 잡고 함께 걸어 등원하기도 하고, 좀 커서는 어린이집 차량을 이용해서 등원했다.




등원의 모습은 그때마다 달랐지만 하원의 풍경은 항상 같았다. 내가 일을 마치고 어린이집으로 가서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이다. 칼퇴근을 하고 뛰다시피 어린이집으로 달려가도, 어린이집에는 항상 내 아이만 남아 있었다. 그 모습이 애잔하기도 하고 종일 못 본 그리움에 반갑기도 해서, 나는 어린이집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아이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며 두 팔을 쫙 펼쳐 들었다.




그러면 아이는 꺄꺄 소리를 지르며 나의 품으로 달려왔다. 나는 아이를 숨 막히도록 끌어안고 이리저리 흔들며 하루종일 보고 싶었다고 정말 정말 보고싶었다고 혀짧은 소리를 해댔다. 옆에서 선생님들이 보건 말건 신경쓰지 않았다. 종일 떨어져 지내다 다시 만난 순간은 온전히 나와 내 아이들만의 시간이었으므로.




그것이 학습되어서인지 우리 아이들도 재회의 순간에 진심이었다. 꺄꺄 거리며 달려나와 열렬히 환호한다.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섰을 때 그런 아이들의 환대를 받으면, 그날 낮에 무슨 일이 있었던지 간에 모든 피로가 싹 풀린다.




지금은 아이들이 차량으로 등하원을 하는데, 하원해서 돌아올 때 미리 나와계신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면 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꺄꺄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 차가 도착하자마자 튀어나와 할머니를 꽉 끌어안아 준다고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아유~ 좋으시겠네요~" 한다고 한다.




시엄마는 말씀하셨다.

"할머니를 봐도 보는둥 마는둥 반응이 없으면 나도 정이 덜 갈텐데, 우리 애들은 할머니를 볼 때마다 그렇게 반가워하니 너무 너무 예뻐. 예뻐죽겠어."




나는 언제나 내 가족들에게 환대받는다는 느낌을 주고싶었다. 밖에서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집에만 들어오면 온 몸이 녹아내리는 편안함을 주고 싶었다. 힘든 일을 겪으면 밖에서 술로 푸는 것이 아니라 빨리 집에 들어가서 가족들 품에 안기고 싶다고 생각되는 그런 집을 만들고 싶었다. 밖에서 힘들게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우리의 장군들께 열렬한 환호를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자 마음에서 우러나온 기쁨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것이 좀 뜸해진 것 같다. 시엄마와 같이 산 기간이 일 년이 넘어가니 열렬한 환대가 아닌 조용한 인사를 하게 되고, 시엄마와 함께 살다보니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와도 격렬한 포옹이 줄어들어 전멸하다시피 했다. 아이들은 그새 자라 엄마의 얼굴보다 엄마 손에 들린 장바구니만 쳐다보고, 장바구니 없이 퇴근한 날은 대놓고 서운함을 표현한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다시 활기를 불어넣어야 겠다. 우리집의 인사 문화에 격렬함과 오도방정을 추가해야 겠다. 아침에 헤어질 때도 으스러지게 안아주고 저녁에 다시 만나면 깨방정을 떨어야 겠다. 집의 분위기를 조금 더 높여봐야 겠다. 다른 건 몰라도 내 가족들에게 '당신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 있어요'라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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