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아이 둘을 양쪽에 하나씩 끼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5살 둘째가 나의 목을 꽉 끌어안으며 말했다.
"엄마~ 하늘나라로 가버리면 안돼!"
그러면서 엄마가 당장이라도 사라져 버릴듯 더 세게 끌어안았다. 잉? 하늘나라? 갑자기 왠 하늘나라?
"엄마~ 선녀 되어서 하늘나라로 가버리면 안돼!"
아하~!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아이들이 TV에서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보고 이러는 것이다. 둘째가 엄마의 목을 끌어안고 불안한 듯 얘기하자 첫째도 갑자기 걱정이 되었는지 엄마를 끌어안는다.
"엄마. 우리 놔두고 가버리면 안돼!"
나는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 엄마는 선녀가 아니잖아."
그랬더니 사회성 좋은 첫째딸이 하는 말.
"지금은 선녀가 아니지만 엄마는 너무 예뻐서 곧 선녀가 될 거 같아....."
어머! 이런 말을 하는 딸이라니! 도대체 이런 스킬은 어디서 배우는 것일까? 딸아이는 진심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었지만 나는 선녀가 되어 사뿐사뿐 날아오를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나의 기분은 뒷전으로 하고 일단 아이들을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솔아. 선녀는 엄청 예쁘고 착하잖아. 그런데 엄마는 너희들 잘못할 때마다 소리 지르잖아. 그래서 엄마는 선녀가 안돼."
아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한 말일 뿐이었는데 첫째가 단박에 이해를 한다.
"아, 맞다. 그렇지? 그럼 엄마는 선녀 안 되겠네."
그러면서 진심으로 안심하는 딸. 그러면서 대번에 돌아눕는 딸. 앜ㅋㅋㅋㅋ 뭐지? 팩폭 당한 이 느낌은? ㅋㅋㅋㅋ
첫째는 가끔씩
"엄마는 이렇게 예쁜데 나는 하나도 안 예쁘고... 히잉... 속상해."
라고 한다. 거울 속의 제 얼굴과 엄마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한숨을 푹푹 쉰다. 그러면 아이를 달래주기 위해
"엄마는 다 화장빨이잖아. 화장 지우면 엄마보다 솔이가 훨씬 예쁘잖아. 안 그래?"
라고 말하는데, 그때마다 딸아이는
"아! 그렇지?"
하며 단박에 우울에서 빠져나온다. ㅋㅋㅋㅋㅋ 뭐하자는 건지 ㅋㅋㅋㅋ 엄마의 기분을 띄워 날아오르게 하는데도 선수인데, 그 기분을 금새 뒤집어땅으로 떨어지게 하는데도 선수다.
첫째와 다르게 아직도 엄마의 목을 끌어안고 행여나 선녀되어 하늘로 가 버릴까 불안해하는 둘째를 꼭 끌어안아주며 말했다.
"걱정 마. 선녀와나무꾼에서도 선녀 엄마가 하늘나라갈 때 아이들 데리고 갔잖아. 엄마도 그럴거야. 엄마 양쪽 팔에 솔이 람이 하나씩 안고 올라갈거야. 이 예쁜 아이들을 어떻게 놔두고 가겠어. 엄마는 어딜 가든 우리 딸들 데리고 갈거야."
그제야 둘째도 안심하고 꺄르르 웃는다. 그러게. 이 예쁜 아이들을 두고 어딜 갈 수 있을까. 가끔씩 내 자신이 한심하다 느껴질 때가 있다. 어렸을 때 좀 열심히 살걸, 그때 공부 좀 열심히 할걸, 젊은시절을 낭비하다 마흔이 넘고보니 후회되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때마다 나는 20살로 돌아가는 상상을 했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하루를 이러이러하게 보내고 이런저런 공부를 하고 어떻게어떻게 실력을 쌓아야지 하는 생각. 그러다 문득 화들짝 놀라 현실로 돌아온다. 20살로 돌아간다면 공부는 열심히 하겠지만 다시 이 아이들을 만난다는 보장이 없잖아! 다시 남편을 만난다는 보장도 없고, 남편을 다시 만난다고 해도 그 수많은 정자와 수정체들 중에 정확히 이 아이들과 다시 만난다는 보장이 없잖아!
그러면 나는 깨끗하게 단념한다. 메피스토가 찾아와 나에게 20살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더라도 나는 쿨하게 거절하리라! 내가 아무리 대단하고 멋진 삶을 살게 된다 하더라도 이 아이들보다 더 소중한 것은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떤 삶을 살게 되더라도 이 아이들이 없다면 나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들을 꼬옥 끌어 안는다. 나는 옥황상제의 딸도 아니고 선녀도 아니지만 그들 누구도 부럽지 않은, 세상 예쁜 아이들의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