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내리막 급경사가 어느정도 완만해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발치만 보던 것을 중단하고 고개를 들어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산 정상부에는 앙상하고 마른 가지들만 남아있는데 해발이 낮아지자 다시 단풍이 나타났다. 가을이 깊어지기 시작하면 산의 정상보다 등산로 입구가 훨씬 다양한 경치를 보여준다.
그리고, 어느새 눈 앞에 나타난 평지. 가을 낙엽이 떨어져있는 숲길은 빗방울을 촉촉하게 머금고 더욱 선명한 빛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숲의 끝에는
꺄아아아아~!!!!
드디어 진고개다~!!!!
진고개 휴게소다~!!!!
엄마, 나 드디어 밥 먹을 수 있게 됐어!!!!
진고개가 위치한 국도를 건너 휴게소 왼쪽으로 올라가면 노인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었다. 원래는 휴게소에서 배를 채우고 노인봉을 올라 소금강 계곡으로 하산하려 했지만, 급하게 경로를 수정하기로 했다.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나는 너무 힘들어서 밥 한끼 먹는 것으로 체력이 쉬이 회복될거 같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서 대간종주를 중단하고 서울로 돌아가자. 그리고 다음주에 다시 대간을 시작할 때 진고개가 아닌 소금강 계곡에서 올라오는 것으로 대간을 이어가기로 하자.
그러니 지금은 일단 밥을 먹자!
산길을 내려오는 내내 나는 마음속으로 먹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휴게소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뚝배기불고기를 먹어야지!
그리고 초코파이랑 쏘세지도 먹을 거야!
아아~~ 초코파이 넘넘 먹고싶어~!!
그리고 오늘 밤에 서울에 도착하면
반드시 치킨에 맥주를 먹어야지!
아아~~ 치킨치킨치킨~~ 맥주맥주맥주~~!!
아아~~ 맛있겠다!!
먹고싶은건 배 터지도록 다 먹어버려야지!!!
그런데 헉!!
진고개휴게소의 한식코너는 폐점상태였다. ㅠㅠ 오픈시간이 늦어지는 것인지 평일에는 원래 영업을 하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고속도로의 휴게소가 아닌 국도의 휴게소라 식당코너가 매우 빈약했다. 뚝배기불고기 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뜨끈한 찌개백반을 먹고 싶었는데 한식종류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아... 밥 종류가 없으면 나는 뭘 먹어야 하지?
우울한 기분으로 짜장면을 주문했다. 평소에 엄청 좋아하는 짜장면이었지만 그날은 아니었다. 평소와 다르게 맛도 모르겠고 배를 채워야 하니 그냥 먹었다.
...라는 사람치고는 엄청난 속도로 흡입했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면을 빨아올려 씹지도 않고 그대로 삼켰다. 태어나서 이렇게 급하게 음식을 먹은 것은 처음이었다. 짜장이 입가에 묻는지도 모르고 면을 입안에 밀어넣기만 한 적도 처음이었다. 양념 하나 남기지 않고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 깨끗이 비웠다.
하아... 살 것 같다!
이제 좀 살겠다!
배가 채워지자 조금씩 기력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커다란 박배낭을 식당에 놓아둔 채 스포츠타올과 갈아입을 옷과 양말을 챙겨 화장실로 갔다. 4박5일의 일정으로 등산을 나서면 갈아입을 옷을 2벌 챙기는데, 한벌은 3일째에 갈아입고 나머지 한벌은 모든 산행이 끝난 후 대중교통을 타기 직전에 갈아입었다.
하루종일 등산을 하고나면 몸에서 땀냄새가 진동한다. 그런 옷을 입고 사람 많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난 민폐를 끼치게 될 것이다. 내 자신에게도 계속 느껴지는 땀냄새가 타인에게는 얼마나 더 심각하게 느껴질지 상상만으로도 싫었다.
그래서 항상 등산의 마지막에는 공중화장실에서 스포츠타올을 적셔 온 몸을 닦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세수도 하고 양치질도 하고 그리고 사정이 허락된다면 화장실에서 머리도 감았다.
나는 분명 긴팔에 긴바지만 입고 다녔는데 수건에 흙먼지가 잔뜩 묻어나와서 깜짝 놀랐다. 그저 땀을 닦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 눈에 보이는 흙먼지가 이렇게까지 많이 묻어나오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내가 산에서 벗고 다닌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수건목욕을 하고 새옷으로 갈아입으니 기분까지 개운했다. 그런데 이젠, 이곳 진고개휴게소에서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는 것이 난관이었다. 산 중턱 국도의 휴게소이다 보니 시내버스가 없는 것이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가장 가까운 터미널은 평창의 '진부터미널' 인데, 택시를 타면 3만원 정도 나올거라고 했다.
나는 히치하이킹을 하기 위해 식당건물을 나와 휴게소의 드넓은 주차장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비오는 평일이라 그런지 차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오는 차량들도 모두 인원수를 꽉꽉 채워서 왔다.
보통 히치하이킹을 할 때는 SUV차량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일반 승용차보다는 트럭이나 SUV차량의 운전자들이 차를 세워 줄 확률이 훨씬 높았다. 하지만 이곳 진고개를 찾는 SUV 차들은 모두 탑승자가 만원이었다. 즉, 내가 얻어 탈 자리는 없다는 얘기다.
나는 휴게소의 차양막 아래 서서 나를 태워줄 적당한 차량이 나타날 때 까지 하염없이 서 있었다.
그 때! 전방 80m 앞에서 어떤 부부가 승용차에 올라타더니 바로 시동을 켰다. 즉, 뒷좌석엔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서 운전석의 유리창을 톡톡 두드렸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차가 출발해버릴까봐 사력을 다해 뛰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요
여기는 시내버스가 없어서요
어디든 좋으니까 시내버스 다니는 곳 까지만
태워주실 수 있을까요?
아... 부탁드립니다..."
부부는 굉장히 당황한 모습이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당황스러울 일이긴 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 부부의 인생에 나같은 사람을 만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부부는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 없었다. 비는 내리고 휴게소엔 차량이 거의 없고 나는 터미널까지 갈 택시비가 없었다. 최대한 애처로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렸다.
"어디든 상관없어요.
시내버스 다니는 곳 까지만요...
부탁드립니다."
나는 계속 고개를 주억거리며 '부탁드립니다'를 연발했다. 그제서야 아줌마는 주섬주섬 뒷좌석을 정리하며
"아가씨 혼자에요? 그럼 타세요..."
라고 말씀하셨다.
"아! 감사합니다!
정말이지 감사합니다!"
머리가 땅에 닿도록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뒷좌석에 올라탔다. 차에 올라타니 안에서는 올드팝이 잔잔하게 흘러나왔고 방금 시동을 켰는데도 히터바람이 따뜻했다. 몸과 마음이 녹아내리듯 포근함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나도 나이가 들면
이 부부처럼 이런 인생을 살고 싶다
부부가 함께 평일에도 여행을 다니고
함께 하는 공간은 언제나 따뜻하며
잔잔한 음악을 함께 듣는
그런 인생
방금 처음 만난 사람의 인생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나도 이 부부처럼 이런 인생을 살고싶다. 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아줌마 아저씨가 이런 저런 질문을 하셨다. 내가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있고, 지난 며칠간 계속 굶다가 이제 막 짜장면 한그릇을 먹었다고 말씀드리자, 아줌마는 보온병을 꺼내 믹스커피를 타주셨다. 그리고 과자도 주시며 편히 먹으라고 하셨다.
올드팝이 울려퍼지는 차 안도 따뜻한데 믹스커피를 전해주시는 아줌마의 손은 더욱 따뜻했다. 진눈깨비가 날리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추위에 떨며 웅크리고 있다가 따뜻한 수프를 건네받는 기분이었다. 아... 이 아줌마처럼 살고싶다...
부부는 동해 바닷가에 놀러왔다가 이왕 온 김에 이곳 평창에서 시골의 고랭지배추를 구입하기 위해, 서울로 돌아가기 전 잠시 들른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길가에 배추를 파는 노점이 보이면 차를 세우고 배추를 보러 내렸다.
아줌마 아저씨가 배추를 고르는 동안 나는 창 밖의 풍경을 감상했다. 평창에는 산 아래 언덕 위 마치 동화속에나 있을법한 예쁜 집들이 많았다.
나도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
좋은 남자를 만나
동화처럼 예쁜 집에서
남편과 함께 손잡고 산책하는
편한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닿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액자 속 풍경화에나 있을 법한 일이며 나같은 낙오자는 절대 꿈 꿀 수 없는 삶이었다.
어렸을 때 우리집 어른들은 항상 싸우고 있었다. 사소한 실수에도 서로를 비난하고 심부름을 제대로 못하면 평생 빌어먹을 년이라고 어린 나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부부싸움과 자녀교육을 말로만 하는 법이 없어서 안그래도 가난한 집구석에 세간살이가 남아나지 않았다. 그 잔해와 파편들은 언제나 어린 내가 치워야 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내가
그런 것들만 보고 자란 내가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자신이 없었다.
생명이 끊어지지 않도록 붙들고 있는 것 만으로도 벅찬 인생이었다. 어린시절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출퇴근길 지하철 난간을 붙잡고 쉬어지지 않는 숨을 억지로 붙잡아야 하는 날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빈번해졌다. 여기서 더 나빠지지만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옥같은 그 집을 벗어나고도 나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버티고 버틸 뿐, 누구나 꿈꾸는 행복하고 편안한 삶은 나와 거리가 멀었다. 감히 내가 가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그렇게나 안간힘을 썼는데도 나는 실패했고, 도망쳤고, 그래서 지금 백두대간 위에 서 있게 되었다.
파란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