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밀재' 부터 대야산과 촛대봉을 넘어 지방도와 만나는 버리미기재까지는 속리산 국립공원이 지정한 통제구간이었다. 나는 지난주에 건너 온 문장대와 밤티재까지만 속리산권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밤티재 이후 늘재와 어제 지나온 구간도 모두 속리산에 속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제 지나온 길에서는 국립공원에 대한 그 어떤 표식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밀재에서 대야산으로 향하는 길에 국립공원의 '출입금지' 안내판이 서 있었다. 지도에도 통제구간이라는 표시가 없어서 몰랐다. 서울에서 출발 전 물을 수급할 수 있는 곳만 찾아보았지 이런것까지 세세하게 알아보지는 않았던 것이다.
밀재는 산악회 회원들 백 여명이 앉아서 점심을 먹어도 될 정도로 너른 안부였다. 그 너른 안부를 모두 막아 세우기는 힘들었던 것인지 출입금지 안내판 주위로는 가느다란 로프로 연결한 울타리가 전부였다. 심지어 울타리 높이도 무릎 아래 종아리 정도밖에 안된다. 가볍게 울타리 로프를 넘어 선명하게 이어진 백두대간 등산로를 이어간다.
통제구간에 들어서자 본격적인 암릉이 시작되었다. 둥글고 멋진 암릉과 능선 저편으로 보이는 기암들이 지나는 산객을 현혹한다. 너무나 멋진 바위들의 향연이다. 속리산의 주봉에서 입석대 신선대 구간을 지날 때도 바위들에 반했는데, 대야산의 바위는 그 곳과는 또다른 매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신기한 바위문을 지난다. 양 옆의 거대한 바위 사이로 등산로가 연결되는 것이 신기하다. 완만한 바위능선이 산 전체를 감싼 구간도 있다. 이런 바위라니. 아름답고도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너무 힘들었다. 밀재에 도착하던 순간부터 지치고 있었던 나는 대야산 정상에 도착하는 것에 오늘 하루 써야 할 에너지를 몽땅 쏟아부어야 했다. 밀재에서 대야산 정상까지 1.1km 이동하는데 정확히 2시간이 걸렸다. 지도에서는 50분 걸린다는 거리인데 왜 나는 2시간 씩이나 걸리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11시 50분.
대야산 정상.
하아... 하아... 죽을 거 같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이제부터는 로프를 잡고 내려서야 하는 90도 직벽 코스다. 그래도 오르막이 아닌 내리막이니 괜찮을 거다. 나는 바위를 애정하니 괜찮을 거다. 바위에 착착 감기는 등산화의 느낌이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할 거다...
자기 암시를 해 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로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니 나의 몸무게에 배낭의 무게까지 더해져 더욱 강한 중력이 나를 잡아당긴다. 바위에 붙어있는 종아리와 허벅지가 바들바들 떨리고 그것보다 더욱 떨리는 것은 로프를 잡고 있는 어깨와 팔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 모양이었다.
90도 직벽의 로프는 쉽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각도로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지도에 표시된 바로는 이 구간 바위의 높이가 100m가 넘는다고 한다. 그렇게 3번의 로프를 잡고 내려오는데 진이 다 빠져버렸다. 머리가 어질어질 했다.
이젠 로프가 끝났나?
아니, 끝나지 않았다!
로프는 없어도 바위를 짚고 조심히 내려서야 하는 칼바위 구간은 여전히 남아있다. 바위를 붙잡고 뒷걸음질 치며 내려가기 일쑤다. 내리막의 경사가 심해서 바로 아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다 발을 디뎌야 할지도 모르겠다. 길고 짧은 로프들이 몇번씩 나타난다.
그렇게 특전사 산악훈련장 같은 대야산을 모두 지나 촛대제에 도착했다. 드디어 평평한 흙길에 발이 닿은 것이다. 다리가 지랄같이 떨린다. 온 몸이 지랄같이 떨린다. 평지에 닿았는데도 몸이 진정되지 않는다. 대야산 정상에서 촛대재까지의 1km가 지금껏 지나온 백두대간 500km를 전부 합친 것 보다 더욱 큰 펀치를 날렸다.
지랄같이 떨리는 몸뚱이를 이끌고 촛대봉에 올랐다. 몸뚱이는 떨렸지만 아직 눈동자까지 떨리지는 않았다. 눈물을 쏟아내지는 않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촛대재에서 촛대봉은 의외로 무척이나 가까웠다. 이젠 다 끝났을거야, 이젠 걷기 좋고 아름다운 너럭바위들만 줄지어 나타날거야, 촛대봉에서 30분을 쉬며 내 자신을 다독여 주었다.
촛대봉에서 내려서는 길은 암릉없는 흙길이었지만 경사가 너무 가팔랐다. 이미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체력이 빠져버린 나는 이마저도 힘들었다. 머리가 계속 어지럽고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구름이 걷히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기 시작했다. 오전에 할 일을 제대로 못한 태양은 오후에 하루치 땡볕을 모두 쏘아주기로 작정한 듯 이글거렸다.
불란치재와 헬기장을 지나자 다시 암릉이 시작되었다. 다시 지옥의 로프구간이 시작되었다. 심지어 이번엔 오르막이다. 낑낑대며 바위를 오른다. 오르고 조금 쉬면 또 바위가 나타나고 오르고 조금 쉬면 또 바위가 나타난다. 오늘 하루 도대체 몇 번의 로프를 잡았다 놓았는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세어볼 걸 그랬다. 하지만 세어보았다 하더라도 기억은 못 했을 것이다. 나는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대야산과 촛대봉, 이어지는 곰넘이봉은 모두 속리산 국립공원에 속한 봉우리다. 누군가 속리산권 백두대간의 로프가 몇 개인지 일일이 세어보았다고 한다. 길고 짧은 것 까지 모두 합쳐, 누군가는 180개가 넘는다고 하고, 누군가는 200개 정도라고 한다. 어쨌든 180개가 넘는 것은 확실한 모양이다.
나는 결국
울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울면서 로프에 매달려 암릉을 넘다가 결국 모든 감정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암릉을 넘어선 내리막 안부에서 배낭을 패대기치고 바닥에 누워 엉엉 울어버렸다. 오늘 하루 내내 지나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나를 도와주고 응원해 줄 사람도, 서로 의지하고 발을 헛딛는 것은 아닌지 지켜봐 줄 사람도, 아무도 없다.
한참 울면 울음이 그칠만도 한데 이번엔 아니었다. 울음이 그칠만하면 다시 터져나왔고 울음이 잦아들만 하면 다시 더 크게 터져나왔다. 그렇게 세 번을 목 놓아 울었다. 온 산이 떠나가라 울어제끼는데도 그 소리를 듣고 찾아와주는 사람이 없다. 새 한마리 지나가지 않는다.
내가 어릴 때도 그랬다. 아버지에게 맞아 비명을 질러대고 새엄마에게 맞아 통곡을 쏟아내어도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도 모두 우리집 어른들을 피하려 했다. 아버지는 평소에도 무서운 사람이었지만 술을 마시면 항상 돌변했고 꼭지가 제대로 돌면 집에 석유를 뿌리고 부엌칼을 휘두르는 사람이었다. 새엄마도 만만치 않아서 동네 아줌마들과 싸우면 머리채를 쥐어뜯고 쌍욕을 퍼부어서 절대 지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크게 울음을 울어도 우리 삼남매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인생은 홀로 넘어야 하는 산과 같은 것이다. 좋은 일을 함께 나눌 사람은 어디든 널렸지만, 극한의 고통을 함께 나눌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내 나이 아홉살 때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기대를 품었다. 고통으로 몸부림 칠 때마다 누군가 나를 도와주길 간절히 바랐다. 햇님달님 동화처럼 나에게도 동아줄이 내려와 주길 바랐다.
간신히 울음을 멈추고 길을 이어가는데 완만한 능선 끝에 다시 바위가 나타나더니 다시 로프가 드러난다. 간신히 멈췄던 울음이 더욱 큰 소리로 터져 나왔다.
내가 바란 동아줄은 이런 게 아니야!
이런 게 아니었다고!
이 줄을 잡고 올라가면 엄마를 만날 수 있어?
엄마한테 데려다 줄 거야?
아니잖아!!!
울면서 욕하면서 로프를 잡고 직벽을 오르려니 더욱 진이 빠졌다. 머리는 어지러움을 넘어 깨질 듯 아프다. 설상가상 구토증까지 밀려온다. 정신이 혼미하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다.
마지막 봉우리인 곰넘이봉을 넘어 지방도와 만나는 '버리미기재' 에 도착했다. 여기는 지킴터 초소가 있어서 국립공원 단속반이 있어야 할 곳이었다. 하지만 평일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오늘 하루종일 통제구간을 지난 것은 나 하나 뿐인데 지켜봐야 무엇하랴. 단속반이 없는 버리미기재에서 쉬면서 식수를 보충했다.
차도를 건너 다시 대간을 이어간다. 그토록 흠씬 두들겨 맞고도 도망치지 않았던 어린 날 처럼, 그토록 로프에 매달려 혼줄이 나고도 마을로 탈출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너무 바보같았다. 그 숨막히는 집에 살면서도 가출 한 번 하지 않았다. 도망치지도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지도 못했다. 그들이 때리면 때리는 대로 그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살았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고통을 겪고도 나는 다시 대간 위에 서 있었다. 다른 방법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 이런 내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다.
버리미기재에서 50분쯤 올라왔을 때, 기가 막힌 바위가 있었다. 전망도 끝내주고 바위의 곡선도 아름답다. 여기서 잘까? 하다가 조금 더 오르기로 했다. 아직 5시 30분. 조금만 더 가자. 그래야 푹 잘 수 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푹 자야 한다!
결국 장성봉 정상까지 올랐다. 6시 45분 인데 아직도 날이 훤했다. 일몰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느릿느릿 텐트를 펴고 느릿느릿 물티슈로 몸을 닦았다.
그토록 진을 뺐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나는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었다. 길을 계속 이어간다는 것은 너무나 미련스러운 일이다. 꾸역꾸역 백두대간을 이어가는 것이 꾸역꾸역 그 집에서 버텨 낸 시간처럼 점점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 오늘의 백두대간 >
고산자 지도/ 남쪽에서 북쪽방향으로
총 24구간 중
9구간
진행 구간 : 밀재(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의 경계)-대야산-촛대봉-불란치재-곰넘이봉-버리미기재-장성봉 비박(경북 문경시)
진행 날짜 : 2012년 6월 5일 / 화요일
월화수목금 주5일 연재됩니다~^^
파란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