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나는 이제 그만 하고 싶었다.
이제 그만 백두대간 종주를
포기하고 싶었다.
어린시절 그 집에서 버텨 낸 시간만큼 그 집을 벗어나고도 여전히 괴로워야 했던 나였다. 백두대간 종주가 나에게 그때와 같은 상흔을 남기는 것은 아닐까? 버텨 낸 시간만큼 더욱 더 힘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좋은 사람들만 만나고 좋은 경험만 쌓았을 때, 여기서 그만두는 것이 현명한 것 아닐까?
오빠와 언니가 모두 서울로 떠나고 나 홀로 새엄마와 아버지를 견뎌내야 했던 고등학교 3년간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시도한 일까지 모두 실패했고, 자신의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을수록 더욱 술을 마시고 패악을 부렸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한도치에 다다른 새엄마의 폭력은 날이 갈수록 극에 달했고, 세 명의 아이들에게 분산되었던 분풀이가 오로지 나에게 집중되었다. 나 역시 그간 쌓인 불만과 사춘기의 반항으로 아버지와 새엄마에게 대들기 일쑤였고, 그러니 날이 갈수록 더욱 죽도록 맞아야 했다.
이제는 머리가 커서 '잘못했다'고 빌지 않는 나를 '잡기' 위해, 새엄마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쇠파이프를 보일러실에 숨겨두고 있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자 새엄마는 집안의 문이란 문은 모두 걸어잠그고 보일러실에서 쇠파이프를 꺼내왔다. 그것에 새 대쯤 맞고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릎을 꿇고 빌었다.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다 내가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리고나서 나는 풀려났다. 그리고나서 나는 철저히 깨져버렸다. 더이상은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 공포의 순간에
나와 함께 있어줄 사람은 없었다.
나를 안아주고 지켜주겠다고 속삭여주는
언니마저 없었다.
그 끔찍한 시간들을
함께 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나를 점점 더 벼랑으로 내몰았다.
어쩌면 그 3년의 차이가 언니오빠와 나의 인생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했는지도 모른다. 오빠와 언니에게는 없는 불면증이 나에게만 있었고, 오빠 언니와 다르게 나는 유독 어린시절의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형제들과 함께 지내던 시절에는 그러지 않았다. 우리집이 정말 싫었지만 죽고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6살 터울인 오빠가 먼저 집을 떠나고 3살 터울인 언니마저 집을 떠나고 난 이후에는, 오로지 죽고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나는 오빠나 언니처럼 집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살아서 이 집을 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이 그 날 일까?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일까? 빨리 마지막 날이 왔으면 좋겠다, 더이상 눈을 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어제와 다름없이 또 새롭게 주어진 하루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이미 죽은 사람처럼 나의 소중한 젊은날을 하루하루 죽여가고 있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었다.
어린시절의 고생을 억지로 억지로 참아낸 것 때문에
나는 그 집을 벗어나고도 회생 불가한 상태가 되었다.
그 어디로도 도망치지 않고 밤이면 항상 집으로 돌아갔던 것 때문에 나의 인생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도망칠 기회는 언제나 있었는데 나는 언제나 당연한 듯 집으로 돌아갔다. 갈 데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도망을 치면 그 곳이 어디든 아버지가 쫓아와 흉기를 휘두르고 불을 지를 것만 같았다.
어쩌면 새엄마는 나를 죽이려고 때린 게 아니라 그저 집에서 나가주길 바라고 때렸는지도 모른다. 이정도면 나가겠지 이정도면 돌아오지 않겠지 했는데 내가 계속 돌아오니 화가 나서 더욱 때렸는지도 모른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도 나는 백두대간을 탈출하지 못했다. 탈출할 기회는 곳곳에 있었는데 탈출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갔다가도 배낭을 재정비해서 홀린 듯 다시 대간으로 돌아왔다. 어린시절처럼 죽을만큼 얻어 터지고도 나의 걸음은 언제나 대간을 향해 있었다.
이렇게 계속 대간을 이어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 대간 종주를 완주한 이후에 오히려 만신창이가 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대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한숨이 나왔다.
답을 모르겠다.
이 화창한 여름날에,
나는 안개에 갇힌 듯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9시 반에 잠들어서 5시 반에 일어났다. 전날 잠을 못 자고, 그토록 많은 암릉과 로프를 넘나들고, 체력과 함께 눈물까지 쏙 빼었는데도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에 잠들고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에 눈을 떴다.
생각보다 수면 시간은 짧았지만 수면의 질은 높았다. 머리가 닿자마자 잠들어 아침에 눈을 뜰 때까지 세상 모르고 곯아 떨어진 것이다. 새벽에 고라니 백 마리가 울었더라도 모르고 잤을 것이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니 전날의 기분으로부터 많이 떨어져 있었다. 역시 지치고 힘들 때는 잠이 최고다. 잠만 제대로 자도 인생은 살만해 진다.
어제는 하루종일 9시간 30분 동안 등산을 했는데도 고작 9.8km 밖에 이동하지 못했다. 한 시간에 겨우 1km씩 걸은 것이다. 원래 나의 계획은 8km 이후에 있는 '은티고개' 까지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계획이 너무 많이 틀어져 버렸다. 2km도 5km도 아닌 8km 라니.
거리를 좁히려면 오늘 내일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평소보다 서둘러 7시 정각에 종주를 시작했다. 이어지는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바위도 중간 중간 있었지만 어제와 같은 고행의 구간은 아니었다. 비교적 완만했고 흙길 숲길이 대부분이었다.
2시간 45분 후 악희봉 갈림길에 도착했다. 지도에 표시된 예상시간보다 20분 더 걸려 도착했다. 이정도면 준수하다. 악희봉 갈림길에서 800m 정도 떨어진 곳에 악희봉 정상이 있고, 악희봉 정상은 백두대간 경로에서 벗어난 곳이었다. 악희봉 정상을 들렀다 백두대간을 이어가려면 다시 이 곳으로 돌아나와야 한다.
나는 악희봉으로 방향을 튼다. 월요일에 만나 나의 배낭을 들어주셨던 아저씨가 악희봉은 꼭 가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악희봉은 그 자체로도 좋지만 그 곳에 서면 월악산이 한 눈에 펼쳐보인다고 했다. 바위로 유명한 국립공원이 장관처럼 펼쳐진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은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아침부터 안개가 자욱했고 악희봉에 도착했을 땐 안개가 걷혔지만 여전히 흐린 날이었다. 황사가 심한 것인지 근거리도 선명하지 않고 뿌옇게 보였다.
그래서인지 악희봉에서 건너다보이는 산세가 '와! 장관이다!' 라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악희봉 가는 길에 보았던 입석바위와 소나무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그래서 이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구간이었다. 악희봉이 높고 뾰족한 봉우리가 아닌 완만하고 넓은 봉우리라서 삼거리에서 이 곳까지 오는 것이 힘들지도 않았다.
악희봉에는 두 개의 정상석이 있었다. 오래되어 보이는 정상석에는 '악희봉' 이라 씌어있고, 최근에 박아 넣은 것으로 보이는 정상석에는 '악휘봉' 이라고 씌어 있다. 그리고 나의 백두대간 지도에는 '악희봉' 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무엇이 진짜 이름일까? 지명도 이름이 바뀌는 게 신기하다. 설마 단순한 오타는 아니겠지?
다시 삼거리로 돌아나와 이번엔 어제의 목적지였던 '은티고개' 로 향한다. 오늘도 여전히 바위가 나타났지만 로프를 잡고 오르내리는 직벽이 아닌 매끄럽고 넓은 바위인 슬랩(slab) 이 나타나 기분이 좋았다. 암릉 옆에 로프가 있었지만 굳이 잡고 지날 필요가 없는 바위였다.
은티고개를 지나 구왕봉까지 달린다. 지도에서 1시간 50분 걸린다고 하는 구간을 정확한 시간에 도착했다. 오후 1시 35분. 구왕봉 정상에서 점심을 먹으며 쉬기로 한다.
수요일인데 구왕봉에는 사람이 많았다. 개인별로 각 각 온 사람들과 산악회에서 우루루 온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딱히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당일 산행을 나온 네 명의 아저씨들이 나에게 물을 나누어 주었다. 괜찮다고 하는데도 굳이 나눠주신다. 아저씨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곧 이어갈 '희양산' 이 물 없이 지날 곳은 아니라는 것을.
구왕봉 정상을 지난 직후부터 급경사 로프구간이 나타났다. 다시 시작된 건가? 로프를 잡지 않고는 도저히 지날 수 없는 내리막이 나타난다. 희양산도 대야산만큼이나 암릉으로 유명한 산이었다. 하지만 나는 봉우리 하나쯤은 오르내릴 수 있다. 어제는 대야산 이후로 촛대봉과 곰넘이봉이 연속으로 어퍼컷을 날리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것 뿐이다. 봉우리 하나라면 괜찮다. 충분히 해볼만 하다...
자기 암시를 하며 로프를 잡고 조심히 발을 이동한다. 어제 그 고생을 해서인지 오늘의 구간은 썩 괜찮았다. 이 정도면 박배낭을 메고도 충분히 지나갈만 하다고 생각한다.
20분 걸려 지름티재에 도착하자 깊은 숲 속에 높은 울타리와 함께 여러개의 경고 안내판이 큼지막하게 세워져 있었다. 이곳은 대한불교 조계종의 특별수도원으로 스님들이 참선을 수행하는 곳이니 희양산 정상부는 출입을 금하고, 이곳 지름티재에서 희양산 능선 너머 시루봉까지는 조용히 이동해 달라는 안내판이었다. 그리고 다른 표지판에는 희양산 일대의 산림이 모두 '봉암사' 라는 절의 소유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문경시 가은읍에 위치한 '봉암사' 에 대한 얘기는 일찍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큰 스님인 성철스님을 배출해 낸 곳으로 조계종에 입문하려는 스님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곳이라고 했다.
조계종의 스님이 되려면 모두 봉암사에서 일정기간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곳은 스님이 되고나서 교육을 받는 곳이 아니라, 스님이 되기 전 기본기를 배우는 곳이라고 했다. 여기서 교육과 훈련을 받은 후 진정 승려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속세로 돌아갈 것인지를 정한다고 했다.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듯 백두대간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스님들이 모여 있을지는 몰랐다. 울타리 너머로 그늘막이 막사처럼 쳐져 있는 곳에 스님들이 떼로 모여있었다. 방금 축구를 하고 온 것인지 젊은 스님들이 어수선하게 자리에 걸터앉으며 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오늘의 백두대간 >
고산자 지도/ 남쪽에서 북쪽방향으로
총 24구간 중
9구간
진행 구간 : 장성봉(경북 문경시)-악희봉-은티고개-호리골고개-구왕봉-지름티재(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의 경계)
진행 날짜 : 2012년 6월 6일 / 수요일
월화수목금 주5일 연재됩니다~^^
파란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