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공포를 깨우는 기괴한 소리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by 파란동화


배낭을 들어주셨던 아저씨와 헤어지고 홀로 길을 이어간다. 그런데 물을 가득 가득 채웠더니 그 무게를 견딜 수 없다. 허리에 통증이 밀려와서 한 걸음 한 걸음을 떼기가 너무나도 힘들다. 무릎이 후들들 떨려온다.




으윽... 안되겠다. 그냥 아무데서나 자야겠다. 아직 날이 밝아서 한 시간 정도는 더 이동하려 했는데 이 배낭을 메고 억지로 가다가는 정말이지 깔려 죽을 것 같다. 고집스레 길을 이어 가다 허리병신이 될지도 모른다.




다행히 고모치에서 15분가량 이동한 곳에 누군가가 예쁘게 다져놓은 야영지가 있었다. 2인용 텐트 두 동이 들어갈만한 공간에 누군가 풀을 야무지게 다져놓은 것이다. 나는 더 볼 것도 없이 배낭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오후 5시 25분. 대간 종주 사상 가장 이른시간에 비박모드에 들어섰다. 물을 가득 짊어진 배낭으로는 한 발짝도 더 이동할 수 없었다. 다행히 내일도 모레도 물이 나오는 곳 바로 근처에서 야영이 가능할 것 같다. 10일간의 식량으로 배낭이 꽉 찬 종주 초반에 야영지마다 물이 있어주어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지칠때까지 걷지 않고 박지를 잡으면


무슨 사단이 생겨도 생긴다.




텐트를 설치하고 밥을 다 먹고나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다이어리를 펼쳐 오늘의 기록을 채우고 지도를 보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살펴보고 있었다. 해가 질락 말락 어둠이 찾아 올락 말락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랜턴을 켤까 말까 고민을 하며 계속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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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멀리서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가 분명한데도 선명하게 나의 귀에 꽂혔다. 아니, 귀에 꽂힌게 아니라 심장으로 날카롭게 파고 든 느낌이다. 그 소리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분명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데 나의 귀에는 괴물의 포효소리로 들렸다.




살면서 처음 듣는 낯설고 기괴한 소리였다. 이 근처 어딘가에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실패한 동물실험실이 있는 것 같았다. 그 실험실을 탈출한 괴물이 세상에 대한 분노로 포효하고 있는 것 같았다. 늑대와 사냥개와 지킬박사의 다른 자아인 하이드를 섞어놓으면 꼭 저런 소리를 낼 것 같았다. 나를 공포로 떨게 했던 삵의 울음소리와도 달랐다. 그것보다 훨씬 음침하고 훨씬 쇳소리가 강하며 훨씬 우렁찼다.




너무나 무서운 소리였다.

심장을 옥죄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어린시절의 끔찍한 기억을 소환했다.




어느 여름 밤이었다.

나는 열 살쯤 이었을 것이다. 나보다 세 살이 많은 언니와 둘이서 저녁을 먹고 나서 할 일 없이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돌아왔다.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 누워서 빈둥거리던 우리를 보더니 벌컥 화를 내며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의 눈은 이미 반쯤 풀려있었다. 우리를 짐승 다루듯 하던 순간의 눈이었다. 우리는 바들바들 떨었다. 집에는 오빠도 없었고 새엄마도 없었다.




아버지는 너희 같은 것들은 개만도 못하다며 우리를 개집에 가두었다. 당시 우리집엔 아버지가 식용으로 키우던 개가 항상 있었다. 귀여운 애완견이 아니었다. 진돗개처럼 커다란 황갈색의 잡종견이었다. 개집으로 쓰이던 창고는 안방만큼 컸는데 그 큰 우리에 개를 다섯마리 키우던 시기였다.




아버지는 거기에 열 살이던 나와 열 세살이던 언니를 밀어넣었다. 너무나 무서웠던 우리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개집으로 들어갔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눈이 풀린 아버지의 손에 맞아 죽을지도 몰랐다.




문이 닫히자 개집 안은 칠흙같이 어두웠다. 그 어두운 개집 안에 열 개의 눈동자가 발광체로 빛나고 있었다. 열 개의 눈동자가 우리를 쏘아보고 있었다. 나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개가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다. 너무 너무 무서웠다. 혼절할 것 같았다. 개가 우리를 잡아먹을 거라고 미친년처럼 중얼중얼 울먹이며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두려움에 눈물을 흘리며 바들바들 떠는 나를 언니가 꼬옥 안아주었다.




"무서워 하지 마. 개들도 우리가 자기네들 밥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 우리가 자기들 주인이라는 것을 알아. 그러니 절대 우리를 잡아먹지 않아. 걱정 마. 언니가 지켜줄게."




언니는 있는 힘을 다 해 나를 끌어안아 주었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개들을 바라보았다. 개의 눈동자들이 가까이 다가올까 두려워 일 초도 눈을 깜빡일 수 없었다. 개들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던 것인지 한쪽 구석에서 엎치락 뒤치락 할 뿐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개집의 문이 열렸다. 새엄마였다. 우리에게 어서 나오라고 했다. 우리를 꺼내주며 새엄마도 당황하고 놀란 표정이었다. 집에 왔는데 우리가 안 보여서 술 취해 누워있는 아버지에게 아이들 어디갔냐 물으니 잠꼬대처럼 개집에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안가지만 아이들이 집에 없으니 개집을 열어보았는데, 설마했던 우리가 정말로 그 안에 있었던 것이다.




언니는 나를 끌어안고 눈을 질끈 감고 있었고 나는 혼이 빠진 사람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얼굴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서.




한동안 새엄마는 우리를 때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술 취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우리에게 화풀이 하던 새엄마였다. 그런 새엄마가 우리를 때리지 않았다. 내가 제정신을 차릴 때 까지 기다려주는 것 같았다. 나의 성장기 내내 아버지보다 새엄마의 폭력을 더욱 견딜 수 없었지만, 아버지가 미쳐 날뛰면 그 때마다 우리를 구해주는 것은 새엄마였다.




산에서 들려온 기괴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그 끔찍한 기억을 되살아나게 했다. 캄캄한 개집 안에서 보았던 열 개의 눈동자가 산 속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덧 해는 져서 사방이 어두운데 나는 텐트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앉은 자리에 못 박힌듯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텐트 안으로 들어가 입구를 닫으면 그 날 개집에 갇혔던 느낌이 더욱 생생히 나를 지배할 것 같았다.




짐승의 울음소리는 30분 넘게 이어졌다. 그나마 밤새도록 이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밤새도록 이어졌다면 나는 밤새 텐트 밖에 앉아있어야 했을 것이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사람들과 함께 비박을 다니며 알게되었다. 그 울음소리가 발정난 고라니의 울음소리라는 것을. 사슴보다 더 작고 사랑스러운 고라니가 발정기가 되면 저런 끔찍한 소리를 낸다니. 식스센스보다 더욱 놀라운 반전이었다.








성인이 되고도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언니와 어린시절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개집에 갇혔던 일을 꺼낸 적이 있다. 그때 언니는 화들짝 놀라며 내게 말했다.




"뭐? 너 그런 일도 당했어?"




당황한 내가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우리 같이 당했잖아. 그때 언니가 나를 안아주고 안심시켜 줬잖아. 언니 없이 혼자 당한 일이었으면 그 날 이후로 내가 미쳤겠지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 있었겠어?"




언니는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았다. 반면에 나는 아주 사소한 것도 다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같은 어린시절을 겪고도 언니는 불면증이 없었다. 죽지 못해 겨우 살아가는 나에 비해 언니는 생각보다 무던하게 살아가는 것 같았다.




기억력도 약하고 똑같은 일을 두번 세번 가르쳐도 계속 실수를 반복한다는 이유로 자식들 중에 가장 많은 구박을 받아야 했던 언니는, 그 특성 덕분에 겪은 일에 비해 비교적 괴롭지 않게 살 수 있었다.




기억력도 좋고 한 번 배운일은 야무지게 해낸다고 언니보다 덜 맞고 자란 나는, 바로 그 능력때문에 경험과 인생이 쌓일수록 사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졌다. 나는 성인이 되어 그 집을 벗어나고도 어린시절에 대한 기억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어린시절의 기억은 늪지대처럼 나를 점점 집어 삼키고 있었다.




그 날 내 옆에 언니가 없었다면 내가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니가 없었다면 나는 그 날 이후로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잤다. 까무룩 잠이 들면 다시 고라니의 울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왔고, 화들짝 깼다가 다시 잠이 들면 어린시절 겪었던 일들이 뒤죽박죽 꿈으로 나타났다. 잠이 들다 깨다 무한 반복이었다. 5분 이상 연이어 잠들지 못한 느낌이다. 태양은 벌써 저만치 떴는데 나는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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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날이 밝았으니 오늘도 길을 이어가야지. 천근만근인 몸으로 아침을 끓여 먹고 다시 배낭을 들쳐맸다. 오늘부터는 계속 암릉에 로프가 나타나는 구간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어제는 물을 가득 채운 배낭을 이기지 못하고 고모치에서 15분 이동한 곳에서 비박을 한 것이었는데, 여러모로 어제의 잠자리가 나를 괴롭혔다. 저녁 어스름에 들려온 고라니 소리로 공포에 떨어야 했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여야 했으며, 이어지는 대간길은 시작부터 빡쎈 오르막이었다.




잠을 자는 동안 피로를 풀기는커녕 피로가 쌓일대로 쌓인 상태에서 시작부터 빡쎈 오르막을 치고 올라가려니 아침부터 기력이 쭉쭉 빠져나간다. 무겁고 무거운 박배낭을 메고 겨우 겨우 2시간을 걸어 능선에서 좌우로 탈출할 수 있는 '밀재' 에 도착했다. 여기서 동쪽으로 탈출하면 경북 문경의 유명한 '용추계곡' 이 나타난다.




나는 당일배낭을 메고 어제 이 길을 모두 지나쳐 용추계곡으로 하산하여 민박을 하고 다시 산을 올라 백두대간을 이어갔어야 했다.




등산지수 만렙인 아저씨들도 당일배낭을 메고 통과하는 구간인데 내가 너무 생각이 없었다. 대야산과 촛대봉 구간을 무시한 대가를 얼마나 크게 치루게 될지 미리 알았더라면, 열흘치의 식량을 싸들고 이 곳을 오르는 무식한 짓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모든 사람들이 무사히 지나가는 곳이었으니 나도 무사할 줄 알았다. 그들과 나의 체력을 비교하지 않고, 그들과 나의 배낭무게를 비교하지 않은 채 나는 겁도 없이 대야산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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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백두대간 >
고산자 지도/ 남쪽에서 북쪽방향으로
총 24구간 중
9구간

진행 구간 : 고모치- 15분 거리 비박(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의 경계)-밀재(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의 경계)

진행 날짜 : 2012년 6월 4일~5일 / 월~화

SE-d801c67c-89aa-4a56-9a1e-5358a9ecac4a.png?type=w1 * 지도 : 고산자의 후예들/ 백두대간24 *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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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첫날이자 월요일부터 이런 내용이라

무척이나 죄송합니다. 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금 잘 살고 있으니 ^ ^



여러분도 소설 한편 읽었다 생각하시고

마음을 털어내시기 바랍니다.



항상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정한 행운과 행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파란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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