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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율 Mar 31. 2017

칠레 깔라마 버스터미널에
있던 사람 모두 한패였다.

칠레 여행 중 당한 도난사건 





"너희 가방에 현금 들어있어? 없어? 그게 가장 중요해"

"현금은 아예 없어. 제발 우리 가방 좀 찾아줘!"





 우리 자매는 생각했다. '이제 한숨 돌리겠구나!' 왠지 칠레라는 나라는 범죄가 없는 선진국 같아 보였다. 이제부터는 정말 편안하게 여행해도 되겠구나 싶었다. 앞서 여행한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페루에서 좀도둑한테 몇 번 당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고급 브랜드 고어텍스와 고대기를, 길거리를 걷다가 선글라스를 뺏겼다.


 하지만 이게 웬걸! 남미 여행 최대 도난사건 2건을 모두 칠레에서 당했다. 우리의 전재산이라 할 수 있는 '여권'과 '노트북' '고프로'를 도난당한 것이다. 가난한 나라가 아닌 곳에서 큰 도난을 당해서인지 더욱더 어안이 벙벙했다. 역시 여행지에서의 도난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른다. 



▲이른새벽 깔라마 버스터미널엔 인적이 드물었다.






 칠레 북부 칼라마지역의 버스터미널이다. 아침 7시 버스를 타고 아타카마 사막으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새벽 5시에 칼라마 터미널에 도착하는 바람에 2시간의 텀이 생겼다.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버스 터미널에 비하면 칠레 버스 터미널은 정말 깔끔했다. 고급 매점이 있어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 먹을 수 있다. 버스회사 직원들도 단정한 옷차림의 유니폼을 입었다. 

 

 동생은 엄청 큰 개와 함께 의자에 앉아 있었다. 큰 배낭은 의자 위에 놓았고, 중요한 물건이 들어 있던 보조가방은 앞으로 메었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 한분과 건달같이 생긴 남자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디가? 아타카마 사막가? 나 아타카마 사막 가이드야. 반가워. 같이 가자!" 그렇게 그 남자와의 수다가 시작됐다. 어떻게 한국에서 칠레까지 오게 됐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우리는 그것보다 아타카마 사막에는 정말 비가 내리지 않는지가 더 궁금하다고 했다. 깔깔거리고 웃고 떠들 때였다. 


 우리 4명(나, 동생, 말이 없는 할머니, 가이드라는 건달 같은 남자 앞에 어떤 선글라스 낀 남자가 '열쇠'를 떨어뜨렸다. 동생은 열쇠를 주워 그 사람에게 건네줬다. 그 남자는 동생에게 "그라시아스!(Gracias)"라고 말한 뒤 사라졌다. 그런데... 그 남자만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 순간 할머니도, 가이드라는 남자도, 우리의 보조가방도 다 함께 사라졌다. 

 


▲사건 발생 직전. 동생은 배낭2개와 보조가방을 가지고 큰 검정개와 놀고 있었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보조가방에는 가장 중요한 여권과 노트북이 들어있었다. 여권이 없다면 우린 칠레 이스터섬으로 가는 비행기에 타지 못한다. 정신없이 버스정류장을 휘젓고 다녔다. 터미널 직원에게 CCTV를 돌려달라고 소리까지 질렀다.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그때 건달 같은 가이드라는 남자가 다시 등장했다. 


"너네 가방에 뭐 들어있어? 혹시 현금 들어있어?"

"아니, 노트북이랑 여권밖에 없어. 현금은 없어. 제발 도와줘!"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찼다. 터미널 직원들에게 도난물품을 찾아야 된다고 소리를 꽥꽥 질렀고, 마치 범임을 잡으면 때려죽일 기세였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도난을 당하면 당황한다고 한다. 경찰에 신고하는 적극적인 사람도 있지만, 쉽게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완강했다. 여권을 찾지 못하면 이스터섬행 비행기를 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가이드라는 남자가 갑자기 어떤 택시기사를 데려왔다. "이 택시기사가 너네 가방을 보관하고 있데. CCTV 안 돌려 봐도 될 것 같아. 그러니까 버스회사 직원들한테 절대 말하지 마." 그러더니 택시기사가 자길 따라오란다. 그 택시 기사 말에 의하면 가방을 주워서 자신의 택시 뒷 트렁크에 보관해 놨단다. 자신이 가방의 주인을 찾아 줄 수 있어서 기쁘단다. 그렇게 허무하게도 우린 가방을 찾았다.

 이들이 우리에게 가방을 돌려준 이유는 '현금'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들에게는 현금뭉치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상황, 도대체 뭐지? 대략 10분간 동안 짜인 시나리오에 당한 이 느낌? 갑자기 택시기사가 자신의 택시에서 우리 가방을 준다고? 터미널에 있던 모든 사람이 공범이었다. 할머니도, 가이드라는 남자도, 열쇠를 떨어뜨린 남자도, 택시기사도... 설마 버스터미널 직원들도 한패였을까? 

 

               

▲새벽시간이라 사람도 더 없었다. 그래서 타겟으로 삶기 좋았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 도난 사건은 칠레 이스터섬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이스터섬 국립공원 직원한테 당했다. 이스터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인 아우 통가리키(거대모아이석상 15구가 일렬로 늘어서 있는 곳)에서 고프로를 잃어버렸다. 사실 이스터섬은 칠레 국립공원이기 때문에 국립공원 직원들의 관리가 꼼꼼하다.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을 직원으로 뽑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우통가리키에 도착하자마자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사진을 찍어댔다. 인생 샷을 남기고 싶었다. 한바탕 사진을 찍고 고프로로 영상 촬영을 하려고 하는데 내 손목에 매달려 있던 고프로가 없어진 것이다. 셀카봉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내 손목에는 셀카봉만 남아있고 주먹만 한 고프로만 사라진 것! 


 이렇게 넓은 곳에서 고프로를 어떻게 찾지? 그리고 분명 이곳에는 나와 동생, 모아이 석상을 지키는 직원 뿐이인데? 고프로는 아이폰이랑 연동이 된다. 아이폰을 켜고 주변에 고프로 신호가 잡히는지 봤다. 혹시라도 내가 숙소에 고프로를 놓고 온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내 주변 어디에서 고프로 신호가 잡혔다. 30분 이상 잔디밭을 샅샅이 뒤졌다. 잔디 깊숙이 떨어뜨렸거나, 혹은 내가 고프로를 밝아서 흙속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상상과 함께 몇 군데 흙속을 파내기도 했다. 그 정도로 정말 찾고 싶었다. 남미 여행의 모든 영상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이 넓은 곳에서 고프로를 잃어버렸다. 
▲고프로를 되찾은 후, 안도감에 찍은 사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국립공원 직원 3명에게 가서 물었다. 혹시 고프로 본적 있냐고.  "고프로가 뭐야? 우리는 영어를 못해. 스페인어 할 줄 알아? 고프로가 뭐야?"를 반복한다. "내 아이폰에 고프로 위치가 뜨는데 지금 니 옆으로 나와! 네가 가져갔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영어를 못한다던 그들은 내 말을 알아 들었나 보다. 갑자기 자리를 뜬다. 몇 분 후, 그들이 뜬 자리에서 고프로 발견... 그들은 우리의 고프로를 가지고 그 자리에 계속 앉아있었던 거다. 우리가 떠나면 가지고 갈 속셈이었나 보다. 열 받아! 이스터섬에 들어올 때 국립공원 입장료를 6만 원이나 냈다. 그런데 국립공원 직원들이 관광객의 안전은 생각하지 않고, 도둑질이라니! 역시 여행지에서의 도난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른다에, '누구'로부터 당할지 모른다는 것도 추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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