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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율 Mar 30. 2017

폭풍우 치는
태평양 한가운데서 캠핑




"파도가 우리 텐트 덮치면 어떡하지? 무서워 죽겠어"

"난 텐트가 날아가버릴까 봐 더 무서워. 우리 태평양 한가운데서 뭐 하는 거야"

 






 남미 여행을 하면서 100%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했다. 한 번도 한인숙소에 머물지 않았을 만큼, 현지 생활에 익숙해지고 싶었고 외국인 여행객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외국인들과 함께 염소고기를 잡은 숙소, 지진 강도 7을 겪었던 숙소, 맨 꼭대기층 팬트하우스에서 야경을 즐긴 숙소, 주인과 대판 싸워 숙소를 옮겨야만 했던 곳 등 우리 자매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다. 

 

 우리의 애초 계획은 그날 도착한 도시에서 당일로 숙소를 찾을 셈이었다. 딸랑 지도한 장 들고 말이다. 진정한 여행자란 숙소도 당일에 찾는 거라며 허세를 부렸다. 참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했을 때다. 마침 페루는 국경일을 맞아 온 동네가 떠들썩했고, 관광객도 많았다. 여러 군데 게스트하우스를 가봤지만 전부 꽉 차 있었다. 계속해서 숙소를 찾아다니다가 밤 9시가 됐다. 초조해졌다. 이대로 숙소를 못 구한다면 길거리에서 자야 하나? 정말 무서웠다. 다급한 마음에 맥도널드에 가서 노트북을 열고 당일 숙소를 서칭 했지만 실패다. 

 당일 느긋한 마음으로 숙소를 찾겠다던, 마치 히피나 보헤미안스러운 여행객이 되보겠다던 우리 자매는 낯빛이 새파래졌다. 이게 무슨 꼴이람. 느긋한 여행자가 돼겠다던 자신감은 사라지고 숙소 예약은 꼭 필수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숙소 예약은 대부분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했다. 숙소를 정하는데 제일 먼저 본건 버스터미널과의 거리였다. 낯선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가까운 숙소에 짐을 풀고 상황을 살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엔 조식 여부와 가격, 주변 관광지 등을 차례로 살펴보고 숙소를 결정했다. 아, 인터넷이 잘 안 되는 도시에서는 현지 PC방을 찾아가 꼭 도시 도착 2~3일 전에 예약했다.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가 야외쉼터를 가지고 있다. 의자나 해먹에 누워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 'Aji Verde Hostel San Pedro de Atacama'


 넓은 마당을 보고 반해버린 숙소다. 솔직히 아타카마 사막에는 예쁘고 저렴한 숙소가 많다. 이 숙소는 마당을 독특한 문양과 그림 등으로 잘 꾸며놨다. 마을 모퉁이에 있어서 밤에는 불빛이 하나도 없는데, 정말 별이 쏟아질듯했다. 마당에서 아기 염소와 엄마 염소도 살고 있었다. 

 우리는 일부러 마당에 있는 텐트를 예약했다. 이불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텐트여서 밤에는 해드 렌턴으로 빛을 비춰야만 했다. 이국적으로 꾸며진 마당 풍경 때문인지 불편함도 못 느끼고 연장해서 묵었던 곳이다.

 

 다만... 주인이 외국인 여행객들과 함께 엄마 염소를 잡아먹겠다는 것. 가끔 이런 파티를 한다고 한다. 그 예쁜 마당에서 엄마 염소를 대놓고 잡았다. 외국인들은 염소 잡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SNS에 올렸다. 염소피를 나눠 마시기도 했다. 우리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새끼 염소들을 돌봤다. 낯선 광경이었다.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이 마을에서 염소를 잡아먹는 일은 자주 있다고 한다. 그래도 현지인들이 아닌 외국인 여행객들이 함께 염소를 도축하는 건 사실 좀 꺼려졌다. 그만큼 리얼 현지 탐험 숙소였다. 




▲다함께 염소를


▲너무나도 맘에 들었던 넓고 아기자기한 마당




▲다그닥 다그닥, 아기염소 발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 같다.








- 칠레 산티아고 'Santiago Backpackers'


 칠레 숙소에서 술을 마시고 놀다가 강도 7의 지진을 경험했다. 호스텔 직원인 프랑스인과 칠레인, 나와 동생 4명이서 와인을 마셨다. 밥 말리의 레드와인 음악을 들으며 한참 흥에 겨웠을 때였다. 밤 9시쯤 됐을까. 갑자기 이 친구들이 내 손묵을 으스러지도록 잡고 호스텔 문쪽으로 달려갔다. 처음에 이게 무슨 상황인지 당황했다.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장난치는 줄 알았는데, 지진이 발생했다는 것. 


 칠레에서 오래 살았다는 이들은 지진을 감지하고 매뉴얼대로 문쪽으로 순식간에 대피한 것이다. 사실 나는 지진을 느끼지 못했다. 산티아고에서 2시간 떨어진 발파라이소에서 강도 7의 지진이 난 것이다. 이들의 발 빠른 대처에 정말 놀랐다. 다행히 아무 일 없었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곧바로 뉴스를 통해 내용을 확인했다. 게스트 하우스 천장에 달린 전등이 흔들릴 정도였고 자칫 큰 지진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고 한다. 


 이 친구들은 지진 상황 종료 후, 한국에는 정말 지진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냐며 신기해했다. 그러면서 칠레에서는 잦은 지진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처요령을 인지하고 있다고 알려줬다. 우리가 술을 먹고 있던 부엌은 위험한 물건들이 많아 아주 미세한 지진을 감지하면 곧바로 현관문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 손을 잡고 대피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랑스럽게 한국에선 지진이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고 떠들어 댔지만 우리나라에도 결국 지진이 났지.  




                       

▲딱 이렇게 마시며 놀다가 갑작스럽게 발생한 지진. 








- 페루 이카 와카치나 사막  'Bananas hostel'


 사실 와카치나 사막에 도착하자마자 호스텔을 전부 돌아다녀 봤지만, 너무 낡았다. 냄새도 심하고 온수도 안 나오고, 와이파이도 안된단다. 침대에 살짝 누워봤는데 푹 꺼져있었다. 결국 와카치나 사막 거의 모든 곳을 돌아다닌 다음 맨 끝쪽에서 이 숙소를 찾았다. 

 

 가운데 바(Bar)가 있어서 언제든지 맥주와 안주를 시켜먹을 수 있다. 바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못했지만 친절하고 음식 솜씨가 좋았다. 와카치나 사막은 워낙 좁아서 식당도 별로 없고 비싸다. 숙소도 깔끔하고 저녁식사와 술도 파는 바가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무엇보다 여행객에 대한 배려가 좋았다. 사막이다 보니 조금만 돌아다니다 보면 신발과 발이 모래투성이가 된다. 이를 위해 여행객들이 발을 자주 씻을 수 있도록 수도시설을 만들어 놨고 물줄기도 시원시원했다. 


 매일 밤 고기와 술 1병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바비큐 파티도 열렸다. 무제한 고기! 뷔페라니! 오랜만에 엄청 먹을 수 있겠다는 기쁨과 함께 바비큐 시간을 기다렸다. 나와 동생은 서로 얼마나 많이 먹을 수 있을지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드디어 뷔페가 열렸다. 근데 이게 무슨 일이람? 외국인 여행객들은 몇 번이고 가져다 먹을 수 있는 뷔페임에도 불구하고 딱 1 접시만 먹고 포크를 내려놨다. 왜 더 안 먹냐고 했더니, 먹을 만큼만 가져와서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한다. 우리는 무조건 많이 먹어야겠다는, 배불러도 더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살짝 창피했다. 그리고 그들과 뷔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뷔페라는 개념이 많은 음식을 선택하는 게 맞지만 딱 먹고 싶은 만큼만 챙겨가 먹는 거라고 했다. 우리는 무한리필의 개념이라고 말했더니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와카치나는 사막 한가운데 인공으로 만들어진 아주 작은 도시다. 


▲음식이 정말 맛있었던 게스트하우스의 BAR









-아르헨티나 바릴로체  'Hospedaje Penthouse 1004' 


 게스트하우스인데 팬트하우스다? 팬트하우스인데 게스트하우스다? 이 숙소를 추천해준 지인에게 계속 반복해서 질문했다. 가난한 여행자들이 머무는 게스트하우스인데, 어떻게 팬트하우스냔 말이다. 바릴로체 1004 게스트하우스는 정말 맨꼭대기였다. 가격은 살짝 비쌌지만 그래도 남미 여행 중에 전망 좋은 경치 한번 보자며 선택했다. 인기가 많아서 1~2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 


 한 건물의 객실을 개조해서 만든 곳인데 정말 깔끔했다. 베란다에 나가면 바릴로체의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멀리 설산이 보이는 호수도 물빛이 반짝인다. 이 게스트하우스는 밤의 야경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바깥 발코니에서 맥주 한잔하며 풍경 감상하기에 딱이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취미가 쿠킹이라서 직접 만들 빵을 자주 가져다준다. 마치 간단한 디저트를 주는 홈서비스 같았다. 세탁 서비스도 남다르다. 여행으로 더러워졌던 옷을 향기롭고 깔끔한 옷으로 바꿔준다. 가난한 여행자에겐 정말 팬트하우스에서 하루 묵는 거나 다름없는 경험이다. 가끔은 이렇게 예산 내에서 살짝 사치를 해도 좋은 것 같다. 호텔만큼은 아니지만, 게스트하우스로서는 최고급이다.


                                                                                                                    

                                 

▲남미의 스위스라 불리는 바릴로체


▲이 건물 맨 꼭대기층에 1004게스트하우스가 있다.


▲깔끔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숙소


▲발코니에서 바라본 야경





-칠레 이스터섬 'camping mihinoa'


 태평양 한가운데서 캠핑을 즐긴 이스터섬의 미히노아 캠핑장. 워낙 인기가 많아 2~3개월 전에 미리 예약해뒀다. 캠핑장에 도착하면 작은 텐트가 몇 개 쳐져있다. 텐트 옆에 작은 미니의자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앞이 바다라는 점이다. 선명한 파도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곳이다. 


 마침 우리가 도착한 날 날씨가 굉장히 안 좋았다. 밤이 되자 거친 파도가 캠핑장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  텐트에 누워서 잠을 청하려고 하면 쓰나미가 올 것 같은 굉음에 1분도 버틸 수 없었다. 거기다가 강풍이 불어 텐트가 날아갈 것만 같았다. 캠핑장 주인에게 하소연 봤지만 안 통한다. 이스터섬의 날씨는 원래 이렇고, 절대 텐트가 날아가는 일이 없도록 땅속 깊이 잘 박아 놨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그리고 바닷가의 파도가 덮치리라는 상상은 그만하라고 하며 웃는다. 


 태평양 한가운데 동떨어진 섬의 날씨란 정말 종잡을 수 없었다. 폭풍우가 치는 날이 있는가 하면, 하늘이 너무 맑아서 은하수가 보일 정도인 날도 있었다. 텐트에서 자크를 내려 하늘을 바라보면 그냥 눈앞에 보이는 게 별과 은하수다.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도 불러일으켰다. 아주에 와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직도 누군가가 남미 여행 중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물으면 '이스터섬 캠핑장 텐트 안'이라고 답한다.




▲캠핑장에 누워 바라본 은하수


▲숙소 바로 앞 태평양 바다
▲약해보이지만 절대 쓰러지지 않았던 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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