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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율 Mar 30. 2017

인디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남미 전통 시장  

남미 각 나라별 재래시장 이야기




"새끼 라마를 박재해서 파는 건 주술적인 이유 때문이에요. 무서워하지 말아요.

 가난한 볼리비아 사람들은 집 아래 새끼 라마를 묻으면 행운이 들어온다고 믿어요."

 





 나와 동생은 새로운 나라로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시장'이다. 그 나라에서 어떤 음식을 파는지도 궁금했지만 무엇보다도 '물가'를 체크하기 위해서다.  볼리비아는 화폐가 엄청 싸서 지출을 많이 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브라질은 물가가 비싸서 과일 하나 사 먹기도 눈치 보였다. 이렇게 각 나라의 물가를 알아야 우리의 예산을 체크하고 돈을 현명하게 쓸 수 있다.


 사실 남미 여행에 오르기 전에 각 나라별로 쓸 예산을 정해놨다. '에콰도르는 달러를 쓰고 레포츠를 많이 할 거니까 미리 달러 환전을 해놓자',  '칠레에서는 물가가 엄청 비싸다는 이스터섬에 들어갈 거니까 넉넉히 예산을 잡아 놓자', '아르헨티나에서는 암달러 거래를 할 수 있으니까 적당히 준비하자' 이런 식이 었다. 빡빡한 여행 예산이었다. 한 나라에서 2~3주씩 머물며 쓸 예산을 미리 정해놓고 여행을 온 이상, 우리한테 물가는 정말 중요했다. 그런데 물가를 체크하러 갔다가 각 나라마다 전통시장에 반해버렸다.  


 처음 보는 화려한 형형색색의 과일들, 돼지를 통째로 놓고 잘라주는 정육점, 고산지대 특징 상 코카잎으로 만든 차와 캔디까지. 나와 동생은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전통시장에 꼭 들렀다. 처음 보는 새콤한 누들 음식과 징그럽게 생긴 과일, 라마 고기 꼬치와 박카스 맛이 나는 잉카 콜라 등 엄청난 도전이 줄을 지어 이어졌다. 물론 입맛에 맞지 않아 실패한 음식도 많았다. 그리고 각 나라마다 전통시장 느낌도 달랐다. 에콰도르와 페루, 볼리비아는 인디오가 물건을 팔았지만 잘 사는 나라인 브라질과 칠레는 전통상인들 조차도 깔끔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칠레 산티아고의 최대 과일시장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매일 비타민 보충을 했다.








-에콰도르 오타발로 '세계 최대의 가축 노천시장'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세계 최대의 가축시장 오타발로. 남미에서 볼리비아 다음으로 인디오 비율이 높다는 에콰도르에서 전통 인디오들의 삶을 보고 싶다면 단연 오타발로 시장을 추천한다. 토요일에 시장이 가장 크게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토요일에 맞춰 찾아갔다. 아침 새벽부터 열리는 이 노천시장은 오전 11시쯤 되면 끝났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진귀한 광경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돼지와 소, 닭, 토끼 등 수많은 가축들이 거래되는 현장이었다. 인디오들이 각자 가져온 동물들을 놓고 흥정했다. 동물별로 체계가 잡혀 있는 게 아니라 시장은 상당히 복잡했다. 사람과 동물이 섞여 있었고, 돼지 울음소리와 소의 눈물이 가슴을 후벼 팠다. 팔려가는 것을 알고 울어대는 동물들을 보고 싶지 않다면, 가축시장에서 빨리 자리를 뜨는 걸 추천한다. 우리 자매는 가축시장에서 인디오들의 생계수단 거래방법을 더 지켜봤지만, 같이 간 홍콩 친구는 너무 슬퍼서 못 보겠다고 자리를 금방 피했다. 


 가축시장 바로 옆에 전통시장은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직접 손으로 짠 가방과 옷가지들이 보였다. 각종 과일과 로컬푸드도 맛볼 수 있다. 이곳에서 싼 값에 알파카 털로 만든 옷이나 모자, 양말 등을 구입했다. 앞으로 남미 여행이 추울까 봐 알파카 털로 짠 모자를 사려고 하니 15달러를 부른다. 깎고 깎았더니 7달러까지 해준다. 역시 시장은 '흥정'이다. 



▲에콰도르 시장의 상인 대부분은 인디오다.


▲사람과 동물이 섞여 흥정이 이뤄지는 세계 최대 가축시장


▲남대문과 비슷한 분위기. 싼 값에 질 좋은 옷가지류를 살 수 있다.






 -에콰도르 쿠엔카 '과일 시장'


 정말 싼 과일값에 놀랐다. 바나나 한송이가 1달러다. 에콰도르 쿠엔카의 전통 과일시장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과일 직판장에 가지 않는 이상 과일만을 따로 모아놓은 시장은 보기 힘들다. 형형색색의 많은 과일들이 잘 정돈된 모습을 보고 시각적으로 놀랐다. 사과를 긴 봉투에 일렬로 정갈하게 담아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과를 대부분 바구니에 쌓아 놓고 파는데, 이곳에선 비닐에 넣어 놓으니까 상처가 난 곳이 있는지 더 꼼꼼히 살펴볼 수 있었다. 


 에콰도르 쿠엔카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로 여전히 인디오들이 많이 남아있다. 도시 전체가 평화로우면서도 아기자기하다. 굳이 과일시장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길거리에서 과일과 꽃을 파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인상 깊었던 건 꽃을 팔고 있는 인디오의 모습이었다. 시골 논두렁에서 필 것 같은 작고 야리야리한 꽃가지들을 팔고 있는 모습 말이다. 거대한 장미 바구니보다 이 꽃 한 송이 선물 받으면 훨씬 더 정겨울 것 같았다.



▲받고 싶은 꽃다발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는 과일가게
▲바나나 한송이에 무려 1달러!


▲정갈하게 정돈된 과일시장 








-볼리비아 라파즈 에치세리아(마녀시장) 시장


 에치세리아 시장은 일명 '마녀 시장'이다. 이곳에 가면 새끼 라마를 그대로 박재해 놓은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특이한 주술 용품도 많다. 실제로 시장에서 불을 피우는 의식도 행해진다. 주술 시장이다 보니 사진 찍을 때 꼭 주의해야 한다. 허락을 받지 않고 사진을 찍으면 주술 의식에 부정이 탄다고 생각해 화를 낸다. 몇 군대에서는 사진을 찍고 싶다고 정중하게 말하면 흔쾌히 허락해주기도 한다. 


 묘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선가 자꾸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머리 위로 매달린 박재 동물들. 주술에 쓰이는 각종 장신구와 옷가지들이 무섭게 느껴졌다. 으스스한 장신구들이 자꾸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너무 기괴한 것들이 많아서 일까. 마녀 시장 구경하는데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사실 마녀 시장은 원주민들이 부정을 막는 부적이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초를 팔기 시작하면서 생겼다고 한다. 또한 새끼 라마는 집을 지을 때 바닥에 묻으면 행운이 따른다는 속설이 있어서 박재한 거라고 한다.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는 해발 3600m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도이기도 하지만, 정말 가난한 수도이기도 하다. 노란빛으로 뒤덮인 도시 야경이 유명하지만 그 빛은 빈민촌으로부터 나오는 빛이다. 집을 짓다 만 것 같은 곳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부적이나 주술은 하나의 희망인지도 모르겠다. 

       



▲박재된 새끼 라마
▲새끼 라마를 집 지을때 묻으면 행운 온다고 믿는다.
▲자동차와 집, 돈 등 바라는 물건을 쌓아놓고 주술의식이 행해진다.


▲라파즈의 야경. 저 뒤쪽은 모두 빈민촌이다. 검정색으로 뚫린곳은 아예 전기조차 들어가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페루 와라즈 전통 재래시장


 "찰싹~ 찰싹~"

갑자기 인디오들이 라마의 싸대기를 때린다. 화가 난 라마는 '카악' 침을 뱉어버린다. 페루의 작은 마을 와라즈에 도착했다. 머리를 양갈래로 따고 높은 모자를 쓴 인디오들이 많았다. 트레이드 마크인 무릎까지 오는 치마를 입은 여성 인디오들. 너무 신기해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엄청 화를 낸다. 돈을 내야 한단다. 얼떨결에 돈을 건네고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무슨 졸업사진처럼 찍혔다. 형식적으로 사진 2장을 찍어주고 라마와 인디오는 가던 길을 향했다. 그때 라마한테 화풀이하는 인디오. 어떻게 동물의 싸대기를 때릴 수 있지? 나중에 현지인한테 물어보니 라마는 '귀여운 동물'이 아니라 '식용' 동물이란다. 여행객의 눈에나 귀엽게 보일 뿐이라고.  


 와라즈는 전통 재래시장을 둘러싸고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많다. 신선한 과일부터 시작해서, 인디오들이 직접 만든 독특한 장신구까지 구경할 수 있다. 특히 귀걸이나 팔찌 등 눈에 혹하는 것들이 많다. 다만 인디오들의 성격이 너무 무섭다는 것. 재래시장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는데, 사진 찍은 돈을 내라고 한다. 인디오의 얼굴이나 모습을 찍은 게 아니라 신기한 과일이나 장신구만을 찍었는데도 말이다. 내 카메라를 뺏어 들고 사진을 지워버린 인디오도 있었다. DSLR 카메라의 삭제 방법을 조작할 줄 아는 인디오라... 워낙 여행객들이 물건은 사지 않고 사진만 찍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 이후론, 물건을 하나둘씩 산 후 이야기를 꺼내면서 다가갔다. 저녁식사 거리로 야채를 사면서 말을 걸었다. 물론 대화는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얼굴에 환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다소 형식적이었던 기념사진 촬영
▲귀여운 라마, 때리지 말아요 
▲말은 통하지 않지만, 환한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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