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율 Dec 14. 2017

기다림으로 완성되는
먹먹한 사랑 이야기

<5일의 마중> Coming Home, 2014






 

 장예모 감독이 오랜만에 공리와 다시 만났다. 여기에 진도명까지.. 세 사람이 만든 <5일의 마중>은 영화 <인생>보다 더 진한 여운을 줬다.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겪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과 나란히 함께 걸어간다. 세상에 대한 증오도 없다. 슬프면 울며 된다. 그래서 더 먹먹한 영화다.  웃음과 눈물을 일부로 빼내지 않는 장예모 감독. 영화 처음부터 뭔지 모를 먹먹함이 영화 끝까지 전달된다. 눈물이 흐르기 보다는 가슴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먹먹함이 나온다.



 






 문화대혁명시대다.  장예모 감독의 이전 영화들이 문화대혁명 시대의 사건과 분위기에 더 초점을 맞췄다면, <5일의 마중>은 문화대혁명 시대만 이용하고, 한 부부의 기약 없는 만남에 더 집중한다. 공리(펑완위)와 진도명(루옌스) 부부는 교사와 교수 배운집이다. 하지만  진도명은 반동분자로 끌려가 20년을 복역한다. 도망친 아버지를 다시 끌려 가게 만든건 바로 딸 장혜문(단단). 이 때문에 공리는 20여년의 세월 동안 남편을 기다리면서도 딸을 문전박대한다. 딸 때문에 자신의 사랑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그 만큼 남편을 사랑하고, 그 사랑이 '기다림'으로 완성되는 이야기다. 


 문화대혁명시대가 끝났다. 진도명이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공리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진도명은 단 한번도 화를 내지 않는다. 재촉하지도 않는다. 자신을 알아봐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집 바로 옆 작은 방을 구하고 매일 공리를 찾아간다. 자신을 혹시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한다. 예전처럼 피아노를 들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좀 처럼 공리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자신이 20년동안 쓴 편지를 찾아 들고가 읽어준다. 


 






 개인적으로 편지를 읽어주는 장면들이 인상깊었다. 편지는 원래 받는 사람이 읽기만 하는 것. 대게 보낸 사람이 직접 읽어주지는 않는다.  찢어지고 물든 편지가 족히 수천장은 되보였다. 진도명은 자신이 20여년 동안 공리에게 보낸 편지를 일일이 읽어준다. 듣고 있는 공리의 모습이 아이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으로 부터 온 편지의 내용 하나 하나에 반응 했다. 편지 내용은 아주 평범했는데 말이다. 봄이 오고 있고, 망아지가 새끼를 나았고 등등..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사소한 이야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공리는 진도명을 기억해 내지 못한다. 진도명은 이때부터 생각한다. 아내가 자신을 '기억'해주길 원하는 것 보다, 그냥 자신이 아내 '옆'에 있어 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남편으로서가 아니여도 좋으니 그냥 사랑하는 사람 옆에 있어주기를 선택간다. 어떻게 보면, 문화대혁명시대가 끝나지 않았다면 이 둘은 영영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 진도명은 지금 아내 공리 옆에 있다. 비록 자신을 알아 채지 못하지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무슨 감동적인 남주인공이란 말인가...  진도명의 이런 담담하고 무심한듯하지만 깊은 생각이 담긴 행동 때문에 더 담담하고 눈물이 흐른다.




 




 

 매월 5일마다 기차역으로 가는 공리. 문화대혁명시대가 끝나고 남편이 5일에 집으로 갈 거란 편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미 자신의 근처에 와있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채 매달 5일만 되면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간다. 과연 결말이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 자막이 올라가는 것을 끄지 못할 정도로 슬펐던 마지막 장면. 기다림이 평생의 업보인 공리의 얼굴표정이 잊혀지질 않는다. 



 거짓포장한 영화들 사이에서 정말 독보적인 영화다. 기다림, 영화에서 기다림은 몹시 서글프면서도 몹시 따뜻하다. 공리의 소중한 사람이 꼭 올 것이라는 희망,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옆에서 기다리는 진도명의 이야기.  중국 특유의 차 문화. 물이 끓어 오르는 난로를 앞두고 차를 마시며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장면처럼.. 단촐한 구성과 화려함 없는 연기가 인상깊다. 마치 차 한잔 마시며 보기 시작한 영화가 갈 수록 우려져 나온 차 향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 지는 기분이다.  내가 알던 기다림은 답답하고 슬프고, 상실되고 무심한 것 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5일의 마중> Coming Home, 2014

드라마,멜로

감독: 장예모

출연: 공리(펑완위), 진도명(루옌스), 장혜문(단단)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은 무엇인가'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