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혼밥러 여행자의 혼밥에 대한 단상
여행을 다니다 보면 혼자서 밥을 먹어야만 하는 때가 필연적으로 온다. 그것이 2인 주문 필수인 순천의 백반집이 되었든, 부담 없이 한 끼니 해결할 수 있는 베를린의 커리 부어스트(구운 소시지 위에 커리 파우더와 케첩을 뿌려 내놓는 음식) 식당이든 말이다.
사실 혼밥러는 이제 자연스러운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된 지 오래다. 혼자가 편한 나홀로족이 늘면 서다. 한국 전체 인구 중 32%가 1인 가구인 시대다. 식당에서도 1인 손님을 위한 작은 테이블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혼밥에도 레벨이 있다는 걸 아시는지? 가장 접근성이 쉬운 편의점부터, 홀로 소주에 삼겹살을 곁들여 먹는 고깃집 도전 같은 홀로 하기엔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혼밥까지 다양한 챌린지가 존재한다. 혼자 여행을 주로 다니다 보니 혼밥에는 굳은살이 박인 나도 아직까지 홀로 고기를 구워 먹은 적은 없다. 고기보다는 생선을 즐기는 탓이기도 할 테지만.
미슐랭 비밀 평가원이 된 듯, 약간의 역할놀이 가미하기
아무래도 이쪽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쪽은 일본인 듯 싶다. 연차를 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났던 일본 한 중소 도시. 고픈 배를 달래려 들어간 한 라멘집은 칸막이로 분리된 조용한 절간 같은 분위기였다. 수행하듯 라멘 한 가닥 한 가닥을 신중하게 맛보았다. 눈앞에 쳐진 발에서 사람 손이 쑥, 하고 나와 라멘 그릇을 턱 하니 건네주는 아주 기묘한 경험이었다.
오바마가 최고의 치즈케이크라고 극찬을 마지않던 디저트가 시그니처 메뉴인 뉴욕 브루클린의 한 다이너. 1950년에 문을 열어 빨강과 흰색이 교차되는 강렬한 레트로 분위기가 매력적인 카운터에서 앉아 홀로 마초 볼 수프를 주문한다. 닭 육수에 계란, 빵가루, 치킨 지방으로 반죽된 커다란 공(matzo ball)이 동동 떠 있는 이 독특한 수프는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의 전통 음식이기도 하다. 진한 닭고기 국물이 배어든 수프를 홀짝이며, 미국식 다이너는 혼밥을 하기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다이너마다 있기 마련인 주방과 손님들 부스의 경계인 카운터에는 혼밥러에 딱인 1인용 의자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실 홀로 밥을 먹는 데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치 않다.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나는 이 음식을 먹기 위해 이역만리를 날아왔다는 사실이다. 자연스럽게 이 일기일회의 미식의 순간을 즐겨야겠다, 는 각오가 생김과 동시에 살짝 어색한 내 태도도 중화됨을 느낄 것이다.
“고독한 미식가” 놀이를 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약간의 역할극을 가미하는 것이다. 아무리 평범한 음식일지언정 맛과 식당의 분위기를 마음껏 음미하며 천천히 곱씹다 보면 신분을 숨기고 다니는 미슐랭 평가원이 된 것 마냥, 자뭇 비장한 의무감마저 든다. 그런 평범한 순간들이 모여 소박한 나만의 미식 여행이 완성되곤 한다.
약간의 용기와 역할 놀이가 양념처럼 들어간 여행자의 혼밥 체험은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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