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가 너무해

정원에 사는 고슴도치가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왔다

by Sunyoung Choi

“아침에 갈색 쓰레기통 안을 들여다보는데, 글쎄 고슴도치가 들어있는 게 아니겠어.”

“고슴도치?”

“그동안 낙엽에 덮여있던 정원 구석을 삽으로 푹 퍼서 버렸는데, 세상에 그 안에 고슴도치가 들어있었나 봐.”


조용한 아침을 뒤흔들어놓은 고슴도치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오랫동안 비닐로 덮여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던 정원 한 구석. 강아지가 그곳을 향해 오동통한 꼬리를 흔들며 맹렬히 짖기 시작했다. 회갈색의 털이 매력인 요 녀석은, 나뭇가지와 풀을 몰래 뜯어먹길 간식보다 좋아하는 1살 배기 케언테리어다.


수북한 낙엽과 나뭇가지를 보고 신명 나게 짖는다고 착각해 그대로 삽으로 들어내어 브라운 빈(정원 쓰레기를 주로 버리는 통)에 넣어버린 게 화근이다. 원인은 풀숲에 납작 엎드려있던 고슴도치였다. 과연 소동물 잡는 용맹한 사냥견, 케언테리어의 후손답다. 그리하여 이 가엾은 고슴도치는 그대로 쏙, 깊숙한 쓰레기통 안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뾰족한 가시 때문에 잡아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를 어째!


부리나케 뒷마당에 놓인 브라운 빈으로 달려 나갔다.


“저거 봐. 고슴도치야.”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작은 밤송이 같은 덩어리를 멀찌감치에서 가리킨다. 깊은 쓰레기통 안에 과연 조그마한 무언가가 웅크리고 누워있는 모양새다. 야행성으로 밤에만 움직이는 그들이기에 태평하게 쿨쿨 잠든 것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인터넷에 "고슴도치"를 검색해본다. 말간 얼굴이 꼭 아기 같다. 꼭꼭 얼굴을 숨긴 채 가시 돋친 모습을 하고 둥글게 몸을 말고 있는 터라 그 귀여운 얼굴을 볼 수 없는 게 조금은 아쉬웠다.


영국 소도시 생활에서 이런 야생동물들은 일상이다. 그 귀여움이 하늘을 뚫을 지경인 자그마한 붉은여우부터 우아한 사슴, 마당에 구멍을 파놓는 토끼, 오소리까지. 예전 코로나 봉쇄령(lockdown) 때는 웨일즈 지방의 대표적 휴양지 클란디드노(Llandudno, 영어로는 란디드노)의 산골짜기에 서식하던 산양 떼들이 우르르 마을로 뛰쳐나와 화단의 꽃과 풀을 뜯어먹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제 세상인양 당당하게 온 마을을 점령한 산양들을 집 창문 너머로 촬영해 우리에게 보여주던 지인은 연신 헛웃음을 지었다.


잉글랜드 지역의 한적한 길가를 드라이브하고 있다 보면 작은 동물들이 좁은 도로 저 편으로 꽁지가 빠져라 가로질러 가는 모습도 흔하다. 지난 세기 동안 조금씩 스러져 가는 야생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콘월 지방의 오소리에게 백신을 놓고 서식지를 잃은 붉은 다람쥐를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 다시 들이는 등, 영국에선 정부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날 아침의 고슴도치 소동은 브라운 빈을 비스듬히 바닥에 뉘어놓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살인적으로 내리쬐는 한낮의 햇볕에 탈진하지 않도록 브라운 빈을 그늘에 두고 마실 물도 한가득 뿌려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 밤중 고슴도치의 탈출을 기원하며 말이다. 다행히도 녀석은 무사히 빠져나왔는지, 다음 날 브라운 빈에서 보이지 않았다. 정원의 쓰레기통에 빠져버린 고슴도치. 어디선가 한가롭게 나무 열매를 따 먹으며 자신의 무용담을 동료들에게 펼쳐놓진 않을까? 앞으로도 인간들과 무사히 공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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