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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스트의 쇼핑법

미니멀리스트 여행자가 추천하는 여행 기념품 리스트

by Sunyoung Choi

"이 컵 받침도 귀엽고, 저 가방도 예쁘고..."


늦은 여름, 영국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의 한 기념품 샵에서였다. 잔잔한 꽃무늬가 예쁜 가방과 고풍스러운 영국 전원주택이 프린트된 컵 받침 등, 온갖 근사한 물건으로 가득 찬 상점. 그리고 그 기념품을 보며 망설이기만 하는 나. 자가용을 타고 왔기에 부피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백팩형 미니멀리스트라는 것!


미니멀리스트가 웬 쇼핑을? 하는 분들에게 설명하자면, 미니멀리스트에도 종류가 있다. 모험가 미니멀리스트라고도 불리는 "백팩형"은 방랑에 필요한 딱 최소한의 물건만을 가방에 지고 다니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나는 하나를 사더라도 퀄리티가 좋고 오래가는 물건을 선호하는 "고급형", "에코", "알뜰형" 미니멀리스트 성향도 갖고 있기에 뭔가를 사는 게 쉽지가 않다.


여행 다녀온 나라가 30여 개 국에 육박할 때쯤, 나에겐 고민이 생겼다. 바로 여행지 기념품이다. 지금껏 저렴하고 부피도 적은 맛에 모아 오던 마그넷. 이젠 냉장고에 붙일 공간마저 부족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나라를 옮기는 이사 경험도 여러 번이라 자동 미니멀리스트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이 먼 곳까지 어렵게 와서 빈손으로 가자니, 추억이 없는 느낌이라 아쉽다. 어쩌면 좋을까?




당신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 있는가? 우선, 아래 항목에 몇 개나 해당하는지 한 번 체크해보도록 하자.


▷ 미니멀리스트이다.

▷ 여행을 좋아한다.

▷ 여행지의 설렘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 여행 마그넷이 차고 넘쳐, 냉장고를 하나 더 마련해야 할 판이다.

▷ 방 안에 쓸데없는 물건이 굴러다니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 무거운 걸 짊어지고 다니는 건 딱 질색이다.


이 항목에서 4개 이상을 체크했다면, 아래의 여행 기념품들을 추천한다.


첫 번째는 여행지의 그림엽서다. 사실 엽서만큼 역사가 오래된 여행 기념품도 없을 것이다. 엽서 수집가(Deltiologist)라는 단어도 따로 있을 정도다. 종이 한 장뿐이니 여행자의 가방에 넣기에 부담이 되지도 않는다. 내 방에는 손바닥만 한 사진 액자가 하나 있다. 여행지에서 모은 엽서들을 주기적으로 액자에 바꿔 넣으면, 그때의 기억이 다시 살아나곤 한다. 단순한 방에 포인트가 되는 건 덤이다.


왜 하필 그림엽서인가? 현지 예술가가 직접 디자인한 엽서들은 그 자체로 유니크하기 때문이다. 사진이 담지 못하는 독특한 시선을 담기도 한다. 마음에 드는 그림체로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엽서는, 그 자체로 나만의 작은 예술 작품을 소유하는 것과 같다. 얼마 안 되는 돈일지언정 낯선 도시의 무명 예술가를 후원한다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는 현지에서만 구할 수 있는 먹거리다. 방콕의 마켓에서 산 팟타이 DIY 키트, 피렌체에서 가져온 트러플 오일, 핀란드의 마트에서 잔뜩 쟁여온 살미아키(Salmiakki, 노르딕 국가에서 즐겨 먹는 짭짤한 리코리스로 만든 사탕) 초콜릿들. 한동안 나의 부엌에 머물면서 매일의 일상에서 여행을 추억하게 만들어줬던 음식들이다.


현지에서 꽂히는 음식이 있다면 배낭에 한 두 개 정도 챙겨 오는 것도 좋다. 반조리 상태의 음식을 요리하거나, 과자 봉지를 뜯었을 때 나는 낯선 향신료 냄새에서 내가 걸었던 그 도시를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 집안 어느 구석에 오래도록 먼지가 쌓여 방치될 위험도 없다.


앤티크 시장에서 산 작은 액세서리나 옷도 빠질 수 없다. 이국의 어느 이름 모를 장인이 손으로 직접 만든 장신구들. 에스토니아의 발틱 해에서 채취한 투명하고 신비로운 황색 호박으로 만든 새끼손톱만 한 펜던트와, 런던의 빈티지 시장에서 건진 페이즐리 스카프는 꺼내볼 때마다 설레는 마법의 아이템 중 하나다.


아껴서 자주 착용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기념품도 없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언제든 걸치거나,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 사용할 수 있어 실용적이다. 이왕이면 재미로 한 번 사고 버리는 일회용보다,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질 좋은 제품으로 고르기를 추천한다.


미니멀리스트와 쇼핑, 언뜻 봐서는 어울리지 않는 낯선 조합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집중해보도록 하자. 심플한 미니멀리스트의 삶과 여행지의 추억을 담은 감성적인 물건들과의 균형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sunyoung_choi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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