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로이 Mar 15. 2017

#10. 그 자체로 작품이었던 런던의 기차역

기차역에서 할 수 있는 건 기다림만은 아닐 거야 - 기차역이 던져준 질문

런던의 세인트 판 크라스 인터내셔널 역은 킹스크로스 역과 나란히 위치하며,

두 역간 환승은 물론 6개의 튜브 라인이 교차하는 매우 복잡하면서도 바쁜 역 구간이다.

  

영국 런던과 파리를 오가는 대중적인 교통수단인 유로스타 탑승은 물론 인근 유럽의 나라에도 쉽게 오갈 수 있는 인터내셔널 역으로 언제나 많은 인파들로 복작거린다.



런던에 머물던 당시, 나 역시 벨기에로 향하는 기차 티켓을 예매하고서 티켓 수령을 위해 이 세인트 판 크라스 인터내셔널 역사를 찾았었다.   

런던에서의 체류 동안 늘 그랬듯 딱히 정해진 스케줄 없이 내 발길 닿는 대로 옮기던 삿갓 쓴 방랑객의 입장 인터라 역사의 바깥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던 역사. 고딕 양식인지 무엇인지 모를 건축양식의 멋들어진 벽돌색을 자랑하는 역사의 외관을 그냥 멍하니 바라보았다.   


계단을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쪽저쪽 캐리어를 움켜쥔 채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무리도 보이고 한가로이 신문을 펼쳐 들어 세상 돌아가는 소리를 눈길로 읽어 내려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왠지 나를 뺀 다른 세상은

모두 바빠 보이는 듯했다.     



한참을 주위를 둘러보며 서성이다 역사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터지던 나의 웃음.

한 삼십 초간은 그냥 환하게 웃어버렸다. 바보처럼 연신 웃음이 새어 나오던 것은 내 바로 눈 앞에 자리한  

거대한 커플의 애틋한 동상 때문이었다.   


사실 내가 처음 런던을 다녀온 후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유로스타를 타기 위해 찾았던 역에서 봤던 동상이라며 올려져 있던 사진 한 장을 보았었다.  



저 커플의 동상에 대한 정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던 나였지만, 아니 지금도 저 동상이 저기에 세워진 연유도,  

동상의 인물이 누구인 아직까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지 못한 것이 내가 갔던 곳 어딘가에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된 것에.. (게다가 무슨 이윤지는 몰라도 내가 놓쳤던 이 동상이 간접적으로 보고 말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꼭 보고 싶어 지는 것으로 다가왔기에)  무척이나 아쉬움이 크게 자리했었더랬다.


다음번에 런던에 또 가게 된다면, 저 동상을 꼭 보리라 다짐했었던 나였다.

런던에 체류하며 세인트 판 크라스 역을  찾았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음에도 '왜 나는 이 거대한 동상을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었을까'로 시작된 생각은 '내가 매일을 살며 무심코 지나쳐 온 것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것일까'라는 물음에까지 미쳤다. 한참을 동상 옆쪽에 앉아 바라보았다.


그렇게 늘 그곳에 자리했지만, 내게는 이렇게도 우연히 찾아온 저 커플.

동상 하나를 본 것뿐임에도 왜 그렇게도 기뻤던 것인지.


박물관에 고이 모셔져 있는 로댕의 조각이 아닌 입장료도 필요 없는 기차역 내부, 작자미상의 동상에게

내 온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실물을 직접 보기 전에 내가 예상했던 크기의 열 배 이상은 족히 될 만한 저 동상은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단상 위 커플의 발끝에 겨우 미칠 정도로 컸고 그 존재감 역시 거대했다.  



애달픈 포옹과 키스, 남녀 간 찰나의 그 순간.

저 두 남녀는 지금 막 만난 걸까, 아니면 이제 막 헤어지려는 걸까.

재회와 이별의 순간, 그 어딘지 모를 경계에 서있는 듯한 커플.


커플 옆, 아래에서 또다시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역사 내부는 출발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도착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하루에도 수천 명, 수만 명의 재회와 이별이 이루어지는 공간. 나 역시 까치발을 들고 그 앞에 서 보아도 저 커플의 발끝 언저리에 겨우 미치는 키 인지라 두 남녀의 표정을 더욱 자세히 읽을 수는 없었지만 세인트 판 크라스 역사는

만나는 기쁨과 헤어지는 아쉬움으로 가득 차 고 기차는 달려간다.


오늘도 누군가의 여정과 사랑을 가득 싣고서.


동상의 유래에 대해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잘 모르지만
저 거대한 커플은 박물관도, 다른 역사도 아닌,
유럽과 런던을 잇는 세인트 판 크라스 인터내셔널 역사에 세워졌어야 했나 보다.
재회와 이별의 현장에서 기다림과 그리움을 꼭, 품고서.
가끔은
우연을 타고 들어오는 인생의 즐거움과 깨달음도 함께 주려고 말이다.




#한때는_놓쳐버린_모든순간들과의만남

#그렇게우연을타고_내게들어오는_소소하지만_소중한순간들

#언제나_경험이란지혜는_일상의군데군데_녹아들어

#나에게_예기치못한_기쁨과_소소한깨달음을_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9. 들꽃이 기특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