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깃든 모든 것은 말로 할 수 없는 매력이 있지
런던에서 밤 11시에 버스에 올라 꼬박 여덟 시간 사십 분의 뒤척임 뒤에 도착했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5일 여간의 여정 중 이동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고자 택한 심야버스는 내게 쑤시는 허리 통증과 노곤함을 안겨주었지만 자유와 독립의 요새,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 발을 내디딘 순간 피곤의 중얼거림은 사라져 버렸다. 내가 메인으로 알고 느꼈던 영국의 잉글랜드, 런던과는 무언가 모르게 이 곳의 공기는 사뭇 달랐다. 고요한 듯하면서도 활력이 넘치던 공기는 내게 뜻밖의 쾌청함을 안겨주었고, 심야버스에 지쳤던 나의 피로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듯했다.
에든버러에 도착해 꼭 경험해 보고 싶었던 나의 wish list 영순위는 카페 'the elephant house'에 가는 것이었다. 유명한 에든버러 성이나 자유로운 예술인 들의 축제인 프린지 페스티벌 보다도 내겐 J.K.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의 첫 집필을 시작했다는 에든버러의 카페가 더욱 흥미로운 장소였다.
에든버러 도착 이틀째 바로 달려갔던 카페 '디 엘리펀트 하우스'.
ⓒ클로이의 순간포착 - 에든버러의 로열 마일 (Royal mile)에서 조지 스트리트 (George Ⅳ Bridge St.)를 향해 거닐다 21번지에 다다랐을 때, 빨간색의 카페와 카페 앞 입장을 기다리는 한 무더기의 여행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곳. Cafe 'the elephant house'
소문난 일담이 있는 곳은 언제나 구경꾼들로 복작거리듯 커피 한 잔 마시러 카페 안에 들어가기까지에는 삼십 분간의 기다림이 필요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그 정기를 한 모금이라도 섭취할 수 있을까 기다리던 나의 마음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기다리는 초등학생 마냥 말도 안 되게 두근거렸다.
ⓒ클로이의 순간포착 - 기다림 끝에 들어선 카페 내부, 창 밖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에든버러의 성곽 어깨 크트 머리
카페 창 밖의 에든버러 성을 바라보며 초고의 처음을 썼다는 조앤 롤링. 그녀는 이 곳에서 무엇을 느꼈던 걸까 이내 곧 그녀가 앉았던 자리를 찾아 내 수첩을 펼쳐 들어 몇 줄의 글과 감상을 적어보았다.
흥분 속에서 혼자 상상력을 발휘하며 나만의 감상을 적어 내려가다 고개를 들어보니, 각자의 노트와 노트북을 펼쳐 들고 무언가의 주제로 글을 쓰는 사람들과 여행객들로 메워진 카페 곳곳에는 J.K. 조앤 롤링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the elephant house'는 해리포터의 탄생지라는 타이틀 아래, 세계 각지의 작가 지망생들과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카페 안에서 발견한 조앤 롤링의 흔적 중에서 내가 정작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장소는 카페의 화장실이었다.
온갖 낙서들로 가득했던 화장실 벽은 우리나라의 여느 화장실과 비슷한 첫인상을 주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 곳의 벽은 해리포터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벽 그 자체가 해리포터와 조앤 롤링을 향한 하나의 거대한 러브레터였다.
'Thanks for my Childhood', 'Thanks for everything', 'I love H.P'.
누군가의 손 끝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전 세계에 걸쳐 읽히고, 소년부터 노년까지 세대를 아울러 누군가에게는 꿈과 희망의 판타지가 된다는 것. 이 카페의 벽을 보고 있자니, 부러움과 함께 경이로움까지 느껴졌다. 사실 나는 해리포터의 열렬한 팬도 아니고 어디에서든 자신 있게 작가 지망생이라 소개하기도 애매한 사람이었다. 글쓰기에 대한 애정을 지닌 사람으로서 전 세계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글을 쓴 곳이라는 이야기에 끌려 이곳에 왔는데 막상 이곳에서 이 벽을 마주하고 있으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클로이의 순간포착 - 해리포터의 탄생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며 내게 손짓하던 카페의 리플릿, 이 카페의 유래를 짤막히 들려주는 리플릿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도시별 마그네틱과 리플릿, 여행지 입장권 등은 내게 버려지는 것이 아닌 간직해야 할 애장품이 되었는데 이 카페의 리플릿은 아직도 나만의 여행 앨범 한 페이지를 고이 장식하고 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모든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내게는 전부 다 기념품으로 승화되었지만, 이 카페의 리플릿은 내가 에든버러 성곽을 바라보며 느꼈던 그 순간의 감동, '나도 언젠가는 나의 글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을 거야' 꿈꾸었던 그 순간을 간직하게 해 주는 것만 같아 내게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소중함이 되었다.
비틀스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포스터로 유명해진 런던의 Abby road를 가 보면 다른 곳과 별반 다르지 않은 횡단보도와 카페 하나만 있을 뿐 요란한 그 어떤 것도 없다. 그럼에도 비틀스를 추억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Abby road를 찾아 흥분하며 카메라를 꺼내 든다. 세계 각지의 작가 지망생과 여행객들이 이 곳, the elephant house의 스토리를 찾는 것처럼.
길거리도, 심지어 전단지 한 장에도 누군가의 이야기가 더해질 때, 우리는 새로운 가치를 만나게 되고 모든 가치가 깃든 것들에 매혹당한다. 이야기에서 전해져 오는 감동과 매력은 세월이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고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조앤 롤링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 적어 내려가던 나의 메모의 마지막 '길을 스쳐가는 무수한 눈빛 둘 중 한 명의 가슴에서라도 나의 이야기가 실낱같은 빛과 위안이 되는 날이 온다면..' 이라는 문장과 함께, 나의 글이 아닌 일상 속 이야기 역시 조금 더 매력 있는 선율들로 채워나가기를 기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