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그 자체로 예술인 작품, 그 작품의 이름이 내게 말을 걸었어
나는 전시회장을 찾을 때면 보통 일차적으로 작품을 멀리서 감상한 후에 작품 가까이 가서 좌, 우에 달려있는 작품명과 간단한 해설을 확인하곤 한다. 먼저 작품의 분위기를 느끼고 혼자서 작품명을 맞춰보는 일종의 추리 퀴즈를 푸는 식이다.
매번 도슨트나 음성 해설과 함께 들으며 감상한다면야 좋겠지만 특히나 유럽에서는 크고 작은 미술관이 많은 탓에 그저 관람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나만의 방식으로 상상하고 해석해 나가다 보면 한번쯤은 작가의 의도를 눈곱만큼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과 함께 추리하기를 즐겨했다.
내게 작품의 작품명은 일종의 정답지이자, 헤아릴 길 없는 언어의 통역관이 되어 주었다.
아직 미술을 바라보는 깊이가 얕아서였을까, 때로는 작품 그대로 보다 작품명 그 자체가 내게 더 큰 감동을 주곤 했다. 그중에서도 내 입에서 감탄사를 연발하게끔 했던 작품의 이름이 바로 런던의 사치갤러리에서 만난 '베토벤의 트럼펫'이다.
사치 갤러리(Saatchi Gallery)는 현대미술 컬렉터 찰스 사치가 영국에서 소개되지 않았던 다양한 나라의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발표하는 현대 미술 갤러리로 전시 테마도 트렌디하고 모던했다.
ⓒ클로이의 순간포착 - 런던의 사치갤러리에서 만난 작품, Beethoven's Trumpet (With Ear) Opus
#133, John Baldessari
이 감각적인 갤러리에서 만난 너무나 근사했던 작품, 베토벤의 트럼펫이라는 이름을 확인하고서 혼자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한낱 기호에 불과한 까만 음표들을 '음악'으로 탄생시키는데 귀가 점점 멀어갔던 작곡가는 어느 정도의 청각과 얼만한 크기의 상상력이 필요했던 걸까. 아니, 그는 청각과 상상력이 아니라 아마도 자신이 가진 다른 능력을 열어 작곡을 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참을 이 작품 앞에 서 있었다.
내가 유럽을 떠돌아다니며 찾았던 무수한 미술관의 넘쳐나는 양의 작품들 중에서 만난 '베토벤의 트럼펫'. 그 근사한 이름은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고 또 하나의 생각을 선물해 주었다. 나는 갤러리에서 돌아와 스케치북을 펼치고 물감을 들었다.
ⓒ클로이의 순간포착 - 스케치북에 수채로 담은 '이 세상의 트럼펫'
저 트럼펫은 비단 베토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트럼펫이라고.
세상을 향해 귀를 연다는 것은 더 넓게 보는 것이고, 더 넓게 보고 많이 듣는다는 것은 결국 마음을 연다는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