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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llmoon Mar 18. 2022

조금 더 참을 걸 그랬어

엄마는 후회한다

#소란하고 

#소란한 

#아침 


01 

기분이 바닥인 아침이다. 참고 참다가 결국 아이에게 으르렁거렸다.

 

으르렁의 직접적 원인은 둘.

하나는 9시부터 줌 수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8시 30분이 되도록 침대에서 뒹굴 거린 것.

다른 하나는, 설상가상 줌 수업에 필요한 수학 익힘 교과서를 어제 학교에 빼놓고 온 것. 


"수업 끝나고 엄마랑 이야기 해. 엄마가 무슨 이야기 할지는 너도 이미 거야."

교과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이가 SOS를 청한 순간, 첫 번째 으르렁은 기다렸다는 듯 내 입 밖으로 터져 나가고 있었다.


'참자, 참아. 아침이니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수업이라도 기분 좋게 하게 해야지'

작정했던 마음은 교과서를 챙기고 줌 수업 링크를 찾느라 부산한 아이를 지켜보며 점점 희미해져 갔다.


'도대체 왜?'

'왜왜왜 미리 준비하지 않은 거니. 도대체 왜, 굳이 8시 30분이 넘어서야 일어난 거냐고!!!'

오랜만에 하는 줌 수업에 링크 연결이 쉽지 않은지 아이가 다시 도움을 청했다. 컴퓨터로 다가가 줌 수업 화면을 띄우려고 이리저리 컴퓨터를 조작하다 보니 모니터 우측 하단에 표시된 시간이 보였다. 당시 시각 8시 52분. 두 번째 으르렁이 발사되었다.


"52분?! 지금 52분이니? 50분까지 입장해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도대체.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야. 학생이... 공부를 할 자세가!!!"


출근하는 남편을 주차장까지 따라가며 하소연했다. 

"쟤는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학생이 공부할 기본자세가 안 되어 있잖아"

"뭐가 문제지? 내가 뭘 잘못한 거지?"


02 

남편에게 한바탕 하소연을 하고나서도 씩씩거리는 마음의 요동을 쉬 진정시킬 수 없었다.

불현듯 루디야스 키플링의 시 한 구절이 뱅뱅 머릿속을 맴돌았다. 형체만 어렴풋할 뿐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아, 후다닥 책장으로 달려가 급하게 해당 시집을 찾았다. 얼마 전 책장 정리를 마친 터라 찾고자 하는 시집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다행. 그렇지 않았더라면 또 얼마나 마음이 씩씩 거렸을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간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60초로 대신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너의 것이며 

너는 비로소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아침이었다. 조금 더 참았다가 아이가 수업을 마친 후, 침착하게 으르렁 거려도 충분했다. 결국 홀로 아침을 먹으며 가라앉지 않는 마음 때문에 씩씩 대는 근원은 참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었다. 


나는 1분을 60초로 대신하는 어른이고 싶었는데... 또다시 그러지 못했으니. 스스로의 한심함에 대한 으르렁이 아이에게로 분출되었던 거다.


03

"도대체 쟤(아이)는 왜 저럴까?"가 "도대체 나는 왜 이럴까?"로 정리되자 아침도 못 먹고 줌 수업을 하고 있는 아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녀석 배고플 텐데...' 

'지각하더라도 밥은 꼭 먹는 녀석인데...'


결국 나는 참기름에 김가루를 넣어 조물조물 꼬마 주먹밥을 만들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미역국과 주먹밥을 담은 쟁반을 들고 아이의 방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언제나 쉬는 시간이 될까?' 기다렸다.


'따끈한 국을 좋아하는데.... 이러다 미역국 다 식는데...'

결국 다시 주방으로 가 식어버린 미역국을 팔팔 끓여 보온병에 담았다. 문득 친정엄마 생각이 났다. 괜히 엄마에게 골 부렸던 지난날의 나도 함께 떠올랐다. 


바닥이었던 마음이 조금씩 퐁퐁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이의 수업은 쉬는 시간 없이 계속되고, 방문 너머 수업을 흘려들으며 나는 '점심엔 오징어 실채 볶음을 할까? 좋아하겠지?' 음식으로 아이와 화해할 궁리를 했다.  


이렇게 소란한 아침이 또 하루 지나가네.

이렇게 나도 조금 더 어른스러워지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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