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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의 Sep 18. 2020

브런치 괜히 시작했다 싶을 때

#초보. 인정받고 싶은 마음 전에, 배우려는 마음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에 진심이 되어갈수록, 나는 점점 더 불안해진다.


종종 나는 내 글에 대한 판단권을 오로지 브런치 편집자분들께 맡겨버린 것 같은 마음이 된다. 며칠을 고민해서 쓴 글에 발행 버튼을 누르고 나면, 그때부터 초조함은 시작된다. 나는 한 시간마다 브런치 앱을 실행해 통계를 확인한다. 조회수가 급증하지 않는다면, 아 이번에도 실패했구나 라는 생각을 좀처럼 지울 수 없다.


나는 나 자신을 지금보다 더 믿는 연습을 해야 한다.


반대로 지나치게 들뜨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어쩌다 나의 글이 다음 메인이나 카카오페이지에라도 소개되는 날이면, 그날 나는 다른 일에는 도통 집중을 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조회수에만 집착하게 된다.


나는 마음을 덜어내는 연습도 부지런히 해야 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전에 나는 에세이를 많이 읽지 않았다. 같은 시간이면 좋은 소설이나 고전, 인문학 또는 자연과학의 양서를 읽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땅바닥에 발 디딛고 있는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들보다 세계를 한 차원 더 넓혀주고 교양을 확장해주는 책을 선호했다. 그러나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후 나는 계속 서점 내 에세이 코너를 맴돌게 된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이고 어떤 글이 나쁜 글인지 몰라 헤맬 때, 그 나침반을 오로지 브런치 인기글 선정 여부로만 삼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는 것뿐이다. 좋은 작가들의 에세이를 읽고 나면, 나는 화려한 수식만이 정답이 아님을, 쉽게 편안하게 쓰인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멋진 일인지를 실감한다.


그러나 정말 좋은 에세이들은 자주 나를 작아지게 만든다.  


나는 이랑 작가의 『좋아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를 읽고 잔뜩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상금을 주지 않는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수상을 한 직후, 시상대에 올라 트로피를 경매에 부쳤고 그 자리에서 친구에게 50만 원에 팔았다. 이랑 작가의 글에는 그녀의 깡과 쿨함이 느껴져서 멋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왔다. 나에게는 그런 배포가 없다. 작가의 성격은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나는 김하나 작가의 『말하기를 말하기』도 읽었다. 어릴 적에 남들 앞에서 말하기를 부끄러워했다는 내성적인 아이는 어느새 말로도 글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성인이 되었다. 그녀는 말하기에 대한 에세이를 쓰기에 어느 누구보다도 충분한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나는 부끄럽지 않을 만한 글을 쓸 수 있는 나만의 전문 영역을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고수리 작가의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의 따뜻함 앞에서도 나는 작아졌다. 작가의 유년 시절, 어려운 환경에서도 어린 나이에 가족을 챙기는 마음이 너무도 단단하고 아름다워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참 평탄하고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는데, 서른 살이 넘어서도 아직 엄마 아빠에게 매일 불효하는 것 같다. 가족에 대해 글을 쓰게 된다면, 솔직해지는만큼 미안해질 것 같다.


나는 대체 무엇에 대해 글을 쓰면 좋을까. 나의 생각은 무르익지 않았다. 나는 어설프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싶다. 적어도 이 마음만은 확고하다.




브런치를 시작하기 한 참 전, 나의 개인 블로그에 비밀리에 기록했던 글을 꺼내어본다.


7년 전의 나는 책을 읽다가 아래의 문장을 발췌해 두었다.

2013. 2. 3일

"나는 연구와 글쓰기 작업에 대해 빌이 내게 준 조언을 내 글쓰기의 원칙으로 삼고, 내 학생들에게도 요구하고 있다. 말콤이 옥스퍼드에서 말한 것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즉, 과하게 높은 기대를 품지 말고 규칙적으로 글을 쓸 것. 주제에 대해 다 알지 못하더라도 글을 쓰기 시작할 것. 확신이 서지 않는 단어라도 일단 써 보고, 내용에 대해 더 알게 되면 완전히 다시 쓸 것. 쓰고, 연구하고, 읽고 다시 쓸 것. 이 과정을 반복할 것.

글쓰기는 배움의 한 방법이지 학습을 마친 마지막 단계에 하는 것이 아니었다.

글을 쓰겠다는 시도는 감히 모든 것을 안다는 주장이 아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한 번에 조금씩 배운다는 불완전한 과정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

- p173,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석지영 / 북하우스 출판사


그 아래 나는 나의 생각을 이렇게 덧붙였었다.


생각의 폭이 아직 좁고 얕은 것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생각하는 법, 생각을 정리하는 법, 그리고 글 쓰는 법을 연습하기 위해서라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7년 전에 나는 글쓰기 초보였다. 2020년의 나는 여전히 글쓰기 초보다. 어쩌면 앞으로도 나는 한 동안 초보로 머무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그때도 나는 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초보일 것이다.


새벽 두시 반이 가까워지는 시간에 나는 위의 글을 올렸었다.




브런치를 괜히 시작했다 싶을 때, 내가 쓴 내 글에 자신감을 잃어갈 때, 나는 그동안 내가 써 온 글을 하나씩 다시 읽으며 한 번 더 아껴줄 것이다.


글로 인정받으려는 마음보다 글로 배우려는 마음이 먼저다.


계속 연습해야지. 내가 나 자신을 지금보다 더 믿는 연습, 그리고 마음을 덜어내는 연습을. 어차피 우리는 누구나 한두 구석에서는 어설픈 존재들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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