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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의 Sep 21. 2020

플랭크와 웨이트를 하는 한 대법관의 죽음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1933년 ~ 2020년)


1999년부터 나를 봐준 개인 트레이너가 있다.
(운동 일정은) 한 시간이다. 첫 파트에 팔굽혀펴기와 플랭크라는 걸 하고 다양한 웨이트 기구를 들어올린다. <뉴스아워>를 시청할 수 있게 7시에서 8시 사이에... 이렇게 트레이닝을 한다.

- 2017년 2월 1일, 버지니아군사대학교
『긴즈버그의 말 - 헬레나 헌트 엮음, 마음산책 출판사』


평생을 소수자와 여성을 위해 헌신해온 법률가가 생전에 한 수많은 의미 있는 말들 중에서 고작 플랭크와 팔굽혀펴기 "따위"를 가져왔다는 건 고인께 실례가 되는 일일까? 그러나 어쩔 수가 없이 나는 이런 이야기에 강하게 마음이 끌린다. 아니, 무릎이라도 꿇고 온 몸으로 존경을 표하고 싶어진다.


유대인이자 여성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며, 미국의 두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이었던 그녀의 키는 겨우 150cm을 조금 넘었다. 개인 트레이너와 운동을 시작한 1999년에 그녀는 만 66세였고, 버지니아군사대학교에서 스피치를 할 때 그녀는 만 84세였다.


만 84의 나이에 뉴스를 보기 전에 꼬박 한 시간 동안 팔굽혀펴기와 플랭크, 웨이트를 하던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Ruth Bader Ginsburg)가 지난 금요일, 2020년 9월 18일,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남녀가 어깨를 맞댄 채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믿는다. ... 남성을 더 우월한 성으로 생각하지 않듯이 여성 또한 더 우월한 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각계각층에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 과거처럼 닫힌 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 2010년 7월 8일, 아스펜 연구소 아이디어 페스티벌
『긴즈버그의 말 - 헬레나 헌트 엮음, 마음산책 출판사』


긴즈버그의 말들을 엮어 책으로 출판한 헬레나 헌트는 서문에 상당히 아이러니한 문장으로 긴즈버그 대법관을 묘사한다.


"대법원에서 진보적인 성향으로 통하는 긴즈버그 대법관은 법 앞에서 만인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헌법 해석을 부단히 요구한다."


법 앞에서 만인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헌법 해석을 요구하는 것이 '진보적인 성향'으로 통했다는 말은 긴즈버그의 생에 그녀가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지 않음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목격했다는 걸 증명한다.


때로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자, 이제 여성 대법관이 세 명입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에 여성 대법관이 몇 명 있어야 충분하다고 보십니까? 그러면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홉 명이 될 때라고.

이 발언 뒤에 긴즈버거는 '이렇게 대답하면 사람들이 의아해하지만, 대법원이 대법관 9인 체제가 된 이후로 오랫동안 대법관 아홉 명이 모두 남성이었다. 여성 대법관이 아홉 명이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라고 덧붙인다.

- 2016년 9월 7일, 조지타운대학교 법률센터
『긴즈버그의 말 - 헬레나 헌트 엮음, 마음산책 출판사』


'여성의 권리'보다는 '인간의 권리'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말한 사람. 그러나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긴즈버그는 더 약한 쪽을 끌어올리기 위해 평생을 힘 썼다. 인간이 성적 취향, 젠더를 포함한 그 모든 타고난 특성에 근거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그녀는 꿈꿨다. 여성과 소수자의 권익에 몸 바쳐 일하기 위해서, 그녀는 오래 동안 꾸준히 플랭크와 웨이트를 하며 자기 관리를 했을 것이다.



나는 무엇에 대해서든 늘 너무 늦게 관심을 가진다. 그 동안 긴즈버그 대법관의 이름만 여러 번 들어봤을 뿐, 한 번도 그녀가 어떤 사람이지 궁금해한 적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지난주 그녀가 별세한 후, 주말 내내 내가 팔로우하는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서 그녀를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제서야 그녀가 생전에 남긴 말들을 찾아보았으니, 비록 늦었다해도 그만큼 더 오래 기억해보기로 한다.


그녀에 대해서는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2018)와 다큐멘터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 (2020)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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