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의 Jan 01. 2021

아무리 새해라도 4시 반 기상은 어려워요

올해도 내 몸이 편한 게 최우선

아니, 네 시반이 다 뭐야. 아침 일곱 시 기상도 나에겐 어렵다. 오늘도 나는 여지없이 여덟 시에 일어났다. 분명 핸드폰 알람은 여섯 시에 한 번, 일곱 시에 한 번 울렸을 것이나 기억은 나지 않았다.


요즘 들어 새벽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는 사람들이 주위에 유난히 많이 보인다. 혹시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목격했던, 매일 네 시 반에 일어난다는 어느 미국 변호사가 쓴 책의 영향일까? 아니면 2020년 한 해를 정리하던 중에 아, 올해는 글렀구나, 다 가기 전에 좋은 습관이나 하나 만들어보자 하는 심리의 발현이었을까? 어쩌면, 이 사람들은 트렌드 같은 거 상관없이 원래 부지런한 사람들이었는데 최근에 내가 이 문제(=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면 좋을까)에 관심이 생긴 탓에 유독 눈에 들어오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 자신이 조금 웃기다. 안 될걸 알면서 계속 덤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2003년에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이 출간되며 화제가 되었는데, 그 후로 나는 장장 17년 동안 아침형 인간이 되어보자 숱하게 시도하고 숱하게 실패한 경력이 있다. 그중 계획한 시간에 아예 일어나지도 못한 경우는 적다. 그보다는 밤에 정신이 맑을 때 억지로 침대에 몸을 뉘어 양을 여러 마리 센 이후에야 겨우 잠에 들고, 그다음 날 힘겹게 일어나 세수하고 책상 위에 앉았다가, 정신줄은 반쯤 놓은 채로 꾸벅꾸벅 졸며 버티는 날이 많았다. 


그 지난한 과정 동안 아마도 과학계와 자기계발계(?)와 각종 미디어에서는 꼭 아침형 인간만이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며 사실 사람들에게는 각자에게 맞는 바이오리듬 같은 게 있어서 기상 시간도 다 알아서 잘 정하면 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매일 밤 열 시에 잠들고 새벽 네시 반에 꼬박꼬박 일어나는 사람이 매일 새벽 두 시에 잠들고 아침 열 시에 일어나는 사람보다 더 시간을 알차게 보낸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십여 년에 걸친 실험 결과, 나는 분명 <밤 형 인간>인 것으로 증명되었다. 


그걸 다 - 알면서, 나는 왜 또 서점 베스트셀러에서 '4시 반'이 들어간 책 제목을 보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을까, 어째서 또 "아, 새해엔 나도 다시 한번 시도해볼까?"라는 헛된 생각을 떠올렸을까. 



자, 이건 새해의 첫 번째 자기 합리화의 결과다 : 내 몸이 익숙한 사이클을 무시하고 계속 새벽형 인간의 유혹에 빠져드는 건, 결국 나의 하루를 어떻게든 더 알차게 쓰고 싶어 하는 삶의 의지가 내 안에 있다는 뜻이다. 밀린 일기도 챙겨서 쓰고 싶고, 책도 부지런히 읽고 싶고, 글도 꾸준히 쓰고 싶고, 원하는 공부를 지금보다 더 하고 싶다는 대견한 마음이 놀랍게도 내 안에 숨어서 꿈틀꿈틀 대고 있다는 말이다!


이 녀석, 꼭 새벽 네시 반이 아니어도 되잖니. 그냥 내가 깨어 있을 때나 잘 활동하라고. 내일부터는 새벽 네 시 반 기상, 아니 새벽 여섯 기상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내 몸이 익숙한 아침 여덟 시에 일어나 밤 열 두시 반에 잠드는 사이클 안에서 어떻게든 하고 싶은 일들을 꾸겨 넣을 거다. 사실 유튜브 조금만 덜 보면 다 해결되는 일이다. 내 몸이 편한 게 제일 우선. 올 한 해도 후회 없이 건강하자.

작가의 이전글 자기만의 방을 위해 남편에게 거실을 내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