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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의 Apr 19. 2020

국어사전은 모르는 단어 찾을 때만 쓰나요?

오은 시인의 산문집 <다독임>을 읽고



얼마 전에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나온 장면이 있는데, 연예인 한 명이 "몽당연필"이라는 단어를 보고 자신은 평생 "몽땅연필"인 줄 알았다며 그간 살아온 삶이 "몽땅" 부정당한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사실 나는 이 방송을 직접 본 건 아니고, 어느 커뮤니티에서 그 장면을 이미지로 편집해서 올린 글을 봤던 것인데, 글의 댓글에는 '몽땅연필이 아니라고요?' '저도 몽땅연필인 줄 알았는데요!'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표준어는 몽당연필(뜻 : 많이 깎아 써서 길이가 아주 짧아진 연필)이고 몽땅연필은 경북 연일 지방의 사투리라고 한다. 몽땅과 몽당, 몽당과 몽땅, 평생 몽당연필이라고 제대로 알고 살아온 나조차 이 두 단어를 번갈아 보고 있자면 헷갈리기 시작한다.


단어를 한 번 잘못 사용했다가 두고두고 농담거리가 되기도 한다. 시초가 누구였는지는 모르지만 '감기 어서 낳으세요'라는 말로 엉뚱한 출산의 축복을 빌어준 사람은 아직까지도 여러 맞춤법 책들에서 대표적인 맞춤법 오류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사실 맞춤법 오류 사례들을 찾아보면 예상을 뛰어넘는 기가 막힌 사례들이 많아 유머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에게 일해라 절해라 하지 마라', '골이따분한 성격', '알레르기성 B염', '김을파손', '어디 김씨에요? 김에 김씨에요', '사생활 치매', '권투를 빈다', '갑작이 왜그래?', '힘들면 시험시험해', '장례희망', '수박 겁탈기', '곱셈추위'.... 심지어 어느 유머 자료에서는 이런 카톡 대화 캡쳐 화면도 목격할 수 있었다.

A : 진짜 갈 거야?
B : 마마잃은중천공이라고... 가야지ㅋㅋ


도대체 마마잃은준천공은 어느 중국 사극에서 가져온 표현인가 했더니, '남아일언중천금'을 잘못 쓴 표현이었다.




그런데 누군가의 실언을 우습게만 여기기에는, 나도 그다지 당당하지는 않다.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하는 데 있어 나도 밥 먹듯이 단어를 대충 쓰고는 한다. 가장 빈번하게 잘못 쓰는 건 '쌍시옷을 시옷으로 쓰기'의 오류인데, "잘 갓어? 오늘 즐거웟어."라고 쓸 때가 종종 있다. 쌍시옷을 시옷으로 대체하는 건 그나마 머리로는 틀렸다는 걸 알면서 효율화를 추구한 결과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나는 "그거 이따가 갔다줘"라고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내가 잘못 썼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맞춤법에 예민한 친절한(^^) 남편이 '갔다줘가 아니라 갖다줘가 맞지...'라고 지적을 해주고 나서야 나는 나의 실수를 깨닫고 자괴감에 빠졌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사람이 책도 읽지 않는 남편한테 맞춤법으로 지다니(?)... 최근에는 의식적으로라도 맞춤법을 지켜서 카톡을 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그럼에도 자꾸 실수를 반복하기에 나 자신을 돌이켜 보니, 은근 십 년도 넘게 문자와 카톡으로 오타를 일삼으며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작년 말에는 10년 만에 트위터를 다시 시작했는데, 옛날 계정에 올렸던 피드들이 너무나도 낯부끄러워서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 당시에는 귀엽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은 맞춤법 파괴의 트윗들이 너무 많아 다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파괴의 현장에 띄어쓰기란 개념은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차장님계정 ; 아까전화드렷을때바쁘실고같아안부도제대롬여쭤보질못했어요!"

"모두안뇽히주무세요"

"흐르는데로살지는말아야지 어느순간나를돌아봣을때,하루하루지나다보니어느새여기까지왓더라,라고생각하게될까바두렵다"


아아아, 내 손발이여.




그러다 어느 날, 회사 업무 시간에 잠시 틈이 나서 최근 출간된 시집들을 검색해보다가 오은 시인을 알게 되었다. 그의 시집 『유에서 유』가 출간된 즈음이었으니까, 2016년이다. 그는

"단어를 사랑한다. 어렸을 때부터 국어사전을 매일 봤다.


"사전을 딱 펼쳐서 '아지랑이'처럼 발음을 했을 때 '말 맛'이 있는 단어를 그 날 하루 동안 꼭 써먹어 보려고 했다."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리고 그는 가장 좋아하는 단어로 '불현듯'을 꼽으며, 그 단어가 인생을 뒤흔들어버렸다고 말했다. "불현듯 시인이 되었고 불현듯 사회학과에 갔고 불현듯 큰 사고를 당했고 불현듯 빅데이터 회사에 갔고 불현듯 사표를 던졌다. 평소의 나는 되게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그런데 큰 결정들은 불현듯 이루어졌고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결단력이 발휘되었다. '불현듯'의 어원이 또 뭔 줄 아나. '불켠듯'이다. 단어 뜻도 예뻐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단어다."


과연, 그는 단어들이 예뻐서 어쩔 줄 몰라 사랑하는 시인처럼 보였다. 그의 산문집 『다독임』에서도 그 사랑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가 관심을 기울이는 단어들은, 낯설고 어려워서 사전을 검색하게끔 하는 단어들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매일 수도 없이 사용하는 단어들이다. 이를테면, "안녕"과도 같은.


한국인의 인사인 '안녕'이라는 표현이 '아무 탈 없이 편안한 상태'라는 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안녕이라고 말하는 모든 순간에 그 단어의 의미를 생각하고 말하지는 않는다. 상대의 심기가 불편한 걸 뻔히 알면서, 눈빛이 휑하고 몸이 상태가 안 좋은걸 눈치를 챈 상태에서도 우리는 무심하게 안녕이라고 말을 건넨다. 오은 시인은 이런 일상적인 단어들을 주고받는 순간순간들을 포착하여 다정한 사유를 글로 담아낸다.


한 예로, 그는 "고향에는 언제 내려가"라는 질문을 받고 엉뚱한 생각을 한다. 서울이 고향이고 부산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왜 고향으로 올라간다고 말하지는 않는 걸까.


"내려간다는 말에 지방으로 가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간다는 뜻 이외에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간다는 뜻 또한 담겨 있어 약간 불편함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나도 모르게 좌천이나 귀양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고 하하 웃었던 적도 있다. 고향 가능 길에 '내려가다'는 말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았다.  시냇물이 어딘가로 졸졸 흘러 내려가는 모습이 맨 처음 떠올랐다. 내려가는 일은 미지의 곳에 가닿는 일, 종착에 도착할 때까지 시종 기대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때마침 휴게소에 도착해서 바람 좀 쐬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아빠와 아이가 핫도그를 베어 먹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 광경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내려가는 것은 뒷날로 전해지는 것, 아빠가 좋아하는 것을 아들이 좋아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이 전해지고 취향이 전해지고 사랑이 전해지는 것, 이 모든 전해짐에는 다름 아닌 내려감이 있었다. "





책을 읽고 나니 나도 국어사전을 검색해보고 싶어 졌다.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평범한 단어들을 검색창에 입력하기 전에, 속으로 나 혼자 먼저 의미를 고민해 보았다.


'고마워'는 국어사전에 뭐라고 나와 있을까? '책'은? '사랑'은? '오늘'은?


'가족'은 혼인이나 혈연관계만 포함하는 걸까? 우리는 반려견 반려묘도 가족이라고 부르고는 하는데 혹시 국어사전에는 인간 간의 관계만 포함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국어사전을 검색했고,

[가족 :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이라는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문장의 맨 앞에 '주로'라는 단어가 맨 앞에 언급된 덕분에, 우리는 꼭 혼인, 혈연, 입양이 아니더라도 가족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맙다'라는 말은 [남이 베풀어 준 호의나 도움 따위에 대하여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라고 나온다. 누군가 덕분에 내가 흐뭇하고 즐거워졌다는 말이다. 나를 즐겁게 해 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는 걸 아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독임』의 띠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뭉근한 다정함으로 위로할 줄 아는, 시인 오은의 '마음'을 끄덕이게 하는 이야기!' 도대체 뭉근함이란 어떤 의미일까? 기시감이 드는 단어인데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어서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뭉근하다 : 세지 않은 불기운이 끊이지 않고 꾸준하다].

내킨 김에 이미 알고 있는 단어들도 검색해 보았다.

[다정하다 : 정이 많다.]

[위로하다 :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다래주다.]

[마음 :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


뭉근하다, 라는 단어가 참 좋다. 끊이지 않고 꾸준하게 누군가의 마음을 뎁혀줄 수 있는 사람이 나도 되었으면 좋겠다. 단어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국어사전으로 한 번 더 의미를 찾아보니 뻔한 말들이 더 깊어지는 것도 다정해지는 것도 같다.


 



(오늘의 TMI : 오늘의 글을 다 쓰고 '맞춤법 검사'를 돌렸더니, 빨간 줄 투성이다. 특히 첫 문단과 두 번째 문단. 의도적으로 쓴 '몽땅연필'을 브런치가 일러주는 대로 '몽당연필'로 수정해 버렸다가 정신 차리고 복구해두었다. 그리고 놀라운 건, '마마잃은중천공'을 브런치가 딱 알아듣고 '남아일언중천금'이라고 자동 수정 제안해주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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