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사러 뉴몰든으로 - 영국생활 13

어묵 사러 런던으로

그 당시 바스에는 한인들이 많이 없어서 쌀을 구하려면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브리스톨 아시아 마트로 가야 했고, 멀게는 2시간 반이나 걸리는 런던까지 가야 했다.


바스 시내의 베트남 마트에 가면 길쭉길쭉한 동남아 쌀과 스시용 쌀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남아 쌀은 내가 밥을 해서 먹어본 적이 없어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몰랐고, 스시용 쌀은 가격이 꽤 비쌌다.


또 마트에는 500g 단위로 작게 포장된 ‘밀크 라이스(Milk Rice)’도 팔았다. 밀크 라이스는 리소토와 비슷하지만, 우유에 설탕과 쌀만 넣어 간단히 끓여 먹는 음식이다. 아주 투박하게 말하자면, 우유에 설탕을 넣고 밥을 말아 먹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다만 그 쌀은 우리나라 쌀과 달리 알갱이가 통통하고 찰기가 없어, 한국식 밥을 지었을 때와는 맛과 식감이 달랐다. 그래서인지 자주 손이 가지는 않았다.


브리스톨에 가서도 쌀을 살 수 있었지만, 굳이 런던으로 향한 데에는 사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쌀은 핑계였고, 런던을 구경하며 뉴몰든에 들러 짜장면을 먹고 싶었던 것이다.


아침 일찍 딸아이를 챙겨 함께 런던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멀리 스톤헨지(Stonehenge)가 보였다. 길은 특별할 것 없는 고속도로였지만, 쭉 이어지는 도로를 달려 약 세 시간 만에 런던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가장 큰 마트에 차를 세우고, 먼저 장을 보았다.


냉동식품 코너도 구경했지만, 한없이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떡, 어묵, 만두, 단무지, 쌀, 김처럼 평소에는 손쉽게 구하기 어려운 것들만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다. 거기에 딸이 좋아하는 바나나킥 과자도 빠지지 않았다.

정말 마트에는 없는 게 없었다. 다 사고 싶었지만, 한정된 주머니 사정 때문에 넉넉히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초코파이 같은 간식은 1년에 몇 번 오지 못하는 한국 마트에서 꼭 챙겨 사 와서 아껴 아껴 먹었다.


뉴몰든에 가면 떡집도, 짜장면 집도, 정육점도 있었다. 오랜만에 한국 음식과 사람들을 마주하면, 낯선 땅에서 굳어 있던 내 마음이 조금은 풀리고 한결 부드러워졌다.


바스도 영국이었지만, 이상하게 런던에 가면 ‘진짜 영국’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템즈 강을 따라 런던브릿지와 타워브리지를 구경하고, 빅벤과 화려한 건물들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런던은 갈 때마다 늘 관광객들로 붐볐고, 그 활기찬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마치 이 나라가 유학생과 관광객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런던을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어느 날은 가던 중 갑자기 타이어가 펑크 나서 갓길에 차를 세운 적도 있었다. 남편이 스페어 타이어로 갈아 끼우고는 조심조심 운전해 집으로 돌아왔던, 아찔하면서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영국은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보니, 어떤 분들은 실수로 역주행을 했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아찔한 경험에 비하면 타이어 펑크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낯선 도로 위에서 겪는 작은 사건들은 그때는 당황스럽고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 모두 영국 생활의 일부가 되어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다. 오히려 그런 순간들 덕분에 그 시절을 더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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