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좀 더 알게 된 풍경
초록초록 녹지 접근성이 좋은 유럽은 어디를 가나 공원이 많다. 특히 영국 사람들은 공원을 유난히 좋아하는 듯하다. 연인들이 공원에 앉아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반면 한국은 영화관, 카페, 쇼핑몰에서 만나는 문화가 익숙해 처음 영국에 갔을 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요즘은 한강공원에서 데이트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져, 한국을 방문해 한강을 바라볼 때면 도시가 예전보다 훨씬 활기차고 생기 있어 보인다.
바스에도 공원이 많지만, 그중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가장 큰 공원은 '로열 빅토리아 공원(Royal Victoria Park)'이다. 이 공원도 200년이 넘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빅토리아 공주가 개장식에 직접 참석했던 그 행사는 훗날 빅토리아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으로도 소개되는 곳이다.
빅토리아 공원은 바스 중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보타닉 가든과 놀이터, 호수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날씨가 좋은 주말이면 어김없이 아이스크림 트럭이 등장했는데,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한참을 뛰놀다가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그 순간이 가장 큰 행복이었다.
동네 골목 아이스크림 트럭에서 보던 아이스크림이 1~1.5파운드였다면, 빅토리아 공원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은 2~2.5유로쯤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가격은 시내(?)라 조금 더 비쌌지만, 공원에서 먹는 달콤함은 그날의 특별함을 더해 주었다. 주말이면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까지 더해져, 바스 주민들은 모두 이곳으로 모여드는 듯했다.
놀이터 주변에는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들이 많았고, 보타닉 가든에 들어서면 장미와 색색의 꽃들이 이쁘게 피어 있었다. 그 꽃들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값비싼 꽃집이나, 특별한 행사장에서나 볼 수 있는 꽃들이, 이곳에서는 공원에 가득 피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영국의 품격을 공원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또 그와 반대로 놀이터에서 내 눈에 가장 많이 들어왔던 건 미혼모들이었다. 아이 옆에서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우고, 온몸에 문신을 드러낸 채 무리를 지어 앉아 있는 모습은 솔직히 보기 좋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미혼모들에게 지원이 넉넉해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아이들 곁에서 흘러나오는 담배 연기는 내게 불편하고 씁쓸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반면, 보타닉 가든으로 가면 잔디 위에는 전혀 다른 풍경도 있었다. 꽃잎이 흩날리는 초록 잔디 위에는 잉글랜드 특유의 체크 담요를 깔고 앉은 연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한없이 웃고, 잔을 부딪치며 대화를 이어가다가, 때로는 조용히 입 맞추며 둘만의 시간을 만끽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그 순간은 내게 부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공원에서 순수하게 마음을 나누는 그들의 모습은 그때 내 눈에 참 부럽고도 예쁘게 비쳤다. 연인들은 하나같이 한껏 멋을 내고 꾸며왔고, 잔디 위에는 캐스 키드슨(Cath Kidston) 피크닉 가방으로 차려낸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 풍경은 내게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래서 나도 꼭 체크무늬 담요와 피크닉 가방을 사서 잔디 위에 앉아 한껏 꾸미는 날을 꿈꿨지만, 영국 사는 내내 그러지 못했다. 어쨌든! 나에게 많은 인상을 남긴 '바스 로열 빅토리아 공원'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영국이라는 나라를 조금 더 알게 해주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