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거북이 가족의 위기 대처법

극 T 아들의 반전

by 선희

김가네 비상사태다.

아이들이 거실에서 노는 동안 남편이 살며시 나를 부른다.

어젯밤에 거북이 두 마리 중 작은놈이 죽었단다.

남편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일단 두었는데 곧 아이들이 알게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세상 심각한 얼굴로 묻는다. 퍼뜩 세상 감성적인 둘째 아이 걱정이 앞선다.

그렇지 않아도 죽음에 예민해서 우리 가족은 모두 죽지 않기로 결심을 받아놨는데, 거북이의 죽음이라니...

오늘 밤을 눈물로 보내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거북이 사망소식을 알리는 것을 늦춰야 하며

알리는 시기를 적절히 택해 분란(?) 없이 장례를 치러야 한다.




남편과 나는 몇 가지 안을 내놓았다.

죽은 한 마리를 입양 보냈다고 거짓말을 하는 안과 두 아이 모르게 장례를 치르고 나중에 사망소식을 사실대로 전하는 안이 나왔다. 이리저리 머리를 맞대고 궁리한 끝에 사실대로 말하고 같이 장례를 치러주는 게 제일 좋겠다 결론 내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상황이니 이참에 이 과정을 맞닥뜨리자는 거였다.

그러면 이제 어디에 어떻게 묻어주냐는 것이 관건이다.

아파트 내 화단에 묻어주면 되지 않겠냐 싶었는데, 웬걸

거북이는 종량제봉투에 버려야 한단다...

사망소식도 서러운데 쓰레기봉투에 버려진다면 더 충격적일 것 같았다.

남편과 나는 결국 먼저 처리(?)하고 후에 두 아이가 거북이가 없어진 사실을 알아차리면 그때 알리기로 결정했다.

이럴 때 부부의 파트너십이 빛을 발하는 걸까?

아이들의 오열 정도와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켜 보고자 오랜만에 한 팀이 되었다.

15년 남짓 한 집에서 살면서 남편과 내가 한 팀이 되는 경우는 대부분 아이들과 관련된 일이다.

성모마리아가 아닌 이상 임신도 우리 두 사람이 한 팀으로 이뤄낸 일이고, 이후에 두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키우는 데까지 한 팀이 되지 못했다면 아직 한집에서 살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 긴 세월 동안 항상 팀워크가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오늘과 같은 비상사태에는 팀워크가 생길 수밖에 없다.




다음날 아침,

한 마리만 남겨진 수조를 남편과 나는 의식한다.

언제 발각될지 모르기 때문에 약간이 긴장을 타고 있다.

청소된 수조에 항상 깨끗한 먹이를 넣어주는 것은 첫째 아이다.

등하교 시간이 아무리 촉박해도 현관문 앞에 놓인 거북이 먹이 주는 것을 잊지 않는데 결국 첫째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엄마!! 거북이 한 마리 어디 갔어?"

"어~~ 한 마리~~ 입양 보냈지"

바로 사망소식을 전할 용기가 없어서 순간 거짓말을 하고 억지웃음을 지었다.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아이도 거짓말인 것을 알기에 순간 공기에 공백이 생기고 나는 곧 사실을 고할 수밖에 없다.

어디에 묻었는지, 죽은 것이 확실한지, 이미 거북이는 수조에서 치워진 상태이기에 아이들은 코치코치 묻는다.

"아니... 원래 걔네가 잘 안 움직여. 그래서 진짜 죽은 게 아닐 수도 있어. 죽은 게 확실해? 건드려봤어?"

부정의 단계다.

이번 주말은 거북이 사망사건을 계속 다뤄야 할 운명인가 보다.




극 F 성향으로 죽음에 예민한 둘째 아이의 반응이 가장 무섭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거북이는 이미 치워졌지만 한바탕 소란이 이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내 품으로 파고들어 찔끔찔끔 눈물을 닦는다. 지금부터 시작해서 오늘 종일 이러겠지란 생각에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그런데... 금방 눈물이 끝난다. 그리고 이내 하던 일을 하는 둘째다.

'어? 벌써 끝난 건가? 정말?'

생각보다 후유증이 적은 둘째 아이로 인해 우리 부부는 살짝 당황했다. 이전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살짝 배신감까지 들정도다.

극 T성향의 첫째 아이는 진짜 죽은 것이 맞는지 사실을 확인할 뿐이지 별다른 감정의 동요는 없어 보여서 남편과 내가 괜히 호들갑이었나 싶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첫째 아이가 갑자기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방에 몰래 핸드폰을 들고 가서 게임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서 따라 들어가는데 아이가 머뭇거린다.

그리고는 언제 흘렀는지 모를 눈물을 옷소매로 닦는다.

부정의 단계에서 나름대로 계속 사실 확인을 하더니 거북이 사망이 확실시되자 울컥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거북이에게 처음 이름을 붙여준 것도, 거북이 수조 청소와 먹이를 챙기는 것도 첫째 아이였다.

평소에 감성언어보다 이성언어를 많이 사용하는 아이였기에 감정표현이 덜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주말 일상 루틴이 이어지는 듯싶지만 순간순간 무거운 공기가 감돌고 첫째 아이는 주기적으로 거북이 사망을 언급한다. 아직은 받아들이기 어려운가 보다. 오늘만 지나가면 괜찮겠지, 처음 맞는 죽음에 그렇겠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며 나는 어른의 냉정한 마음으로 정리해 버린다.

오늘만은 아이에게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니 어른의 냉정한 마음은 들키지 않게 꼭꼭 숨겨두어야 한다.




상갓집의 주말 저녁이 어찌어찌 지나고 잠자리에 든다.

밤이 되어 낮보다 기분이 가라앉고 낮의 일상이 되뇌어지는 시간이 되니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첫째 아이의 폭풍 오열이 시작된 것이다.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결국 침대를 옮겨 내 품에서 울다 지쳐 잠이 든다.

곧 있으면 중학생이 되는 큰 덩치의 아들의 눈물이 안쓰러우면서도 안심스럽다.

이별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눈물을 경험하는 아이가 내심 뿌듯하다.


두 아이는 남은 한 마리를 지키기 위한 경비태세에 들어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빠, 일요일에 왜 실내화만 빨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