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빈집
두 아이의 여름방학을 맞아 친정집에 갔다.
친정집에는 작년에 마지막으로 시집간 둘째 언니가 떠나고 이제 엄마만 남아 살고 있다.
2박 3일을 계획하고 떠난 친정행이라 자그마한 캐리어에 두 아이 짐과 내 짐이 많지도 적지도 않게 적당히 찼다.
두 아이는 오랜만에 외갓집에서 이모들과 지낼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다.
친정집에 가는 내 마음은 들뜨지도 무겁지도 않다.굳이 정하자면, 조금 무거운 상태에 가까웠다.
2010년 여름, 2년여의 연애 끝에 결혼식 날을 잡은 그날은 친정집에 가는 지금보다 마음이 조금 더 무거웠다.
24년 전, 엄마는 마흔다섯 이른 나이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4남매를 혼자 어찌어찌 키워냈다.
살림 밑천이라는 첫째 언니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일찍이 시집을 가 집을 떠났고
오랜 노동일에 오십도 전에 디스크로 일을 하지 못하는 엄마와,
뒤늦게 대학에 입학해 아등바등 자기 앞가림만으로도 힘든 둘째 언니와,
돈벌이와는 먼 직업을 업으로 삼아 여기저기 전전하는 갓 스물이 넘은 남동생을,
자그마한 월세집에 남기도 나도 곧 집을 떠날 예정이었다.
월급의 반을 생활비로 대는 빠듯한 살림살이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속내를 2년 연애 후 결혼이라는 평범함으로 감추고 집을 떠날 판이었다.
큰언니의 빈자리를 내가 채웠듯, 내 빈자리도 누군가는 채울 테지만 남겨진 엄마와 형제들에게 조금이나마 죄를 씻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아니 좀 더 솔직히 계속되는 월세를 시집가서도 감당해야 하는 내 앞날을 위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자리에 새로 지어진다는 임대아파트를 엄마 이름으로 신청했다.
다행히 엄마는 내가 시집간 그 해에 아파트에 입주해 동생과 둘째 언니와 같이 살다,
동생이 떠나고, 둘째 언니가 떠나고,
이제 엄마만 혼자 남아 살고 있다.
집에 들어서자 손자들을 먹인다며 더운 날씨에도 가스불을 2개나 켜고 반찬을 만들어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열기가 훅 끼친다.
디스크로 허리와 무릎이 성치 않아 구부정한 데다 땀이 많은 체질이라 목에 건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내며 장조림과 어묵볶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이고 강아지들 왔어, 어서 들어와 어서"
손자들을 반기는 목소리지만 그 속에는 더운 날씨에 힘겨운 몸을 참아내는 짜증이 숨겨있다.
도착 전 둘째 언니와의 통화로 이미 엄마와 반찬으로 한바탕 신경전을 벌인 것을 알고 있기에 그 속내가 알아차려졌다. 아이들이 있어 엄마도 나도 감정을 섞어가며 서로 신경전을 벌일 일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여전한 엄마의 사서고생이 내심 그전으로 돌아온 것 같아 뒷걸음질 쳐졌다.
짐을 풀고 한시름 쉬고 나니 둘째 언니와 큰언니, 남동생까지 출동했다.
집안에 아이라고는 내 두 아이가 전부라 오랜만에 들린 조카들을 보기 위해 형제들이 모두 들린 것이다.
이 더위에 반찬 만드느라 신경이 곤두선 엄마의 짜증을 형제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조카들 덕에 엄마 반찬에 저녁 한 끼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는지 모두 한 자리씩 채워 저녁밥을 먹는다.
20년 전 가장 먼저 집을 떠난 첫째, 14년 전 집을 떠난 셋째, 4년 전 떠난 막내아들, 그리고 작년에 마지막으로 떠난 둘째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마지막까지 엄마와 함께 산 언니의 흔적은 아직 집안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 집을 떠난 큰 언니와 나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큰언니와 나는 이 집으로 오기 전에 이미 떠나왔기 때문이다.
더운 날씨에 씩씩대며 반찬을 해댄 엄마의 노력이 빛을 발해 4남매뿐만 아니라 두 손주도 한 그릇씩 뚝딱 저녁식사를 끝낸다.
나는 오늘도 식사를 마치자마자 숨 돌릴 새도 없이 뒷정리를 해댔다.
설거지를 하고 반찬 만드는 데 사용한 주방도구들 설거지와 가스레인지, 싱크대까지 닦아낸다.
엄마의 살림은 항상 무언가 불편했다.
싱크대 틈새 틈새 찌든 때를 닦아내지 못하고 작은 도구들은 자리를 못 잡고 항상 부산하게 널브러져 있다.
내 인생의 시작이며, 절반을 보낸 그곳에 다시 와있는 것이 뼈저리에 느껴진다.
이미 이 집에는 내 흔적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데 엄마의 살림에서 나의 과거가 아직 남아 있다.
그리고 엄마의 살림이 곧 내 미래가 될까 싶어 조금 주춤하게 된다.
어릴 적 동네 어른들은 딸 셋 중 내가 가장 엄마를 많이 닮았다고 했다.
눈, 코, 입 어딘가 똑 닮았다고 하는 데가 없는데 어른들이 보기에 그랬나 보다.
그런 어른들의 말이 내심 남았는지, 이른 나이에 남편을 잃고 없는 생활력을 짜내며 살아내야 했던 엄마의 인생이 내 미래가 될까 드려웠을까? 어느 순간 최대한 멀어지려고 노력했다.
일하는 나를 위해 첫째 손자를 봐주기 위해서 1년 넘게 같이 사는 동안에도 내 살림에 엄마의 살림이 더해지는 순간이 섬뜩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내내 엄마와는 다르게 키우려고 노력했다. 등짝을 때리지 않고, 쌍소리를 하지 않고,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 감정을 자식들에게 풀어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친정집에 가면 내 인생의 시작과 과거를 만난다.
엄마의 여전한 살림과 냄새와 소리로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과거의 나와 어쩌면 미래의 내 모습일 수도 있는 모습을 엄마를 통해 만난다.
날 닮은 그녀가 정말 내 미래가 될지 결말은 모르지만 타임머신을 탄 듯 나는 여전히 그곳에 간다.
날 닮은 너를 부족한 너를
그저 바라보기엔 후회로 물든
내 지난날이 너무 많이 다쳤어
나의 과거와 너의 지금과
너무도 같기에 두려워 겁이 나
마지막이어야 할 사람
너의 미래를 지킬 수 있게
날 이렇게 뿌린 친대도
너의 손을 놓지 않을 거야
임창정 <날 닮은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