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일요일에 왜 실내화만 빨아요?

엄마노릇, 아빠노릇

by 선희

245밀리 운동화 1켤레, 250밀리 운동화 1켤레, 200밀리 운동화 1켤레

흰 맹꽁이 실내화 2켤레가 나란히 나란히...

우리 집 주말에 없어서는 안 될 거실 풍경이다.




언제부터였는지,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어느 날부터 일요일 아침마다 가족들의 운동화를 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옛날 엄마들이 솔로 박박 문질러 빨듯이 운동화를 빨았는데 어느새 업그레이드되어서 신발 전용 세제를 사서 흙이 묻은 운동화를 새하얗게 빨아내기 시작했다.

엄마들이 한 주간의 묶은 때를 벗겨내듯 열심히였다.




우리 집 주말 아침은 큰 이벤트가 없는 한 매주 일정한 루틴으로 돌아간다.

초등학교 6학년, 2학년 두 남자아이들은 7시부터 기상해서 둘만의 작전을 펼친다.

주말인데 더 자지 않고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게임이나 유튜브를 한다고 부모에게 한 소리 들을까 싶어 최대한 안방으로 소리가 들어가지 않도록 볼륨을줄이고 둘만의 게임 시간을 즐긴다.

배고픔을 최대한 미루지만 8시 반쯤이면 더 이상 허기를 참을 수 없어 밥을 달라며 둘째가 침대로 파고든다.

'이 녀석들, 이제 웬만큼 놀았나 보구나, 배가 고픈걸 보니'




아이가 생긴 이후로 10년간 주말 늦잠은 포기한 지 오래라 나는 쉽게 몸을 일으킬 수 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불면증과는 거리가 먼, 머리만 대면 어디서나 쉽게 잠이 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특히 흔들거리는 차 안에서는 20분 채 되지않아 '레드썬'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조리원에서 퇴원해 아이와 집으로 오던 날 차 안에서 한숨도 자지 않는 걸 보시곤 시어머니는

"어머, 벌써 엄마 다 되었나 보다, 차에서 잠을 다 안 자고"라며 내심 뿌듯한 미소를 보이셨더랬다.

이후에도 아이와 한방에 누워 잘 때 불현듯 곤히 자는 아이가 숨을 쉬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깨기 일쑤였다. 아이의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을 확인하고야 안심하고 그럼에도 쉬이 잠들지 못하는 엄마가 되었다.




남편은 나보다 아침잠이 많아서 아이들의 방문에도 이불속으로 얼굴을 묻는다.

엄마, 아빠가 모두 있는 날 식사 준비는 여지없이 엄마의 몫이기 때문에 어쩌면 남편은 더 편히 늘어져있는지도 모르겠다.

시댁은 시어머니가 밥상을 모두 차린 후에 남자들이 부엌에 들어오는 것이 익숙한 집이다.

설거지와 쓰레기 분리수거는 모두 시아버지가 도맡아 하시는, 그 시절 남편 중 다정한 편에 속하지만 식사만큼은 도무지 돕지 않았다. 그 집안에서 나고 자랐으니 내 남편도 거기서 거기였다.

음식은 아내가, 설거지와 분리수거는 남편이, 세탁기는 아내가 돌리고 빨래 널기는 남편이, 청소는 다 같이...

암묵적인 룰 덕분에 자연스럽게 집안일이 흘러간다.

'음식은 아내가'룰에서 벗어나는 것은 나다.

남편에게는 익숙한 아내가, 엄마가 음식을 하는 룰이 나에게는 도무지 자연스럽지 못하다.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없기로 유명해서 여자아이라면 모름지기 손쉽게 해내는 종이장미 접기, 학 접기를 둘째 언니는 가르치다 가르치다 포기했다. 뿐만 아니라 손뜨개질, 바느질 등등... 손으로 하는 모든 것에 잼뱅이다. 그런 내가 아내로, 엄마로 음식을 해서 식구들을 먹어야 하니 매우 난감한 일이었다.

남편은 평생을 가족들을 위해 전적으로 밥상을 차려내는 어머니 밑에서 밥상을 받았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주방에만 가면 화가 나있는 아내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밥상은 가족에 대한 사랑을 한껏 표현하는 말 그대로 상장 같은 것인데 엄마의 사랑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밥상 앞에서 아내는 화를 냈다.

아내의 엄마란 탈과 무던한 남편 덕분에 아슬아슬한 가정의 평화가 유지된다.




조금 여유 있는 주말은 좀 더 신경 쓴 요리를 내주고 싶지만 막상 주말 아침에 되면 평일 아침과는 또 다른 게으름이 파고든다. 결국 오늘 아침도 한 그릇 덮밥과 과일이다. 이런 엄마에게 나고 자란 덕분에 두 아들은 엄마 음식이 최고라며 맛있게 먹어준다.

설거지와 하루를 위한 집안 정리가 마무리되면 오전 10시다.

점심밥을 차리기까지 2시간 정도의 여유가 생긴다.

집돌이 남편과 주말이면 혼자만의 외출 시간이 필요한 아내는 신혼부터 옥신각신하여 타협점을 찾았다.

주말 아침, 남편이 늦잠을 자는 대신에 아내에게는 오전 2시간의 외출이 허락된다.




외출을 마치고 현관에 들어서면 오늘도 하얗게 세탁된 맹꽁이 실내화 두 켤레가 눈에 들어온다.

아침 잠 많은 남편이 아내가 외출한 동안 무거운 몸을 일으켜 가장 먼저 아이들의 실내화를 빨아 세워둔 것이다.

우리는 엄마의 탈을 쓰고 밥을 차리고 아빠의 탈을 쓰고 실내화를 빤다.

엄마는 두 아이의 허기진 배를 따듯하게 채우고 아빠는 두 아이의 발이 하얗게 빛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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