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22년 10월 31일, 새벽 2시가 되어가던 무렵이었다. 그 시기쯤 나는 밤에 잠을 자다가도 적게는 두 번, 많게는 세, 네 번 정도는 깼다. 그날도 어김없이 잠에서 깨서 시간을 확인할까 싶어서 머리 옆에 둔 스마트 폰의 화면을 두 번 톡톡 쳤다. 평소 같으면 화면이 켜졌을 텐데 왜인지 화면이 켜지지 않자 나는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도 화면이 켜지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떤 방법을 써도 스마트 폰의 화면은 밝혀지지 않았다. 놀란 마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이틀 전 물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 잘 말렸다고 생각했고, 전날 아무런 문제 없이 사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내게는 매우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노트북과 스마트 폰을 연결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는데,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재부팅하는 방법을 찾아내 재부팅을 했으나 소리는 나지만 화면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예고 없이 스마트 폰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바꾸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3년 하고 좀 넘게 쓰고 있었기 때문에 금전적인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안에 담긴 것들이었다.
스무 살 부터 한 장, 두 장 찍어서 모은 나의 하루들과 스물 중반부터 하나, 둘 써왔던 글들을 살릴 수 있을 것인지가 내게 가장 큰 문제였다.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노트북을 끄고, 스마트 워치로 알람을 맞추고 손목에 착용한 상태로 다시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제대로 다시 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을 가야 하는데, 그렇기 위해서 자야 하는데 알람이 제대로 울릴까, 갑자기 폰은 뭐로 바꾸지, 내 쌓아온 데이터들은 어떡하지 등등 생각이 많아져서 선잠을 자다가 다행히 알람은 잘 울려서 늦지 않게 일어나 출근을 할 수 있었다. 출근을 하고 일을 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근처 대리점으로 향했다. 그 시기쯤에 나는 스마트 폰으로는 하는 것이 별로 없었다. 예전에는 사진도 많이 찍고, 글도 많이 썼지만 그 당시 나의 스마트 폰은 오로지 연락과 SNS를 보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최신형이거나 성능이 좋거나 이런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연락만 제대로 할 수 있으면 됐다. 그래서 대리점에 가서 지금 바로 개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고 스마트 폰을 바꿨다.
아무것도 없는 스마트 폰에 이전에 내가 쓰던 것들을 다시 설치하는 일은 매우 번거로웠다. 어떤 애플리케이션이 있었는지도 다 기억이 안 나는 것이 제일 문제였다. 그래서 써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다시 설치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망가진 스마트 폰을 수리하기 위해서는 한, 두 푼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인지한 후로 나는 더욱 우울해졌다. 나의 10년이 하루아침에 없어질 상황에 놓아진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나는 이미 번 아웃 증상을 겪고 있었는데 그 일이 더욱 나를 우울함의 바다로 빠지게 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생각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낸 많은 날들의 기억이 없어지고, 내가 나를 다독이던 많은 기록들이 없어진다는 것이 이미 허물어지고 있는 나의 마음을 더 무너지게 만든 것이다.
스마트 폰을 바꾸고 얼마 후 한동안 찾지 않았던 외장하드를 노트북에 연결시켰다. 갑자기 생각난 것이다. 그곳에 내가 사진들과 글들을 보관하려는 작업을 했었다는 사실이. 기억대로였다, 최근 5년 (아마도 더 오래)은 없지만 전부를 잃어버리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에 전보다 마음은 덜 힘들었다. 앞으로 더욱 많은 기억과 기록을 남겨 가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런 날을 보내던 어느 날, 같이 일했던 친구가 한때 내가 염색했던 머리가 예뻤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내가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함께 했던 시간을 갖고 있던 친구에게 다시 받을 수 있었다.
요즘 스마트 폰은 단순히 전화기의 의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스마트 폰 주인의 모든 것이다. 기억해야 하는 모든 것이 그 안에 저장되어 있다. 누군가와의 추억, 자신만의 기록, 개인정보 등등 많은 것이 그 안에 담겨 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작은 것 하나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하고, 잃어버리면 찾으려고 한다. 누군가에게 다시 받을 수 있다면 너무 다행인 일이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 당시에는 스마트 폰 고장 난 것 때문에 우울하다는 것이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만큼 그 시간들을 소중히 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