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지도 않고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나이, 25세
빠른 생일로 26살과 친구 먹은, 25세
제대로 된 내가 되어가는 나이, 25세
새로운 도전을 해도 늦지 않은 나이, 25세
쉴 틈 없이 지내던 날들을 돌아보는 나이, 25세
이제는 정착할 곳이 필요한 나이, 25세
그럼에도 끊임없이 고민하는 나이, 25세
우리 아빠는 많다고 느끼는 나이, 25세
나의 스물다섯은 내 인생의 첫 번째 터닝 포인트였다. 도서관에서 종이 냄새를 맡으며 일할 줄만 알았던 내가 커피 냄새를 잔뜩 묻히며 일하는 바리스타가 되기 위한 터닝포인트의 해. 도서관을 나와서 출판을 목적으로 글을 쓰고, 바리스타가 되겠다고 커피를 배웠다. 나의 주 수입이 '책'이 아님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바리스타, 카페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나조차도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생각에도 없던 일을 해보기로 했다. 그때 내 나이가 스물 하고도 다섯이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새로 작성하면서 새삼 나태하게만 지내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생일이 빨라 열아홉에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쉰 날이 없었다. 평일은 학교 생활, 주말에는 절에서 학생회 선생님으로 아르바이트를 했고, 2년제 대학교를 졸업하고 편입을 하고 평일은 공부를 하고 주말은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낸 뒤, 도서관 계약직 사서가 되었다. 매일이 쉴 틈 없이 지나갔다. 그렇게 보내면서도 그 생활이 좋았던 이유는 스스로 학비를 해결하고 있다는 뿌듯함과 취업이 어렵다는 말이 나옴에도 일을 잘하고 있어서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있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지내는 것이 내 입장에서는 당연하면서도 당당할 수 있는 이유였다. 그런데 그걸 스스로 박차고 나온 것이다. 사실상 계약 연장은 확실하지 않지만 다른 스물 중반들이 자리를 잡아갈 때 나는 새로운 것을 해보겠다고 통보해버린 것이다. 그랬으니 아버지는 매우 걱정이 되셨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에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나이의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내 나이가 적지 않은 나이라며 걱정이 담긴 잔소리를 시전 하셨는데 맥주 두 캔에 취기가 살짝 있던 내가 억울함을 토해냈다. 적지 않지만 많지도 않다면서 스스로 일해서 학비 내고 알아서 생활하고 있지 않느냐고 다른 애들은 아직 받기만 하는 게 많은데 나는 아니지 않냐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