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어나서 참 많은 경험을 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험을 하고 살아가라고도 합니다.
아마 태어난 것부터 경험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하루, 하루가 경험이고 그것들이 쌓여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많은 용기도, 기회도 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마지막으로 하는 경험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그건, 탄생의 반대인 죽음이 아닐까 합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면서 '왜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을 자주 해서 그런지 '죽음'이 마냥 먼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다. 오는 것에는 순서가 있어도 가는 것에는 순서가 없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가끔 나의 죽는 순간을 생각하고는 하는데 상상이 되진 않지만 바라는 것은 생겼다. 하나는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나의 사람들이 함께가 아니어도 마지막까지 이 사람, 저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서 행복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두 번째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단순히 아픈 건 싫어서이다. 세 번째는 나를 떠나보내는 사람들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애정이 담긴 사람을 떠나보내서 영영 볼 수 없는데 어떻게 슬퍼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지만 그저 떠나보내면서 열심히, 잘 살았으니 고생했다고 편하게 쉬라고 응원해주면 좋겠다.
영화 '코코'를 본 후 생각이 더욱 정리가 되었다.
멕시코에서 매년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척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는 명절을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그들의 명복을 빌면서 해골 복장이나 분장을 하고 그들을 찾아 묘지로 가기도 하고, 제단을 마련해 어른들을 위한 술이나 담배와 아이 이들을 위한 장난감을 준비한다고 한다. 마리골드 꽃과 촛불로 무덤을 환하게 장식하고 그 옆에서 자리를 깔고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고 한다. '코코'에서는 죽음이 마냥 슬픈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면서도 모두에게 잊히면 죽은 자의 세계에서도 살아갈 수 없는데 이 부분은 '잊힘'이 꽤 씁쓸하게 느껴진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나의 마지막 날의 대한 생각을 더욱 굳힐 수 있었다. 죽음이 남은 사람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죽는다'라는 말이 무섭고 또는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의미로 생각하고 있다. 떠난 사람이 이 세상에서 더 이상 경험할 것이 없기에 또 다른 경험을,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경험을 한 것이라고 말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다양하게 경험해봐야 한다고 말하듯 나이대에 따라 경험해야 하는 것들이 있고, 그 모든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오는 마지막 경험이 '죽음'이라면 우리는 조금은 다르게 그들과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어느 광고에서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라고 한 것처럼 '열심히 살아온 당신, 쉬어라.'라고 더 이상 힘들지 않고 아파하지 말라고 그 경험을 준 것이라면 조금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