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단한 노력이 따르는 적당함
적당한 것이 좋다.
적당하게 먹고 자고, 적당하게 일하고 벌고, 적당하게 사랑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어릴 적부터 무엇 하나 특별하게 잘하는 것이 없었다. 중간만 가자는 것이 그동안 잊고 살던 인생의 모토였다. 너무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그 중간이 나는 좋았다. 중간이라는 건 내게는 평범하다는 뜻과 같게 느껴졌고, 그건 내게는 시끄럽지 않고 평화롭고 안정적인 날들을 줄 것처럼 느껴졌다. 그 중간이 어릴 때는 무난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죽어라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일어나는 순리대로 살아가면 중간은 할 줄 알았다. 중간만 가자는 내 모토는 성인이 되면서 서서히 잊혀갔다. 어느 순간 나는 매일을 열심히 사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금방 뒤처져서 중간은커녕 낙오자가 될 것 같은 기분을 자주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문대학 졸업을 하고 나는 졸업 전공과는 다른 학과로 편입하면서 과 동기들과 조금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동기들은 다들 취업을 하거나 그 전공을 이어 학업을 계속하는데 나는 평일은 전과한 문예창작 전공으로 학업을 하고, 그나마 졸업한 전문대 전공을 살린 것이 주말 아르바이트였기 때문에 때때로 가끔씩 내가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게 있었으니까. 그렇게 노력하다가도 이따금씩 나는 주저앉고는 했다. 주말 아르바이트를 정리하고 평일 일자리를 고민하던 때 어느 평일 이른 아침이었다. 일을 나가기 위해 준비를 하던 아버지와 일찍 일어나 계신 어머니의 대화소리가 방문을 넘어 들어왔다.
언제까지 주말에만 일 할 거래?
아버지는 내가 졸업할 때까지 평일에 공부를 한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하셨다. 내가 시험 때면 과제를 하느라 밤을 지새워도 이상하게 아버지는 내가 평일에 하는 것 없이 놀고 있다는 생각을 하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내가 주말에만 일하는 것이 신경이 쓰이셨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어느 이른 아침에 어머니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신 것이다. 그것을 들었던 당시에 나는 그 말이 매우 속상했다. 나의 노력이 마치 쌓인 마른 모래성에 바람이 불면 모래가 날리듯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이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자식에 대한 걱정일 것이라는 생각에 평일에 일과 학업을 병행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을 내리고 나는 다행히 주말에 일하던 곳에서 평일에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도서관 야간 개관에 따른 자리었고, 점심이 조금 지난 오후에 출근해서 밤이 돼서야 퇴근하는 생활이었다. 일을 하면서 강의를 재생시키고, 일반과제와 시험과제를 해내야 했지만 그 당시 나로서는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힘을 들이고 있었다. 그런 생활을 하던 어느 아침, 그때도 이른 아침이었다.
언제까지 늦게까지 일 할 거래?
아버지의 걱정은 다시 날카로운 말이 되어 내 마음을 찔렀다. 내가 다음 해 일을 고민하던 때였다. 이상하게 내가 다음 해를 고민하며 싱숭생숭해져 있을 때면 아버지의 날카로운 걱정이 내게 생채기를 내었다. 그럴 때면 아버지에게 ‘나도 열심히 살고 있어, 나도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아버지의 걱정으로 나는 내가 적당히 잘하고 있다는 기분을 만족하지 못한 채 나를 더 채찍질했다.
열심히 살아야 해, 열심히.
도서관에서 주말, 평일을 합쳐 3년을 채워가던 해 도서관에서 더는 일 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나는 내 미래를 다시 한번 결정해야 했다. 문예창작을 졸업하고 쓰고 있던 소설이 있었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고민을 여러 날 반복했다. 다음 해부터 나는 주말, 평일 구별 없이 글을 썼고 바리스타 학원을 찾아봤다. 그러면서도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심지어 다시는 일하지 못하는 낙오자가 될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제대로 표현한 적은 없다. 다행히 나는 같은 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해냈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했다. 그래서 사실은 가족들에게 부족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그리고 다음 해 누가 봐도 번듯한 곳에서 바리스타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한 건 좋았는데 문제는 적응이었다. 일을 익히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하루에 실수를 몇 번이고 하고, 실수를 하고 자책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때 다시 생각했다.
아, 진짜 적당히 좀 잘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때 ‘적당히’라는 것이 쉽지 않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적당히 하기에는 내가 이것저것 신경 쓰고, 눈치를 보는 것이 많았다. 내가 해도 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내가 하는 방법이 맞는 것인지 일을 하는 내내 생각했다. 일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럼에도 버텼다. 가족들에게 떳떳해지고 싶었기 때문에. 그것 또한 적당히 하지 못한 것 중 하나이다. 그래도 나는 오랜 시간이 걸려 일에 적응했다. 내가 하는 일을 다시 한번 좋아하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른 곳에서 바리스타로 지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이곳에서도 적당히 하는 것이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성인이 된 후로는 적당히 살자는 생각 뒤에는 부단한 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적당히 내 일만 하기에는 이것도, 저것도 해야 할 것 같고 더 부족한 것 없이 완벽히 해야 하고 그러고 싶은 강박증과 가족들에게 자식과 동생의 역할도 좀 더 하고 싶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아낌없이 해주고 싶은 것이다. 일도, 사랑도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날이 갈수록 더욱 느끼고 있다.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곳에서 지쳐버리는 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나의 한계보다 더 해내려고 하면서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어버린 날들이 있어서 나는 적당함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나의 적당한 선을 잘 정하고 유지하는 노력. 그래야 삶도, 일도, 사랑도 놓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