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그랬던 것 같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지.
공부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지.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지.
이런 말들을 들었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생각해보면
왜 굳이 착하고,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과 직장에 들어가야 하나
의문이 들었지만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가 왜 저런 생각을 했나
생각해보면 나는 그저 효도하는 자식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 잘 되어서 '누가 그렇게 장하다더라.'
그런 말을 부모님이 듣고 자식 자랑을
실컷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은연중에 나는 거의 만나지도 않는
또래 사촌 형제들을 경쟁자로 삼았고
그들보다 여러 면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정작 부모님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 스스로 나를 부족한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를 얻게 되면서 나는 내가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나의 지인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 하고, 그들의 반응에 몹시 예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쉽게 말해서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최대한 원하는 모습으로 지내왔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 생각으로 만들어진 모습이었다.
'부모님은 이런 모습을 원할 거야.', '친구들은 이런 모습을 원할 거야.', '언니는 이런 동생을 원할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그들과 불편한 상황을 겪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억압시켰다.
어릴 적 친척 어르신들을 만나면 '공부는 잘하냐?', '부모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등의 가벼운 이야기가 내게는 부담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부모님 말씀을 크게 어기지는 않았지만 무조건 착하기만 한 것이 부모님에게 자식 자랑거리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 어른들이 자식 자랑을 늘어놓으면 내 부모님은 그저 웃으며 '잘 됐네요, 잘했네.'라고 답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릴 때는 그것이 나와 언니가 뚜렷하게 잘 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또래 사촌들보다 내가 잘 살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학생 때부터 해오던 생각은 성인이 되고 더욱 커졌다. 사촌들의 대한 경쟁심은 그들을 보지 않으면서 사라졌지만 부모님이 지인들이나 친척들에게 은근슬쩍 '얘네 잘해요.'라며 자랑 좀 했으면 싶었다. 그래서 더욱 기대지 않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다. 나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으로 하자는 생각이었다. 내 돈으로 사이버 대학교를 다니고, 내가 벌어서 학자금 대출을 갚고,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내가 부모님이 하는 자식 자랑에 집착했던 이유는 잘하고 있다고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부모님이 자식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효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려면 내가 알아서 내 할 일을 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었고, 그렇게 하면 한 번쯤은 부모님이 '우리 딸은 알아서 다 잘해요'라고 말해줬으면 바랐던 것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스스로를 억압하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결국에는 '넌 알아서 잘하니까-'라는 말을 듣는 투정 부리기 힘든 딸이 되어버렸다.